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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공주여행 7-6 (공산성) (2015.11.5)

남녘하늘 2017. 9. 22. 00:38


  석장리 선사유적지 구경을 마치고 다시 공주 시내로 들어와서 그간 지나치기만 했던 공산성을 방문했다. 공주는 마라톤 대회에 참석하거나 다른 업무로 여러번 방문해 보았지만 공산성을 올라가 볼 기회가 없어 늘 바라보기만 하다가 이번 방문이 처음이다. 공산성은 웅진백제시기(475~538년)를 대표하는 백제의 고대 성곽으로 성곽길을 따라 걸으며 백제의 문화와 정신,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백제 시대에는 웅진성,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그리고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리워졌다고 한다. 공산성은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64년간 백제의 성으로 처음에는 토성으로 축조되었다가 조선 시대에 들어와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원래 있던 누각들이나 문루들도 모두 그 이후에 여러 차례 개축되었기 때문에 백제 시대의 건축 양식은 아니라고 한다. 






 성안쪽을 모두 둘러 보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서 성곽을 따라서 돌다가 볼거리가 있으면 가 보는 것으로 정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가장 먼저 가는 곳이 금서루로 공산성의 4개의 성문 가운데 서쪽에 위치한 문루이다. 1993년에 복원되었는데, 본래 위치에서 약간 남쪽으로 이동하여 조선시대 성문의 문루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금서루로 오르는 길에 수많은 공적비들이 세워져 있다. 주변에 흩어져 있던 공적비를 한 곳에 모아 놓은 듯하다. 금서루에 올라 금강을 보기 위해서 시계 방향으로 성곽길을 걷는다.  금서루에서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공산정 전망대가 나오는데 시원스러운 풍광이다. 






 해발 110m인 공산의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쌓인 성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아름답다. 성의 둘레는 대략 2.5km정도 되는데, 천천히 걸으면서 구경해도 두시간 정도면 모두 볼 수 있다고 한다. 성곽길은 예상했던 것보다 정비가 잘 되어 있고, 생각보다 넓어서 막상 걸어보면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금서루에서 금강 방향으로 향해 걷다 보면 전망대가 나온다. 오르는 길이 심한 경사가 아니고 출입문을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편한 마음으로 걸으니 공산정이라는 정자에 도착한다. 서쪽 금강변 구릉위에 위치한 공산정은 기록에는 없는 누각으로, 최근에 금강의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서 만든 누각인 듯하다. 역시 도착해서 내려다 보는 금강이 한폭의 그림같다. 위치 좋은 곳에 정자를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다.   





 금강 건너편에는 신 시가지와 아파트도 보이고 조성 중인 공원이 보인다. 전망대에는 배다리와 금강철교에 관한 이야기도 쓰여져 있다. 옛날 산성 방위를 지휘하는 공산성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쌍수정이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되어, 전망 좋은곳에 있는 공산정이 쌍수정의 역할을 대신하는 모양이다.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겨가면서 그 대신에 만들어 주었다는 금강철교도 발 아래 보인다.    






 공산성 전망대를 지나면 상당히 급경사의 내리막이 나온다. 내리막 끝에는 공북로가 있다. 공산성 북문인 공북루는 호남과 서울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출입문으로 앞면 5칸의 큰 규모의 누각이 있는데 너무 평이해 보인다. 공북루 앞쪽에 금강이라는 천연 해자가 있어서 다른 읍성의 성문과는 달리 높은 성벽과 성루를 세워 놓지는 않고 있다. 공북루 근처에는 아직도 복원되지 않은 유뮬이 남아 있는 듯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대규모로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공산성에서 가장 독특한 풍광을 하고 있는 연지와 만하루는 영은사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장방형의 연못인 연지는 금강의 물을 쉽게 확보 할 수 있고, 연못의 가장자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층을 이루게 단을 쌓았다. 연못에 접근 할 수 있도록 남쪽과 북쪽에 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9층탑을 거꾸로 세운 듯한 모습이라고 한다. 조선 후기의 누각 만하루는 조선영조(1724~1776)에 건립된 누각이다. 홍수로 붕괴되어 땅속에 묻혔다가 1982년 발굴 조사로 건물터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멀리서 보아도 멋있고, 가까이 보아도 독특하다.  









 영은사는 연지와 만하루 옆 금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시대 사찰로 세조4년(1458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묘은사로 불렸는데 이괄의 난이 일어 났을 때 이곳으로 피신한 인조가 은적사로 불렀다가 다시 영은사로 고쳤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의 합숙소로 사용되었으며, 백제 때의 사찰이라는 설도 있고 고려 때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오늘은 공산성 성곽 일주를 하기로 마음 먹어서 사찰 내부에는 가보지 않았다.  





