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과 생활 /마라톤대회 후기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참가후기 (2003.10 19 )

남녘하늘 2008. 2. 28. 13:23
  (3시간 8분 2초)

아침에 뉴스를 들으니 춘천의 아침기온이 영상 3도, 낮 기온은 18도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한다. 달리기에는 적당한 날씨가 될 것 같다.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지 않으려고 전날 춘천에 왔는데 마음의 부담때문인지, 다른 이유인지는 모르나 밤새도록 꿈을 꾸고 깊은 잠을 자지 못해 상쾌하지는 못해도 컨디션은 그런대로 괜찮다.
윤동규씨가 준비한 맛있는 아침식사를 하고 운동장에 도착. 반가운 지인들을 만나고 출발선에 섰다.
여러 사람들에게 이번 춘마에서 Sub-3를 하고 싶다고 말해서인지 만나는 사람마다 목표 달성하라고 덕담을 건넨다. 나도 내심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해 왔기에 이번 대회에서 목표달성해 고수소리 한번 듣고 싶기도 했고. 인터벌 훈련을 하지 못한것을 빼놓곤 모든 준비는 완벽했다.

 

 

 

 

10시 5분. 총성과 함께 출발. 앞쪽이 있는줄 알았던 우나기님이 500M 지점에서 뒤에서 나타났다. 함께 갈 수 있는곳 까지 같이 가자고 동행. 10Km 통과시간 42분. 초반 언덕길을 조금 천천히 달리고 내리막이 시작되는 3Km 이후부터는 4분속도로 달렸다.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함께 출발하고 달려서인지 움직임이 모두 다 비슷하다. 무리해서 빨리 나가는 사람도 없고 뒤로 쳐지는 사람도 없고. 10Km를 지나면서 오른쪽 발바닥에 이상징후가 느껴진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려는 느껴진다. 경기 초반부터 물집이 잡히면 레이스운영에 막대한 차질이 생기는데 걱정이 많이 된다. 우나기님과 함께 가려던 계획은 수정해 먼저 보내고 조금 속도를 늦추어 보았다. 속도를 늦추어도 물집이 점점 커지는 것이 느껴진다. 낭패가 아닐 수 없다. 20Km까지의 평균 속도는 Km당 4분 10초. 18Km지점에서 계속 커지던 물집이 결국 터졌다. 물집이 터지기 전까진 불편한 느낌이 있었는데, 물집이 터진 후에는 발이 아프기 시작했다. 쓰라린 느낌부터 시작해 나중엔 뛰기에 너무나 아팠다.

18Km이후론 정말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동안 준비해 온 것이 아까워서 포기할 수가 없었다. 주변의 경치도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나를 추월해 가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밟으며 몇 십미터를 가면 또다른 사람이 추월해 가면 또 그 사람을 따라 몇 십미터를 나아가는 방법으로 남은 길을 줄여나갔다. 중간에 시계마저 작동이 되지 않아 옆에 달리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계속 물어보면서 남은 거리와 목표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가끔씩 "허남헌님 힘"을 외쳐주며 추월해가는 런클사람들때문에 힘을 받기는 했지만 고통을 줄이진 못했다. 근력이나 힘은 남아 있어 고통스럽더라도 이 상태로 계속 달려주면 목표시간에 달려들어갈 수 있는데, 하지만 발바닥을 고통은 너무 심했다.

30Km 통과 시간은 2시간 7분. 통증을 무릅쓰고 20키로이후 Km당 4분 24초의 속도로 달렸다. 이제 남은 거리는 12Km. 목표시간까지는 53분. 발바닥의 통증만 없다면 한번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30Km를 통과하면서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그동안 준비한 것이 너무 아쉽기는 했지만 더 무리를 하면 몸에 큰 부상이 올수 있단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통증때문에 착지자세가 안좋았는지 오른쪽 종아리와 허벅지에 좋지 않은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몸이 이상신호를 보내면 그것에 순응해야지 역행하면 안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경기를 과감히 포기해야 하는 것인데 그것만은 못했다. 세시간 안에는 들어가지 못해도 나의 최고 기록은 갱신하고 싶었다. 정말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이지.

20Km 이후 남은 거리를 알려주던 Km의 표지판. 나에겐 이제 얼마만 더 가면 이 고통이 끝날 수 있겠구나를 알려주던 나침판 같은 존재였다. 40Km를 조금 더 지나고 나서 3시간이 넘었다고 옆에서 달리던 사람이 알려주었다. 이제는 기록이 중요하지 않았다. 아픈 고통을 이겨내고 완주를 할 수 있는 내가 대견했고 미련스러웠다.
결승점의 통과 시간. 3시간 8분 2초.

그래도 들어오니 너무 좋았다. Sub-3를 했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완주도 힘들었다고 얘기하고 앞으로는 펀런을 즐기겠다고 공언했다. 신발을 벗어보니 오른쪽 양말과 운동화 바닥이 온통 피범벅이다. 도저히 양말을 벗어 상처부위를 확인해 보고 싶지가 않았다. 조금은 두려워서. 뛸때는 그런대로 쩔뚝거리지 않고 뛰었는데,운동장을 들어온 이후에는 당장 걷는 것도 불편하다. 그나마 정신력의 승리였던것 같다. 목욕탕에서 상처부위를 보니 물집이 터지고 살이 찢어져 있어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것 같다. 욕심이 남긴 상처들...

오늘의 기록이 나의 한계임을 인정한다. 또 다시 욕심이 생겨 도전을 해 볼지 모르지만 이 순간 이후부터는 우리 회원들을 위한 페이스 메에커나 하면서 즐겁게 달려보련다.

즐겁고 편안한 달리기. 앞으로 나의 모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