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약간의 이슬비가 내린다. 기상상태가 썩 좋은 편은 아닌듯 하다. 숙박했던 이케부쿠로에서 JR 사이쿄센(埼京線)을 타고 우키마 후나토(浮間舟渡)역까지 이동, 역에 내리니 대회에 참가하는 참가자가 엄청나게 많다. 역에서 대회장까지는 걸어 약 15분의 거리라고 하는데 역에서 대회장까지의 무료 환승버스가 엄청 많이 운영되고 있어 불편함 없이 대회장에 접근할 수 있다. 아침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마라톤참가 복장을 한 참가들이 엄청나게 많다.
우리나라의 서울마라톤클럽에서 운영하는 서울마라톤대회와 운영하는 형식이나 대회장의 분위기, 주로들이 너무나 많이 흡사하다. 풀코스 참가자만 1만 5천명. 대회가 시작된지 9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대회 운영이 상당히 체계적이고 깔끔하다.
다만 달리는 주로가 도심을 통과하지 않고 아라가와 강변을 뛰는 코스인지라 이국적인 모습을 기대하기가 어려웠고 (어짜피 일본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낄수 있는 곳도 아니지만) 응원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아 흥은 나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서 참가한 대회인지라 상관은 없다. 동경 시내에서 열리는 유일한 공인코스여서 동경에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일본전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가한 것 같았다. 외국인 참가자는 거의 보이질 않고 대회 책자를 살펴보아도 나처럼 영어로 이름이 쓰여진 참가자는 가뭄에 콩나듯 하다.
출발하기 앞서 접수처에서 배번호를 찾고 대회장근처를 둘러 보았다. 참가자가 워낙 많기는 하지만 대회장의 장소가 넓어 모든 일이 처리하는데 큰 무리가 따르지는 않는다. 이곳의 주자들은 대부분이 조그마한 휴대용 돗자리를 준비해와 그곳에서 준비를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참가 인원이 많다보니 다른 대회와는 달리 물품보관소가 운영되고 있어 자신의 참가번호 끝자리의 번호장소에 본인이 보관하게끔 되어있다. 큰 도시라서 이곳에서는 분실물이 발생하는지 물품보관소를 엄격하게 운영하고 있다.
출발에 앞서 스트레칭 시간. 하지만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질 않고 그냥 축제 분위기이다. 몇만명의 사람이 한곳에 모여 있으니 그 사람들만으로도 열기가 치솟는다. 다행히 대회 시작전에 이슬비는 그치고 구름만 잔뜩 끼어있다.
서서히 출발장소로 이동. 기록순으로 주자의 출발장소를 지정해 놓았는데 도로의 한쪽 방향으로 세워 놓으니 그 끝이 보이질 않는다. 제한시간이 7시간이어서 초보자들도 많이 참가하는 것 같다.
드디어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주로가 2차선 정도의 도로이어서 풀코스 참가자 1만 5천명을 포함해 5Km, 키즈런을 포함 2만여명이 넘는 주자를 모두 수용하기에는 조금은 벅차 보인다. 기록순으로 배번을 부여하고 그 배번순으로 출발을 시킴에도 첫 몇 Km는 정체가 대단하다. 오늘 역시 기록은 크게 신경쓰지 않고 즐기러 왔기에 초반의 정체가 신경은 쓰이질 않으나 생각보다는 너무 청체가 심하다. 그나마 참가인원을 1만 5천명으로 정하고 조기에 마감하였기에 이정도이지 참가하겠다는 사람 모두를 받았다면 대회 자체가 정상적인 운영이 되지 못할 것 같아보였다.
그룹별로 출발시간을 일정시간 띄어 놓았으면 좋았을텐데 그냥 순서대로 계속 출발을 시키니 혼잡이 더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생각일 뿐 그들이 나름대로 더 많은 생각을 해서 내린 결론일텐데 난 그저 달리기나 하면서 즐기기만 하면 될 뿐...
아라가와 강은 강폭은 한강보다 훨씬 좁지만 주변의 관리 상태나 이용상황은 한강보다 잘 해 놓은듯 하다. 미니 골프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곳곳에 체육시설등이 갖추어져 있기는 하지만 역시 강변으로만 달리니 지루함은 어쩔 수 없다. 뚝방 너머로 고층 아파트가 간혹 보이기는 하지만 그 이외에는 뚝방넘어 바같을 볼 수가 없고, 도쿄의 발달한 철도교통의 영향으로 아라가와 강을 지나는 철교는 엄첨 많이 본 것 같다.
