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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여행 (2008.10.28)

남녘하늘 2009. 8. 20. 00:52

 

일반인들은 개성으로 관광을 떠나지만 우리회사는 개성공단 사업을 진행했기에 개성공업지구를 시찰할 수 있다. 물론 개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관광을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측 출입소와 북측 출입소에서 동일한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지난 2000년에 배를 타고 금강산 관광을  한 이후 8년만에 육로를 통해서 처음으로 북한 땅에 들어가게 되었다. 강원도 양구에서 군생활을 할 때 북한땅을 보면서 근무했었고, 금강산 관광을 갔을 때에는 북한땅을 밟았지만 도로변에 철조망이 쳐져 있어 격리된 북한사회의 일부만을 보고 왔을 뿐이었다. 이번 개성 방문은 주민들의 생활상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분되고 기대된 여정이었다.

 

물론 이번 개성 방문이 관광 목적이 아니기는 했지만 개성시내를 통과하는 일정도 있었고 개성 시내 '민속여관'에서 식사하는 계획도 있어 내눈으로 개성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통해 개성여행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처음 방문한 개성시내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마치 연출이나 하듯이 수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들거나 머리에 이고 분주히 여기저기를 걸어다니고 있었고, 아직 10월말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겨울옷을 입고 있었다. 자전거는 상당히 고가의 재산이라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그나마 먹고 살만한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 일행도 시내에서 사진 찍는 것은 금지되어 많은 것을 눈에 담고 올 수 밖에 없었다.

 

아마 벌써 겨울 옷을 입고 있는 것은 먹는 것이 부실하니 추위도 많이 탈 수 밖에 없으리란 생각이다. 개성시내 대로변에 조금 정비된 가옥뒤로는 형편없이 낡은 집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정비된 집들조차도 창문에 유리창 대신 비닐로 유리창을 대신하고 있는 모습에서 가슴이 싸해 왔다. 이곳에 평양 다음으로 그래도 먹고 살만한 곳이라는 개성인데, 개성이 이러할진데 다른 지역은 어떠할 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선진국이나 복지국가는 잘먹고 사는 것도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보다도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국가기관등이 서민이나 권력을 가지지 못한 약자들에 대한 배려나 정책이 있느냐가 중요한 척도이며 남에게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활속에 그런의식이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북한은 먹고 사는 것도 큰 문제지만, 소위 그들이 말하는 인민에 대한 권력층의 배려가 전혀 없는 사회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이 개성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월고 저수지를 방문할 때 일이다. 개성시내의 아스팔트 도로도 오랫동안 정비가 되지 않아서 군데군데 갈라지고 파여 있었지만 시내 중심가를 벗어나자 바로 비포장도로였다. 정말 오랫만에 비포장도로를 달리게 되는 셈인데, 도심을 벗어나니 주민들의 행색이 더욱 초라해졌다. 그런데 이곳을 안내하는 차량들이 길가는 사람들의 형편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엄청 빠른 속도로 달린다. 아마 내가 운전을 했더라면 비포장도로를 달리면서 빠른 속도를 가면 바퀴에 돌이 튀어 나갈 수도 있고, 또 엄청난 먼지 때문이라도 미안해서 속도를 줄였을텐데 그들은 그러질 못했다. 전혀 인민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가지를 알 수 있다고 그런 태도에서 많은 실망을 했다.

 

첫 방문지였던 월고저수지의 전경도이다.  

 

 

 

 

개성공단 개발사업자인 우리 회사와 북측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과의 합의에 따라  개성공단에서 17㎞ 떨어진 월고저수지에서 취수한 물을 송수관로를 통해 정수장으로 끌어온뒤 정수를 해서 개성공단에 1일 4만5천t을 개성주민에게 1만5천t 공급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 주민중 가장 깨끗한 물을 개성시민이 먹고 있는 셈이다. 그 취수장인 월고저수지를 방문했다. 아마 개성관광을 와도 이곳 월고저수지까지 올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월고 저수지는 저수량이 1800만톤 규모로  개성 사람들이 자랑하는 저수지다. 산을 헐벗고 농토는 기름지지 못해도 저수지는 깨끗했다.

 

 

 

월고 저수지 전경도는 과거에는 없던 것을 저수지에 개성공단에 취수장을 만들고 나서 만든 것 같다. '개성시 송배수관 로정도'라는 것이 이 전경도에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 개성공단을 방문하는 귀빈들을 모시고 와서 이런 시설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것 같다. 물모임면적 2,921정보, 저수지총용적 1,834정미등 수량표시하는 단위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다.

 

 

 

 

하루 동안의 빠듯한 일정으로 많은 곳을 움직이다 보니 바로 점심시간. 식당은 개성관광을 가면 대부분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민속여관'이었다. 개성시 자남동에 있는 개성민속려관(개성민속여관)은 1989년 개관한 2급 숙박시설이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조선시대 전통 한옥을 여관과 식당으로 꾸몄다. 개성이 자랑하는 민속여관에 도착하자마자 외부와의 통로인 큰 대문을 닫아버린다. 아마 주민과의 접촉을 막기 위해선인 듯하다. 민속여관은 작은 개천을 중심으로 사백년된 한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동쪽에는 침실이 서쪽에는 식당, 연회장, 상점 등이 있다. 민속여관답게 객실이 온돌방으로 되어 있고, 침구류도 전통침구로 되어 있다.  

 

 

 

 

 

점심은 민속여관 내 식당에서 조선의 3대 음식으로 손꼽히는 개성음식을 맛보게 된다. 민족여관은 개성의 전통 한옥집을 그대로 보존해 관광지로 만든 일종의 민속촌. 줄지어 늘어선 기와집의 정취는 이곳이 과거 거상(巨商)의 도시였음을 실감케 한다. 이곳에서 개성의 유명한 음식인 13접 반상기를 받았다. 

