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C산악회에서 송년 산행을 남산 성곽길로 정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너무 멀리 산행을 가게 되면 회원들의 참여가 저조할 것 같은 현실적인 이유도 고려가 되었다. 이동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고, 산행을 마치고 식사를 하고 헤어져도 그다지 늦지 않게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남산 성곽길은 한양 도성길로 개발된 일부 구간으로, 최근 서울시에서 복원한 한양도성길은 성곽의 전체거리 18km의 일부 구간이다. 백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의 능선을 모두 잇고 코스를 만들어 놓았다. 조선시대 성곽을 쌓고 사방에 대문을 내고 그 사이에 작은 문을 두었다. 4대문은 동쪽에 흥인지문, 서쪽에 돈의문, 남쪽에 숭례문, 북쪽에 숙정문이고 4소문은 동북 혜화문, 동남 광희문, 서북 창의문, 서남 소의문인데 흥인지문 앞에만 옹성을 두었다. 숭례문 앞에는 바람을 피할 만한 장소가 없어 모임 장소로는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오늘 트레킹 코스는 숭례문에서 출발해서 백범광장을 거쳐 안중근 기념관 앞에서 남산을 오를 예정이다. 남산 팔각정과 남산 타워를 지나 남산 성곽길을 따라 하산을 하다가 남산 북측 산책길을 따라 걷다가 남산골 공원으로 하산할 예정이다. 산행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부족하고 트레킹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덕수궁에서만 조선시대 복장을 한 군인들이 의전행사가 있는줄 알았는데 이곳 숭례문에서도 의전행사를 한다. 날씨가 따스하면 많은 사람들이 구경할 터인데 오늘은 추운 날씨여서 관람객이 많지는 않다.
숭례문은 국보 제1호로 한양도성의 남문이자 정문이다. 1398년 완공하였고, 1448년에 개축했다. 1907년 교통에 불편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좌우 성벽이 헐린 뒤에는 문화재로만 남았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었으나 2008년 2월 방화로 목조 건물인 1층 약 10%, 2층 문루 약 90%가 소실되었다가 금년 5월 복원해서 개방했다. 이때 숭례문 서쪽 16m, 동쪽 53m의 성벽을 연결하였다. 숭례문 현판의 글씨를 세로로 내려 쓴 이유는 숭례문을 마주하는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처음으로 남대문에 직접 가서 출입구 천장에 단청으로 그려진 용그림도 구경했다. 잘 복원한 숭례문을 배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진도 찍고 구경하고 있었다. 단체 사진을 한장 찍고 출발한다.
숭례문에서 남산 타워쪽으로 조금 이동하니 남산공원이 나온다. 바닥에 한양도성 순성길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주변에 있던 건물들을 모두 정리해서 제법 공원답게 만들어 놓았다. 여기서부터는 남산 둘레길과 일부 구간이 겹친다. 서울시에서 이런 둘레길을 비롯해서 북한산 둘레길 등 새롭게 트레킹 코스(trail)를 많이 만들고 있는 듯하다.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지는 탓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백범광장. 백범광장 주변에는 백범 김구 선생 동상, 성재 이시영 선생 동상,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동상 등 항일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기념물이 많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일제가 조선 신궁을 지으면서 성곽을 훼손했던 곳이다. 일제 식민지배의 상징을 항일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대체한 것이다. 돈을 들여서 볼거리도 많이 만들어 놓고,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날씨가 춥지 않았을 때는 관광객이 많았는데, 오늘은 뜸한 것 같다.
몇 년만에 다시 남산도서관 뒷쪽으로 해서 남산을 걸어 오르니 잠두봉 포토 아일랜드가 나온다. 과거에 이곳에 바위언덕이 있어서 전망이 좋았던 곳에 나무 데크를 설치하는 등 잘 꾸며 놓았다. 남산 서쪽 봉우리는 누에머리를 닮았다하여 잠두봉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곳 전망대에 오르면 나무가 시야를 가리지 않고 서울시내 빌딩 숲과 주변 풍광을 살펴 볼 수가 있는데,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건물들이나 명소을 알려주는 안내 표지판도 있다. 포토아일랜드라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사진을 한 장 남긴다. 미세 먼지의 영향인지 시야가 좋은 날은 아니다.
남산 타워가 보인다. 남산이 가까운 곳에 있지만 걸어서 남산을 오르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오늘도 남산을 걸어 오르는 사람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도심에서 가까운 남산을 한번씩 이렇게 걸어 오르는 것도 괜찮은 일인데, 다들 바쁘게 살고 있는 모양이다. 조금 더 오르니 남산 봉수도 보이기 시작한다.
남산의 가장 높은 장소인 팔각정이다. 걸어서 오르는 동안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는데 정상쪽에는 역시 사람들이 많다. 버스나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남산에 오를 때마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다른 회원들도 자주 올랐던 남산 정상이어서 따로 남산타워 쪽은 방문하지 않고 남산 팔각정을 배경을 사진 한 장만 찍고 하산을 시작한다.