달리면서 동아마라톤 셔스를 입은 사람과 한글로 쓰여진 셔스를 입은 주자를 발견해 우리나라 사람인 줄 알고 말을 걸었더니 우리나라 대회에 참석했던 일본인들이었다. 일본 사람들도 한국에서 개최되는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다 보니 우리나라 대회 참가 셔스를 입고 뛰는 사람들이 보이는 것 같다.
7Km 지점에서 한글 표시와 태극기가 달린 런클 복장을 입고 뛰는 나를 보고 일본사람이 말을 걸어온다. 일본 국토교통성 육상연맹에 소속되어 있는 고구레 야스도모(木暮 康友)님이다. 자신도 지난주에 동아마라톤 대회에 참석했다면서 이후 결승점까지 내내 함께 뛰었다. 세 시간 가까이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뛰었더니 나중에는 많이 친해진 듯하다. 마라톤을 한다는 것으로도 어떤 교감이 있을 수 있는데 나와 비슷한 3시간 40분 정도를 목표로 삼고 뛰면서 여러가지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반환점을 돌아서니 맞바람이 엄청나다. 아라가와 강이 남북으로 흐르고 있어 북풍이 심하게 부니 반환점으로 갈 때는 몰랐는데 반환점 이후 앞으로 나가기가 힘들 정도이다. 오르막이 있는 곳에서는 바람에 밀려 뛸 수가 없어 걷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나마 반환점 이후에는 햇빛을 등지고 뛰어 다행이었다.
3시간 40분을 잠정적인 목표로 삼고 뛰었는데 내 주위에 있는 주자들을 둘러보니 뛰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 무척 많아 보인다. 기록을 의식해 앞서 나간 몇몇 사람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주자들이 즐겁게 뛰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바람이 워낙 거세다보니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반환점 이후에는 고생은 한 것 같다. 하지만 그 바람이 일주일전 동아대회에서 불던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아니라 훈훈한 느낌이 드는 봄바람이다.
달리는 중간 중간 개나리 꽃이 피어 있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하얀 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아직 일본도 벚꽃이 피기에는 시기가 조금 이른듯하다.
매 5Km 단위로 급수대가 있는 곳에는 아라가와 봄축제의 일환으로 여러행사가 열리고 있었고, 일본 전통북을 치면서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응원하는 사람은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첫 5Km까지는 주로의 혼잡함으로 시간이 엄청 많이 소요되었고 5Km 이후에는 매 Km를 5분 10정도의 속도로 뛰어 결승점 통과 시간은 3시간 42분 52초의 기록을 달성했다. 지난주 엄청 빨리 달렸을 때는 발에 물집이 생기고 힘이 들었는데 역시 속도를 늦추면 달리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
이번 대회는 주로에서 주는 먹거리는 충분한데 마치고 나서 주는 먹거리는 전혀 없다. 일본 대회는 우리나라 대회와는 달리 완주기념메달도 없다. 들어와서 나누어 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조금 허전한 느낌이고 소보루 빵이 그립다.
다만 한쪽에서 다양한 야채가 들어간 따끈한 스프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어 아쉽지만 그 스프를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기록에 신경쓰지 않고 달리면서 충분히 먹을 것을 섭취해 배가 고프거나 허기지지는 않았다. 그곳 사람들은 자신이 알아서 먹을 것을 준비해 오거나 한켠에 마련된 음식부스에서 사먹는 방법밖을 취하는 것 같아 보인다.
결승점 통과이후 함께 뛰었던 고구레 야스도모(木暮 康友)님이 여러 사람을 소개 시켜 주었는데 그 중에서도 지난 3월 12일 동아마라톤대회의 초청선수였던 최고기록 2시간 19분 무카시 다카아키(向井 孝明)님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한국에 와서 반년 정도 생활했었다고 하며 한국말을 조금은 할 줄 알고 있었고 한글을 열심히 배우고 있는 중으로 나중에 신주쿠로 나가 세명이서 함께 식사까지 하고 헤여졌다.
우리나라처럼 언론사가 주최하는 대형대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참여하는 사람들의 열기나 운영이 대단히 잘 되어 있다는 느낌이 대회 내내 들었다. 다만 색다른 즐거움을 위해 참가할 생각이라면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 대회이다. 3월초 한강에서 개최되는 서울마라톤과 거의 흡사하기 때문이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참가한다면 아무래도 도심을 통과하면서 우리와는 다른 풍경이나 주변환경을 접할 수 있는 대회가 낳지 않을까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따라서 다음에 다시 이 대회에 참석할 생각이냐고 물어본다면 한번 더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싶다.
다만 친구가 초청해서 친구를 만나는 목적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하지만 즐겁고 편한 마음으로 51번째 참가한 풀코스 대회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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