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금모래해변을 떠나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동했다. 제주에 오기전에 어느 맛집을 찾아가야 할지를 미리 준비해준 총무님 덕분에 그냥 정해진 장소를 찾아가면 되는 편안한 여행이다. 오늘 점심은 삼방산을 지나 제주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하다 형제섬이 바로 보이는 곳에 위치한 보말칼국수 집이다. 보말은 고둥을 통칭하는 제주어라고 한다. 옛날에는 보말칼국수가 유명한지 모르고 있었는데, 외지인이 많이 찾아오면서 덩달아 유명해진 음식인 듯하다. 하여간 TV에도 나오고 꽤 유명한 집이라고 한다. 맛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음식점 주변의 풍광이 너무 멋있다.
보말이 제주에서만 나는 건 아니지만 제주 특유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만큼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그 뜻을 이루게 된다. 얼핏보면 식당보다는 카페같아 보이는 이 식당은, 주변에 관광객이 별로 보이지 않았음데도 식당에는 손님이 제법 있는 것으로 봐서 꽤 유명한 곳인 듯하다. 올래길이 지나가는 곳에 있는데다 풍광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어 더욱 유명한 곳이 된 듯하다. 이집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보말칼국수와 돔배고기를 시켜 먹었다.
음식을 맛있게 먹느라 정작 음식 사진을 찍는 것을 잊어버려서 음식 사진은 없다. 형제섬 보말칼국수는 면을 직접 반죽하고 숙성해서 사용한다고 하는데, 보말과 매생이가 들어간 칼국수 맛은 소문에 비해서는 평범한 정도였던 것 같다. 칼국수와 함께 간단하게 돔배 고기도 한 접시 추가해서 먹었는데, 이번 여행이 맛있는 음식을 두루 먹어 보자는 취지에 부합한 점심이었던 것 같다. 아침 먹은지 얼마 되지 않았고 다른 일행과 달리 올래길 9코스 월라봉에도 오르지도 않았는데 또 배불리 많이 먹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산방산 아래에 있는 용머리해안 하멜상선 전시관을 방문했다. 아들이 어렸을 때 방문해서 하멜에 관한 내용을 알려주려고 방문했었는데 십 수년만에 다시 찾아오게 되었다. 그 사이에 재투자가 되지 않았던 모양으로 하멜 상선 전시관은 많이 낡아 있었다. 전시관으로 사용되는 배는 곳곳이 녹슬어 있고, 페인트도 벗겨져서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만든다. 그래도 이국적인 상선의 모습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뱃머리에 올라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 보았다.
박물관처럼 꾸며 놓은 배 내부도 둘러 보았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으로 하멜 일행을 태우고 나가사키로 항해하다 난파당한 스페르 웨르호를 본떠서 만든 배다. 쾌속선이었으며 크기는 중형보다 약간 컷고 하며, 배의 길이는 약 40m 너비는 7.5m라고 한다. 배 내부에는 하멜의 육필 보고서도 사본을 전시해 놓았다. 제주도에 도착한 하멜 일행들이 13년간에 걸친 조선에서 생활을 기록한 육필 보고서에는 관원에게 체포된 경위와 조선에서의 13년간의 생활을 기록해 놓았으며, 조선에 대한 실정과 풍속 생활등을 견문한 기록들이 서술되어 있어 당시 조선의 사회실정 풍속 생활등을 가늠해 볼수 있는 귀중한 사료라고 한다.
하멜 전시관 구경을 마치고 용머리 해안을 구경하려고 이동했는데 오늘 파도가 높아서 입장이 되지 않는다고 매표소 문을 닫아 놓았다. 나는 용머리 해안도 어러번 와 보았지만, 일행중에 처음 온 사람도 있어 제주도의 특별한 지형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아쉽다. 용머리 해안을 가보지 못하고 그냥 삼방산과 삼방사를 구경하기로 했다. 이곳에서도 차량을 하멜 전시관 앞에 세워 놓았기에 운전을 책임진 나와 친구 두명은 다시 차량을 챙겨서 삼방산 아래로 가기로 했다. 하멜 전시관 주면에 놀이기구도 만들어진 것을 보니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모양이다.
용머리해안에서 올라와 일행들이 산방산 중턱에 있는 삼방굴사를 찾는 동안 나는 이미 여러번 올라가본 삼방굴사 대신에 입구에 있는 산방사와 보문사를 둘러 보기로 했다. 약간의 개인적인 시간이 주어져서 보문사를 둘러 보았는데 전망이 좋은 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산에 오르면서 보문사를 산방굴사로 오해하는지 보문사라고 입구에 두번이나 적혀 있었다. 용두관세음보살과 부처님 진신사리석탑을 지나 안으로 더 들어가니 오백아라한과 함께 청동 약사여래부처가 있었다. 12가지 소원을 이루게 해준다는 약사여래 부처는 지극정성으로 공양하면 아픈사람은 고쳐주거나 부자가 되게 해준다고 한다. 이런 부처가 실존한다면 세상 살기 참 편할 것 같다. 그래도 믿는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니 그냥 아무 소원 빌지 않고 예만 갖추었다.
