이토산악회에서 북한산으로 송년산행을 떠난다. 이번에는 지하철 3호선과 6호선이 교차하는 불광역에서 만나 북한산 원효봉으로 올라가서 백운대까지 산행을 하고 내려올 계획이다. 모이는 장소가 불광동이어서 만나는 시간을 조금 늦춰서 10시 30분에 춥발하기로 했다. 원래 두번째주 토요일날 가야 하는데 사정이 생겨서 4번째주로 변경을 했는데 날자가 변경되는 바람에 내가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전까지 불광동에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오늘 와서 보니 서부경찰서로 바뀌었고 버스 터미널은 없어져 버렸다. 북한산 예비군훈련장 가는 방향 시내버스를 타고 효자동 마을회관 효자파출소 앞 정류장에서 내렸다. 이곳은 북한산 둘레길 내시묘역길 구간에 포함되어 있는 곳인데 원효봉 능선과 북한산 노적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효자농원 안내표시판이 있는 곳에서부터 오늘 산행이 시작된다.
평이한 길을 따라서 산행을 시작하고 나서 오르막이 나올 무렵 부상방지를 위한 스트레칭을 해 준다. 산에는 눈이 모두 녹지 않아서 조금 미끄러운 구간도 있어 안전산행이 가장 우선이기 때문이다. 오르막길을 조금 오르니 서암문이 나왔다. 1711년(숙종 37년)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개의 암문중 하나라고 안내문에 쓰여 있다.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였으며, 때로는 구원병의 출입로로 활용됐다고 한다.
아침에 나올때부터 날씨가 맑지 않았는데 서암문을 지나 원효암으로 이동할 무렵부터 날씨가 더욱 나빠지기 시작한다. 능선을 따라 이동하기 때문에 중간 중간 산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구간이 있지만 뿌연 날씨에 아래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수도하였던 토굴이었다는 원효암을 지나게 된다. 가파른 암벽에 1300년이나 된 사찰인데 초라한 느낌이 든다. 암자에 들어가보지는 못하고 그냥 지나치게 된다.
원효암을 지나 원효봉으로 이동중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다행히 큰 눈이 내릴 분위기는 아니고 조금씩 날리는 수준이다. 원효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좌우가 절벽으로 사고가 빈번하다는 주의 팻말이 있었다. 이 코스로는 어린이들과 동행할 경우에는 상당히 조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간 중간 쇠줄로 된 안전난간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생각보다는 오르막 내리막이 많아서 쉽지 않은 코스였다고 생각된다. 원효봉 능선을 따라서 산성이 완벽한 상태는 아니지만 많이 복원이 되어 있었다.
조금 험한 길과 많은 돌계단을 걸어야 하는 수고는 감내하고 북한산을 가장 멋있게 볼 수 있다는 505m의 원효봉에 올랐다. 원효봉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봉우리 아래에 있는 원효암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오늘은 전망은 포기해야 한다. 봉우리 주위에는 눈이 모두 녹지 않고 있었다. 연말이고 날씨가 좋지 않아서인지 원효봉에는 우리 일행 이외에 산객이 거의 없다. 산에 오르면 이렇게 좋은데, 다들 크리스마스였던 어제 무리했나보다.
맑은 날씨였으면 원효봉에서 아름다운 경치로 북한산의 봉우리를 즐길 수 있었을텐데 오늘은 안내판 사진에서만 그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나마 눈이 조금 비치다가 그쳐서 다행이다. 전망이 좋은 전망바위에서 사진을 찍어도 배경은 구름밖에 없다. 빨리 날씨가 좋아져야 할텐데.. . 그나마 눈발이 더 심해지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원효봉을 조금 지나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이번 산행은 회원 한명이 커다란 비닐을 준비해 와서 바람을 완벽하게 막은 상태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요즘 가끔 산행을 가면 이런 광경을 자주 보면서 저런 비닐을 준비하면 춥지 않게 쉴수 있겠구나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 우리 일행도 그런 호사를 누리게 된다. 실제 사용해보니 바람이 완벽하게 차단되어 안쪽은 봄날같은 느낌이다. 다만 습기가 빠져 나가지 못해 비닐 안쪽에 물방울이 맺히긴 했지만, 겨울 등산에 준비하기 귀찮고 힘들어서 그렇지 상당히 유용한 비닐이었다.
이토산악회는 회원들이 준비해온 음식을 보면 집에서 먹는 식사보다 훨씬 더 잘 먹는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생일을 맞는 회원이 있다가 케일까지 준비해와서 간단한 산악생일파티까지 겸하게 되었다. 산에 오는 목적이 산을 타는 것보다 먹는 것에 더 중요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물론 농담이다. 많이 준비해 온 덕분에 맛있는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비닐을 정리했다. 비닐 커버 자체의 무게는 그다지 무겁지 않지만 부피가 생각보다는 크다. 다른 동료를 위해서 준비해온 동료한테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나도 하나 장만해서 가지고 다녀볼까 생각을 하고 어디에서 구입했는지 물어보긴 했지만 언제 사러갈지는 미지수다. 사진 찍는 것과 함께 다른 일까지 맡기가 조금 주저되기 때문이다. 비닐 안쪽에 있을 때는 전혀 몰랐는데 비닐에서 나오니 제법 쌀쌀하다. 오늘 비닐 활용은 100% 성공이었다.