 만하루를 지나치면 공산성 순환길 중 가장 힘든 코스가 이어진다. 조금 가파른 언덕길을 나오는데, 나는 평소에 운동을 해서 상관없지만 가족들은 거의 등산 수준인 듯하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강 쪽을 보면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다. 산세를 거스르지 않고 따라가며 성벽을 쌓았기에 오르막 구간에서는 성벽 축대와 통행로만 남아 있는 곳도 많다. 땀을 조금 흘리며 오르막길을 오르니 힘들게 올라온 사람들에게 쉬어가라며 벤치도 준비되어 있다. 강 너머로 도심이 내려다 보인다.   






 흐르는 금강물을 내려 본다는 뜻의 임류각은 높이 15미터의 화려한 건물이다. 백제 동성왕 22년(500년) 봄에 지은 누각으로, 주변에서 ‘유’라고 쓰여 있는 기와가 나와서 임류각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임류각에서는 금강과 아름다운 산세를 감상할수 있는 종합적인 조경 건축이다. 전망이 좋을 것 같은 임류각 위를 올라가서 금강쪽을 내려다 보고 싶은 아음도 있었지만 함께 한 가족들이 날씨가 더우니 이제는 빨리 산성을 돌고 가자고 한다. 여기가 공산성의 높은 지역이어서 더 이상 올라가는 코스는 없을 듯하다. 






 공주 공산성에는 4개의 성문이 동서남북으로 있는데, 동쪽에 설치된 문이 영동루다. 이 동쪽문은 무너져서 없어졌던 것을 1993년에 2층 문루로 복원을 했다고 한다. 이름도 기록으로 남아있는 게 없어서 2009년 시민들의 공모를 통해서 문루의 명칭을 영동루라고 지었다는 안내판에 적혀 있었다. 영동루가 복원이 되면서 공산성의 4개 성문이 완성이 된 것이다. 영동루도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고 이곳에서부터 공주의 구도심이 보이기 시작한다. 큰녀석이 옷을 여러겹 입고 있어 산성을 오르내리느라 땀을 많이 흘려서 속옷을 하나 벗으라고 하니 공공장소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하다가 내게 한소리 들었다. 결국 하나 벗었지만 하기 싫다는 것을 억지로 시켰더니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공산성 성벽의 동서남북에 배치한 깃발은 송산리 고분군 6호분 벽화에 있는 사신도를 재현한 것이다. 사신도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고 우주의 질서를 지키는 상징적인 동물로 외부의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의미가 있다. 깃발의 배치는 송산리 고분군 6호분에서 사신도가 발견될 당시 사신도가 벽면에 그려져 있던 위치이며, 동쪽의 청룡, 서쪽의 백호, 남쪽의 주작, 북쪽의 현무로 동서남북 각 방향에 따라 배치하였다. 지금 보이는 깃발은 붉은색이기 때문에 성의 남쪽 방향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큰 녀석에게 웃으라고 시켰더니 아직 억지 웃음이다.  






 공산성의 출입 통로로 이용되고 있는 진남루는 성의 남문에 해당되며, 조선시대에는 삼남의 관문이었다고 한다. 원래 토성이었던 것을 석축성(石築城)으로 고쳐 세운 것은 조선 전기의 일이다. 진남루도 그 때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금 있는 건물은 1971년에 전부 해체하여 원래대로 복원한 것이다. 진남루는 공산성의 중심인 쌍수정와 백제 왕궁터와 가깝고 공주 구도심과도 가까웠던 까닭에 조선시대에는 진남문을 통해서 출입하던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갈수록 호젓해지는 성벽 위를 걸어 더 안으로 더 깊숙히 들어가면 전각이 있는데 쌍수정이다. 당연히 백제 때의 것은 아니고 조선시대의 것으로 쌍수정은 인조 임금과 인연이 있다. 이괄의 난 때 인조 임금이 피난해 있었는데 쌍수정에서 반란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들고,  이 곳에 있던 나무에 정삼품의 벼슬을 내리고 쌍수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쌍수정 밑 너른 공터는 왕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곳이다. 왕궁 터라고 하지만 유적과 우물이 발굴된 것 이외에는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왕궁이 있었다고 생각하기엔 터 자체가 너무 좁다는 느낌이다.   





 더운 날씨에 땀 흘려가면 찬찬히 2시간 정도 공산성 성곽길을 돌아 보았다. 11월의 날씨가 이렇데 더웠는데 한여름에 공산성 성곽을 한바퀴 돌려면 체력과 인내심이 대단해야 할 것 같다. 다시 정문 역할을 하고 있는 금서루로 되돌아 왔다. 금서루 근처에는 공주 전통시장인 산성시장, 공주의 옛 근대식 건축물인 충청남도 역사박물관, 중동성당, 공주문화원 등 공주의 다양한 관광지가 있어, 동선 고민 없이 공주를 알차게 여행할 수 있다. 카페도 많이 보이고 음식점도 상당히 많아 보인다. 하지만 오늘은 공산성까지 보는 것으로 공주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곡사를 한번 더 둘러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