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자카르타의 서쪽편에 있는 보로부두르 사원에서 출발해 도시의 북동쪽에 있는 프람바난 사원까지는 60여km 떨어져 있는데 차를 타고 한시간 반이 조금 더 걸렸다. 중간에 교통체증 구간이 여러번 있었지만 운전사가 변칙운전을 하면서 빨리 빠져 나갔다. 길거리에서 시간을 낭비하면 아까운데 노련하게 빠져 나가는 운전기사가 잘한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내에서 프람바난 사원까지 거리가 20km 안되고, 트랜스 족자 버스를 타고도 와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 프람바난 한곳만 보는 것이 아니어서 렌트카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프람바난 사원으로 가는 길도 비교적 잘 포장되어 있어서 내가 직접 운전해서 갔더라도 충분했을 것 같다.
프람바난 사원 근처에 와서 점심식사를 했다. 기사가 안내한 식당은 예상했던 것처럼 일반 주민보다는 주로 관광객을 상대하는 식당이었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는데 우리가 도착한 뒤에 조금 있다가 한번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면 아까운 시간을 식당에서 기다리느라 보낼 뻔 했다. 차량과 기사를 12시간 함께 하는 것으로 계약을 해 놓았기 때문에 점심시간도 최대한 아껴야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을 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식당은 원두막처럼 지어진 테이블에서 담 넘어 목가적인 시골풍경을 바라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모든 테이블이 그런 것이 아니라 4테이블만 전망이 좋았고 나머지는 낮은 곳에 있어 전망이 없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그나마 전망을 볼 수 있었고, 식사도 빨리 할 수 있었다.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식당임에도 음식값은 예상했던 것보다는 많이 비싸지 않았다. 인도네시아에서 먹는 음식은 비교적 우리 입맛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이곳에서의 음식도 괜찮았던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근처에 있는 프람바난 사원으로 이동했다. 사원의 입구가 마치 공원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서기 856년 산자야 왕조에 의해 세워진 힌두사원인 프람바난 사원은 이후 이슬람의 위세에 밀려 서서히 쇠락을 거듭해 왔고 수 차례의 지진과 건축자재로 쓰기 위한 도난 등으로 훼손되었다가 20세기에 들어 복원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2006년 자바섬에서 일어난 대규모 지진으로 인해 다시 커다란 피해를 입었는데 다행히도 중앙구역의 주 신전들은 심각한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곳의 입장료도 보로부드르 사원과 마찬가지로 외국인에게는 엄청난 바가지 요금을 책정해 놓았는데 나는 패키지 요금으로 미리 해 놓아서 이곳에서는 입장권으로 바꾸어 입장하게 된다. 인도네시아도 엄청난 관광자원이 있는 나라인데 입장료로 수익을 거두기보다는 다른 상품을 개발해서 수익을 올릴 생각은 하지 않고 비싼 입장료로 끝낼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프람바난 사원은 입장해서 사람들을 따라서 가다 보니 보인다. 이 신전도 가까이 가서는 사원 전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이곳이 사원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 좋은 포토포인드인 모양이다. 출입구가 아닌데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불교사원인 보로부두르 사원과 비슷한 검은 잿빛으로 외관상 색상은 비슷하지만 느낌은 다르다. 세계문화유산인 프람바난 사원은 힌두의 주요 3대 신인 시바, 비쉬누, 브라만을 모신 신전으로 이들이 타고 다니는 난디(소), 가루다(독수리), 앙사(백조)의 신전 등을 배치한 중앙 구역과 그 주위에 작은 신전으로 둘러쌓인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사원 입구에는 세계문화유산 642번째라는 간판도 커다랗게 세워져 있다. 프람바난 사원은 해질녘에 와야 그 아름다움이 절정으로 보이다고 하는데 오히려 나는 역광때문에 제대로 사진을 찍기 어렵다. 내 사진 찍는 실력을 탓해야 할 듯하다. 계단을 걸어 올라간 사원 안쪽으로 들어가니 정면에는 가장 규모가 큰 시바 신전이 자리잡고 있고 마주한 곳에는 작은 규모의 난디 신전이 있다. 오른편에 위치한 비쉬누 신전과 이와 마주한 가루다 신전이 있다. 시바 신전은 여기에서 가장 규모가 커서 높이가 47m에 이르며 동서남북 네 방면에 배치된 석실에 동쪽은 시바신, 북쪽은 그의 아내 두르가, 서쪽에는 아들 가네샤 그리고 남쪽으로는 아기스티야(성자)를 각각 모셔 두고 있다.
시바 신전 탑 안에는 석굴암처럼 신들이 모셔져 있다. 서양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는데 후레시로 비춰가며 꼼꼼꼼히 살펴보는 덕분에 구경을 잘했다. 하지만 이렇게 신전의 내부까지 아무 제한없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이 나로서는 좋기도 했지마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하다. 조금 더 보존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다. 신전을 둘러싼 회랑에는 힌두설화와 관련된 부조와 링가와 요니를 비롯한 다양한 장식물들이 양 옆을 가득 채우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탑과 신전을 만들었을까하고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프람바난 사원에는 라라 종그랑(Rara Jonggrang) 공주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보코왕국의 공주는 자신의 아버지인 왕을 죽이고 난 후 이 지역을 지배하던 반둥왕국 본도보소(Bondowoso) 왕자의 청혼을 거절하기 위해 왕자에게 하룻밤에 1,000개의 사원을 세운다면 결혼을 승락하겠다고 지키기 어려울 법한 조건으로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왕자는 지하의 신들을 불러내 새벽까지 999개의 사원을 만들었다. 깜짝 놀란 공주가 불을 피우고 밥을 짓고 닭들을 울게 만들어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나중에 자신이 롤로 공주에게 속은 것을 알게 된 왕자는 공주를 천번째 사원으로 만들어 버렸고, 그것이 프람바난 사원이라는 전설이다.