구름이 전망을 가리지 않았으면 이곳에서 염초봉, 백운봉, 만경대, 노적봉이 보이는데 염초봉만 겨우 보이고 나머지 봉우리는 구름 속에 있다. 오른쪽에 노적봉도 조금 보인다.
북한산성 북쪽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북문이다. 이 북문은 홍예문으로 지어졌으며, 위에 문루가 있었는데 현재는 사라지고 이렇게 초석만 남아 있다. 기존에 사용되었던 석재와 최근의 석재를 혼합해서 최근에 복원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왕 복원을 하면 옛날 느낌이 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남아 있는 규모만 보아도 당시 만들었을 때 규모가 상상이 되는데 과거에는 지금의 대동문보다 규모가 더 커서 높이 11척, 넓이 10척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중에 망루까지 복원이 된다면 엄청난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언제 복원할지는 나도 모르겠다.
북문에서 다시 상운사 방면의 내리막을 한참 내려가니 대동사 삼거리가 나왔다. 삼거리에서 다시 백운대 방면으로 조금 올라가니 홍살문같이 생기긴 했는데 이상 야릇한 검은 나무기둥으로 된 문이 등산로변에 서있었다. 문위에 명문이 있어 읽어보니 북한산 영취봉 대동사라 적혀 있다. 절앞에 있는 일주문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별로 분위기가 좋아 보이지 않는 까만칠을 한 문 양옆 기둥에는 금강경구절이 적혀 있었다. 문 뒷쪽으로 대동사가 있는데 다시 올라가보기가 싫어서 사진 한장만 찍고 지나친다.
대동사를 지나 백운대를 향해서 다시 오르막길을 오른다. 북문에서 내려와서 이제 하산을 하는가 생각했는데 다시 오르막이 나오니 힘이 더 드는 것 같다. 체력이 좋은 나도 힘이 든다는 느낌인데 함께한 여성회원들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많이 힘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도 예정된 일정이 있으니 백운대를 향해 올라가야 한다.
계단 길과 바위를 넘어 한참 걸으니 백운봉 암문(일명 위문이라고한다)에 도착했다.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 산성의 성문중 가장 높은곳에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백운봉 암문은 여느 암문과 마찬가지로 성문 상부에 문루는 마련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백운대까지는 300여m 떨어져 있는데 길도 미끄럽고 오늘 산행의 거리가 너무 많아서 다음에 가 보기로 한다. 부지런히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조금씩 지체되고 있는 느낌이다.
그동안은 눈이 조금씩 있어도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고 올 수 있었는데 백운봉 암문부터는 음달이어서 눈이 녹지 않아 아이젠이 없이 내려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안전을 위해 모두 아이젠을 착용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하산길이다. 암문에서 우이동 방향으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내려가는 길에 백운산장을 지나게 된다. 옛날에 이곳에 와서 굯수를 먹었던 추억이 있는 곳인데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개인 소유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으로 소유권이 넘어간다고 한다. 이곳에 와서 하룻밤 자고 일출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직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백운산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우이동으로 내려 오는 길에 인수봉이 잘 보이는 장소에서 잠시 멈추고 인수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화강암 암벽으로 형성된 북한산 인수봉은 높이가 810.5m로 백운대, 만경대와 함께 예로부터 삼각산으로 불려왔던 곳이다.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에게 엄청 사랑받는 장소다. 아직 암벽에 올라보지 못해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인수봉을 배경으로 사진찍고 조금 더 내려오니 북한산 인수대피소가 나온다. 이제는 내려가는 일만 남아 있어 여유가 있다. 산행시간을 보니 중간에 휴식시간을 포함해서 벌써 7시간이 지났으니 오늘 산행 코스가 많이 길었다는 생각이다.
도선사 입구쪽에 있는 백운탐방지원센터 앞쪽으로 내려왔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으면 탐방센터 앞 주차장에 있는 도선다원에 가서 차라도 한잔 마셨으면 했지만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서 이제 어둠이 몰려올 시간이 되었다. 아직 우이동 입구까지는 한참을 더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다. 택시라도 들어오면 택시를 이용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서 이 산골짜기까지 들어오는 택시도 없었다. 그래도 도로를 따라서 하산을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보행자 길이 구분되어 있었다. 이제는 집에만 가면 된다는 안도감에 여유를 부리면서 내려간다.
오늘 하루 힘은 들었지만 집에서 빈둥거리지 않고 산행은 매우 잘했다고 생각한다. 시간도 생각보다 많이 걸렸고, 후반에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 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쁘기도 했지만, 아무런 문제 없이 모든 회원이 안전하게 내려왔다. 올 한해의 마무리 산행을 북한산에서 끝내게 되었다. 백운탐방지원센터에서 한참을 걸어 내려 오니 북한산국립공원 표시석이 나온다. 우이동 버스 종점까지 내려와서 버스와 지하철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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