우리나라 전국에 있는 어느 절을 가 보더라도 절터는 양지 바르고 비교적 전망도 좋은 곳에 위치해 있는 곳이 많은데, 이곳 보문사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광도 참으로 멋지다. 조금 전에 방문했던 하멜기념관과 전시관도 내려다 보이고, 아직 파릇파릇한 느낌의 초지도 보기 좋았다. 보문사는 생활불교 실천도량으로 사회참여 활동에 나선다고 하는데 사찰 곳곳에 불교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붙어 있었고, 제주도라는 지역의 특색을 보여주는 부처상과 나한상이 있었다.
삼방산 아래 보문사와 산방사는 길 하나로 나뉘어져 있었다. 올라갈 때 오른쪽이 보문사가 있고 길 왼쪽이 산방사가 있었다. 보문사 구경을 마치고 바로 옆에 있는 산방사에도 들러 보았다. 산방사에는 해수관음상과 미륵불상, 석탑, 비석 등 갖가지 조형물이 배치되어 있었고, 해수관음상은 높이 9m, 무게 약 60t에 달하는 제주도에서 가장 큰 석불로, 경기도 포천에서 운반해온 화강암 통돌을 다듬어 1996년 조성했다고 한다. 해수관음상이 바라보는 사계리 앞바다로는 용머리해안과 사계리포구, 형제섬, 마라도, 가파도가 펼쳐지며 장관을 이룬다. 굳이 산방굴사에 오르지 않아도 전망이 너무 좋았다.
산방산에서 내려와 산방산에서 멀지 않은 제주 최대 녹차 밭인 오설록 뮤지엄을 방문했다. 주차장 앞에서부터 푸르른 녹차 밭이 펼쳐지는데 도순다원으로도 불린다. 차 밭과 녹차공장 그리고 티 뮤지엄이 제주 오설록의 중요 구성요소다. 이곳 녹차밭은 1983년에 아모레퍼시픽의 고 서성환회장의 지시로 15만평의 땅을 개간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녹차밭과 함께 붙어 있는 오설록 티뮤지엄은 녹차와 한국 전통차 문화를 소개하고, 널리 보급하고자 2001년 9월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차 박물관이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문화공간으로 차 유물관, 자연친화적인 휴식공간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받는 문화공간이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방문했는데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다.
중국 관광객이 줄어서 내국인들이 제주 관광하기 좋다고 해서 오설록뮤지엄도 한가할 줄 알았는데 잘못된 예상이었다. 이곳에는 한국사람도 많았고,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중국 관광객도 많아서 우리처럼 단체 관광객이 방문하기에는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차를 한잔 하려고 해도 좌석을 잡을 수도 없었고, 차를 한잔 하려고 해서 엄청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어서 그냥 전망대에 한번 올라서 차밭을 구경하는 것으로 방문을 마쳤다. 사람이 없다는 정도에도 이렇게 많은데, 중국 단체 관광객이 찾을 때에는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많이 찾을 수 있도록 상품개발과 컨셉 등 잘 관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서귀포 동문로터리 근처에 있는 서귀포 상설시장을 찾았다. 올레시장이라고도 불리는데 제주시에 동문시장이 있다면 서귀포에는 올레시장이 유명하다고 한다. 일행들을 시장 입구에 내려주고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는 길에 가벼운 접촉사고가 있었는데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다른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연락처를 주고 나중에 처리하자고 왔는데 경찰에 뺑소니로 신고를 해서 황당했다. 당돌한 20대 여성운전자였는데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해서 결국 보험회사에 연락을 해서 처리하고 나중에 경찰서에 경위서를 내는 것으로 종결했다.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표시를 내지 않느라 혼자서 마음고생을 했다. 시장에서 장을 보고, 제주도 명물인 대방어를 비롯해서 여러가지 회를 준비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이번 제주여행은 먹고 싶은 것 제대로 먹고 가자는 컨셉이다.
숙소로 돌아와서 제대로 갖추진 저녁을 준비했다. 내일 아침에는 풀코스 마라톤 대회는 아니지만 트레일런 대회가 개최되는지라 오늘 밤에는 술은 가능하면 적게 먹자고 했었지만, 맛있고 풍성한 안주를 앞에 두고 절주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재래시장에서 준비해 온 회를 비롯해서 갖가지 음식을 앞에 두고 과식은 물론 절주의 의지도 지키지 못했다. 도시에서는 이런 회를 먹기도 쉽지 않은데 함께 했던 오신학선배님의 배려로 원없이 맛있는 회를 마음껏 먹었다. 제주에서의 두번째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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