사진 뒷쪽으로 붉은 천막이 쳐 있는 곳에 무엇이 있는가 궁금해서 가 보았더니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옆에 있는 탑에서 떨어진 상부를 그대로 놓아 두었다. 유물 복원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인데 2006년 5월 27일 대지진으로 또 한번 피해를 입었고, 그 지진 때 떨어진 탑의 상부라고 한다. 탑의 상부가 이렇게 크다는 것과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어떠했는지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라는데, 그냥 탑위에 잘 올려 놓으면 더 아름다울 것 같은데 안타깝다.
이제 프람바난 사원 관람을 마치고 나간다. 그늘이 별로 없어 날씨는 덥고, 아침부터 보로부두르 사원을 둘러 보면서 세계적으로도 이름난 유물을 많이 본 탓에 이제는 좋은 것을 봐도 그것이 그것같은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런 유물은 하루에 다 볼 것이 아니라 나눠서 봐야 했는데...이곳에도 외국인 관광개이 많았지만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이 왔다.
출구쪽으로 향하는 길에 보이는 지진으로 무너져 복원 작업을 기다리고 있는 돌무더기들이다.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작업하던 인부들이 벌써 작업을 끝내고 퇴근하는 것으로 보였다. 몇 년전 그리스와 터키 여행을 갔을 때에는 너무나 많은 곳에 신전 유물이 흩어져 있는데 방치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왔는데 오늘 하루 족자카르타에 있는 사원군을 둘러보면서 많은 유물이 방치되고 있어 역시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하다.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복원을 끝내고 관광자원화를 만들고, 교육시킬 수 있는 유산으로 탈바꿈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몇십년이 지나고 큰 변화가 없는 모양이다. 아직은 문화재를 관리할 능력이 없어서 방치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중요성을 인식하고 보존하고 복원하리라 믿는다.
원래 내 계획은 하루는 보로부두르 사원을 구경하고, 다른 날을 하루 더 잡아서 프람바난 사원을 비롯해서 근처에 있는 사원군을 집중적으로 돌아볼 생각이었는데 족자카르타에서 차만 렌트하지 못해서 일정을 대폭 바꾸었다. 하루동안에 보로부두르 사원과 프람바난 사원을 모두 둘러 보려고 하니 프람바난 사원 주변에 있는 세우사원(Candi Sewu) 등을 볼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사원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와서 보기로 한다. 사원에는 다른 사원을 둘러볼 수 있는 셔틀차도 있다고 한다. 나오는 곳에 우산으로 예쁘게 만들어 놓은 길이 있었다. 요즘 어디를 가더라도 자주 보는 풍경이다.
출구로 나오다 보면 박물관이 보인다. 그냥 지나갈까 하다가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는데, 박물관이 무료라는 표식와 박물관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서 들어가 보기로 한다. 박물관 입구의 분위기가 리조트에 온 듯한 느낌이다. 조경이 예쁘게 잘 꾸며져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지진등으로 원래 위치를 잃은 유물들이 박물관 한켠에 모여 있다. 프람바난 안쪽에서 위치를 찾아 조립되지 못한 석상들로 보이는데 모두 자기가 가야 할 자리를 찾아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박물관 내부에는 다양한 프람바난 관련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이라 볼거리가 그런대로 많은 듯한데 프람바난 사원을 찾은 그 많은 관람객들이 거의 이곳을 건너 뛰고 가버린다. 그냥 사원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남기는데 더 집중한 것이 아닐까 싶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나가는 길에 잠시 둘러보고 갈만한데...
처음에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발견되었을 때의 사원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다. 현재 있는 모습뿐만 아니라 처음 발견되었을 때의 모습과 복원하고 있는 사진까지 보고 나니 훨씬 더 이해를 하기가 쉽다. 여러번의 설명보다도 한장의 사진이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어떤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곳을 보지 않고 나왔으면 같은 입장료를 내고 손해를 본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간활용을 잘해서 볼거리를 잘 배치해 놓았다. 박물관 아쪽 건물 내부에서는 기록영화도 상영하고 있었는데, 현지어로만 하고 있어서 아쉬움이... 그래도 눈으로 유믈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사원을 나오는 길에 시간을 조금만 더 투자해 프람바난 사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박물관 중앙에는 악기도 놓여 있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지만 너무 더울 것 같아 가까이 가보지는 않고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남기는 것으로 박물관 관람을 마친다.
출구로 나오기 전에 다시 한번 사원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을 더 남긴다.
프람바난 사원 역시 나가는 길은 기념품샵이 가득하다. 눈길을 주지 않고 가니 호객행위를 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빨리 기사 아저씨를 만나서 남아 있는 일정을 소화해야 해서 이곳에서 한가하게 기념품을 볼 시간이 없었다. 기념품은 이곳보다 말레오보르 거리에 있는 상점이 훨씬 더 저렴하지만 그곳에서조차 짐을 늘릴 생각이 없다. 생각보다는 사원을 나와서 주차장까지 가는 길이 멀고, 기념품 가게들이 생각보다는 많다. 상가가 많아도 관광객이 많으니 생활이 가능한 모양이다.
(17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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