남산 팔각정에서 내려 오면 버스 정류장이 나오는데 버스 정류장 옆으로 다시 본격적으로 성벽이 시작된다. 성벽 옆으로 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성곽 바깥쪽으로 성곽길을 따라가다 보면 소나무 숲이 나오고 나무 의자가 만들어져 조금 쉴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이제부터는 오르는 구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곳에서 처음으로 쉬면서 간단한 간식을 먹는 시간을 가졌다. 날씨가 쌀쌀하기는 하지만 바람이 많지 않아서 아주 춥지는 않았다. 그래도 오래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간단하게 서서 준비해 온 간식을 나눠 먹었다.
간식 시간을 마치고 다시 성곽길을 따라서 남산을 내려온다. 몇 년전 처음으로 이 길을 한번 다녀본 이후 두번째 동쪽편 성벽을 따라서 내려가 본다. 겨울이어서 숲속 길이란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걷기 좋은 길이다. 나름 겨울이서서 내려 오는 길에 보이는 서울의 조망도 썩 괜찮다. 처음 이 길을 걸을 때 남산에 이런 숲 길이 있다는 것에 자주 와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던 것 같다. 거꾸로 이 길을 오르려면 조금 힘은 들겠지만 숲이 우거졌을 때에는 걷기 좋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국립극장이 있는 곳까지 내려와서 남산공원의 북측 순환로 산책길로 접어 들었다. 내가 서울에서 살 때 달리기 연습을 하러 자주 찾았던 장소로 남산에서 가장 좋아하는 산책로이기도 하다. 걷거나 뛰기에도 좋고, 적당한 오르 내리막이 있으면서 도심 속에서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이나 맹인들도 자주 찾아와서 산책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산책로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매연이 심해도 이곳에서는 매연을 느끼지 않는다.
북측 순환로 산책길에서 남산 한옥마을쪽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산행을 마치고 식사를 한옥마을 인근에 있는 충무로에서 하기로 했다고 한다. 한옥마을로 내려 오는 길에 서울정도 600년 기념 타임캡슐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수도인 한양이 수도로 정해진지 600년을 기념하여 1994년 당시 문물을 후세에 전해주고자 만들어졌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는데 그동안 어디에 있느지 몰랐는데 한옥마을 윗쪽에 조성되어 있었다. 화산이 터진 분화구와 같은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안쪽으로 적당한 크기의 광장이 있고 그 가운데에는 커다란 원형 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보신각 종을 본뜬 모양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살펴 보아도 닮은 구석이 없다. 이 돌의 가장자리에는 서울시와 친교를 맺은 각국의 수도 시장들의 친필 사인이 있다. 타임 캡슐 에 들어가 있는 수장품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은 되어 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들어 갔는지는 알 수 없고, 다만 600년이 지나서 타임 캡슐을 열어 보았을 때 후손들이 그 가치를 인정해 줄지 궁금하다.
타임캡슐 광장에서 내려오면 서울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던 사대부 가옥들을 한 곳으로 모아 복원해 놓은 남산 한옥마을이 나온다. 도심 속에 있는 민속촌을 연상케 하는데, 삼청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을 비롯해서 옥인동 윤씨 가옥, 관훈동 민씨 가옥,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탁영 재실 등 모두 5채의 한옥들을 그대로 옮겨와 복원시켜 놓았다. 현대화된 서울 한가운데서 조선 사대부 가옥을 보는 것은 자라나는 신세대들에게나 한국을 찾은 외국 관광객들에게는 호기심 가득한 볼거리가 된다. 그간 여러 번 방문해 보았지만 산행의 마지막 코스가 남산 한옥 마을이다.
남산(남산골) 한옥마을은 1994년 서울 정도 6백 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타임캡슐을 묻은 타임캡슐 광장과 남산의 모양을 원래대로 살려 만든
전통 정원, 그리고 옛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한옥 마을을 함께 조성한 곳이다. 오늘도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 남산 한옥 마을을 잘 만들었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 같다. 규모를 조금 더 크게 했으면 좋았을 터인데 규모가 적은 것이 아쉽다. 그 전에 이곳에 군부대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한옥 마을을 끝으로 남산 둘레길 산행을 마쳤다.
남산 한옥마을에서 나와 충무로 역에서 가까운 동방명주라는 중식당으로 이동했다. 충무로 역에서 4번출구 앞쪽에 있었는데 단체손님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미리 예약해 두었던 모양이다. 동방명주라면 중국 상하이에 있는 고층 타워인 동방명주를 떠올릴 수도 있는데 쓰는 한자가 다르다. 상하이에 있는 타워 이름은 東方明珠이고 이 중식당은 주방을 의미하는 부엌 주(廚)자를 쓰고 있다. 2층 전체를 예약해 놓아서 다른 손님들 신경쓰지 않고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
식사도 잘 나왔고, 우리 동문끼리 이용할 수 있어서 부담없이 뒷풀이를 진행했다. 교수님께서 구하기 힘든 술도 협찬하고 술과 얽일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 주셨다. 보통때 같았으면 뒷풀이 장소에서 간단하게 맥주나 막걸리라도 한잔 했을 터인데 오늘은 이곳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서 광화문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석하기로 친구와 약속을 해 놓아서 술을 마실 수 없었다. 식사 시간이 많이 길어지는 바람에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중간에 조용히 먼저 나왔다. 산행을 도심에서 가까운 남산을 다녀 왔기에 참석할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전날인데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고 해야 할 일이 많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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