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방문 길에 지리산 뱀사골과 성삼재, 그리고 꼭 한번 가고 싶었던 하동의 최참판댁의 한옥마을을 다녀왔다. 출발할 당시 서울은 4월인지라 벚꽃도 피고 봄의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는데, 지리산에는 아직 봄이 찾아오지 않은 앙상한 겨울의 모습이었고, 산을 넘어서 찾아간 하동은 이미 벚꽃도 져버린 초봄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벚꽃 대신 배밭에 하얀 배꽃만이 가득해 있어 벚꽃길을 지나지 못한 아쉬움을 대신해 주었다. 좁은 땅의 우리나라도 이렇게 다른 기후를 보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리산이 그만큼 높은 산이란 것과 벚꽃의 개화시기가 그만큼 짧다는 것을 느끼고 온 셈이다.
하동을 찾아가는 길에 지리산 뱀사골 등반로의 기점이 되는 반선에 지리산 전적기념관(戰蹟記念館)이 있었다. 과거에 뱀사골과 반야봉, 심원계곡 일원이 빨치산 근거지로 널리 알려져 있고 또 여순반란사건의 주모자를 반선마을에서 사살했기 때문에 이곳에 기념관을 세웠다고 한다. 과거 같은 동족끼리 이념의 갈등으로 피를 흘리며 싸워야 했던 비극적 역사의 한 단면을 상기시켜주는 기념물이다.
뱀사골은 27년전에 대학교 2학년때 학보사 후배들과 놀러와서 고생을 많이 했던 곳인데 그 때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곳은 찾아볼 수도 없다. 그 당시에는 뱀사골에서 성산재를 통해 구례로 넘어가는 도로가 개설되지 전인지라 이곳이 상당히 외진 곳이었고 산이 좋아서 찾아오는 등산객이나 있던 곳이였다. 이제는 명소 즐비한 계곡 뱀사골은 지리산에서도 등산객이 많이 찾는 대표적인 이름난 골짜기의 하나가 되어 있다.
갈 길이 바빠서 노고단에는 오르지 못하고 성삼재까지 차를 가지고 올라가서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지리산의
모습을 감상했다.
박경리님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하동 최참판댁을 방문했다. 아쉽게도 SBS의 드라마 '토지'를 보지 못했기에 그 느낌을 확인해 볼 수는 없었지만 섬진강을 끼고 돌아 들어오는 평사리의 모습는 너무 좋았고, 마을 입구에서 풍기는 시골향기도 좋았다. 하동군청에서 소설 속 집들을 그대로 복원해 만든것이라고 하는데, 꼬불꼬불한 돌담길하며 예쁜 유채꽃등 정말 고풍스럽고 아름다웠다. 잘 꾸며놓은 민속촌보다 더 실제같았고, 크고 조성이 잘 되어있어서 그런지 관광객도 많고 주차장에는 관광버스가 계속 들어왔다.
최참판의 복장을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와 함께.
역사보다 더 역사적인 소설로,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 '토지'. 대하소설 '토지'는 경남 하동의 평사리를 무대로 5대째 대지주로 군림해온 최참판 댁과, 그 소작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대하소설이다. 구한말에서부터 해방에 이르는 굴곡의 역사가 60여년의 시간을 관통한다. 또한 국토의 남쪽 조그만 평사리 마을에서 시작해 경성과 간도, 일본을 잇는 멀고 먼 공간과 여정, 그리고 무려 700여명에 달하는 다양한 등장 인물과 그들이 엮어내는 파란만장한 민족적 삶의 흐름을 그려낸 소설이다.
1969년 8월부터 1994년 8월까지 무려 25년동안 '토지'를 집필했던 박경리, 토지에 대해 '한국인의 정신적 GNP를 높였다'고 자평했던 박경리님은 우리가 평사리를 다녀온 1달이 지난 5월 5일에 84세 일기로 별세했다.
"지금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토지’에 나오는 인물 같은 평사리 마을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주머니, 그리고 아저씨들의 소박하고 따뜻한 인간의 향기뿐 아무것도 없다. 충격과 감동, 서러움은 뜬구름 같이,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같이 사라져버렸다. 다만 죄스러움이 가끔 마른 침 삼키듯 마음 바닥에 떨어지곤 한다. 필시 관광용이 될 최참판 댁 때문인데 또 하나, 지리산에 누를 끼친 것이나 아닐까. 지리산의 수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먹고 살만한 사람들에 의해 산은 신음하고 상처투성이다. 어디 지리산뿐 일까마는 산짐승들이 숨어서 쉬어볼 만한 곳도 마땅치 않고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식물, 떠나버린 생명들, 바위를 타고 흐르던 생명수는 썩어가고 있다 한다. 도시 인간들이 이룩한 것이 무엇일까? 백팔번뇌, 끝이 없구나. 세사(世事) 한 귀퉁이에 비루한 마음 걸어놓고 훨훨 껍데기 벗어던지며 떠나지 못하는 것이 한탄스럽다. 소멸의 시기는 눈앞으로 다가오는데 삶의 의미는 멀고도 멀어 너무나 아득하다.”
- ‘토지’의 서문 일부
하동의 명물..쌍계사 십리벚꽃길과 화개장터는 들리지 못했다... 서울에서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워낙 먼거리를 달려온지라 시간이 많이 걸렸었고 이미 하동에는 벚꽃이 져버렸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외가인 고성은 산골마을이라 아직까지 벚곷이 만발해 있었다. 외가집 저수지에 피어 있는 벚꽃.
동갑나기 외사촌 동생 준식이와 함께
부모님과 외갓쪽 친척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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