 

 

 

생각보다는 푸짐했던 식단. 다른 일반 13접 반상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단호박에 인삼이 들어 있는 밥이 추가로 나왔다. 아마 특별식이었던 것 같은데 이 밥을 반만 먹어도 충분했는데 잠시후 밥이 다시 한공기가 나왔다. 개성사람들이 충분히 먹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음에도 잘먹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양이 충분했지만 단호박 밥을 깨끗하게 비워주고 대신 추가로 나온 공기밥은 손도 대지 않고 물렸다. 손대면 재활용이 불가능할 것 같아서... 

 

 

 

식사후 민속여관 곳곳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가을의 정취가 느껴지는 민속여관의 모습이다.

 

 

 

 

 

김재형님과 함께.

 

 

 

이곳에서 소나무와 바위가 많다는 송악산(488m)이 가장 잘 보인다고 했는데 사진상으로는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멀리서 송악산을 바라보면  가슴이 풍만하고 임신을 한 여자가 누워있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 송악산은 아직 개성 관광코스에 포함돼 있지 않으며, 사진 찰영도 엄격히 금지되고 있을만큼 북한의 군사시설물과 지하 요새가 많은 곳이다. 통일이 되면 송악산에도 한번 올라봐야 할텐데 언제가 될지...

 

 

 

허만섭 개성지사장님과 함께. 나와는 종씨다.

 

 

 

 

 

민속여관의 이곳 저곳의 모습. 개성시내의 사람들은 벌써 외투와 점버를 입고 다니는등 민속여관 바깥은 비록 초겨울의 느낌이었지만 이곳 내부는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민속여관 내에 있던 기념품 상점. 금강산 여행때에도 느꼈지만 살만한 물건이 너무 없다. 금강산에 갔을 때에도 좋아하지도 않는 술 한병과 송화가루를 사와서 하나도 먹지 못했었는데, 오늘도 기념품으로 술 한병만 사가지고 왔다. 이 또한 술을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오랫동안 전시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개성공단에서는 절대 '남한' '북한'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남측' '북측'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사용하는 언어도 일부는 차이가 난다. "괜찮습니다"와 "일 없습네다", "화장실"과 "위생실"이란 표현은 이제 서로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 이렇게 함께 만나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동질감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싶다. 왼쪽에서 두번째 있는 북한측 인사는 상당히 거물급 인사다. 성명은 알지만 생략.  

 

 

 

월고 저수지에서 끌어온 물을 정수하는 개성공단 내의 정수장에서 바라본 개성공단의 일부 모습. 멀리 개성시내와 송악산 모습이 보이는데,  이런 사진을 찍는 것도 함께 있던 북측 안내원의 동의를 받아야만 했다. 이곳에서 정수되는 물은 개성공단에 4만5천t, 개성주민에게 1만5천t 공급하는데 고지에 있는지라 자연압으로 보낸다고 한다.

 

 

 

정수장에서 개성공단의 전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1단계 사업이 잘 되면 뒤로 보이는 산아래 부분 밭이 있는 곳까지 포함되는 2단계 사업이 기다리고 있다. 다만 정치적인 변수가 많이 남아 있어 2단계 사업은 어떻게 진행될지 아직은 미지수이다.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 건물을 배경으로.

 

 

 

 

우리 근로자들이 이용하는 패밀리 마트. 반가운 간판이다.

 

 

 

개성공단 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 건물.

 

 

 

개성공단에 조성되어 있는 한국식 정원에서. 북한 근로자들은 개성시내에서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실제 이용자들은 남한에서 올라가 우리쪽 근무자들이다. 아직 정원이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나무가 크지 않아 활량한 느낌이 들지만, 머지 않아 개성공단의 활성화되면 이곳도 명소가 될 것이다.

 

 

 


개성공단내에서 가장먼저 진출한 기업중 한곳이 신원 에벤에셀이다. 북한에서 350여명의 인력이 투입돼 5개 라인 가동을 통해 현재 베스트벨리 등 5개 브랜드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개성공단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우리 일행도 신원 에벤에셀 공장내부를 견학했다. 북한의 근로자들이 정말로 열심히 일하고 있었는데 일하는 사람들이 얼굴에 표정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인도네시아등 다른 동남아 국가 근로자들과 달리 북한 근로자들은 옆눈길하는 법이 별로 없다고 한다. 점심 도시락은 북한 노동자가 직접 싸오고 회사 식당에선 국물만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서도 북한의 실정을 알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간식으로 초코파이를 제공하는데 포장껍질은 한개도 안나온다는 것이다. 집에 있는 아이들이나 어른들께 주려고 모두가 가지고 나간다는 것이다. 그들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이고, 어른과 함께하는 자식들인지라 맛있는 것을 가족에게 주려고 한다는 것, 그런 점에서 우리와 똑같은 한민족이다.

 

 

 

 

 신원 에벤에셀 공장을 배경으로.

 

 

 

북한의 소방수들이 훈련차 소방복을 입고 길을 뛰어가고 있었다. 마스크까지 착용한채 훈련을 실제처럼 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돌아나오는 길에 북한의 출입국 관리소(CIQ)에서 카메라 사진 검사를 할 때 이 사진을 가지고 잠시 고민을 하더니 삭제하지 않고 돌려 주었다. 이런 사진도 가지고 나오지 못할 정도인지???

 

 

 

 

개성지사 사옥전경.

 

 

 

 

개성지사에 근무하는 이상우님과 함께.  

 

 

 

개성지사에 근무하는 직원과 오늘 방문한 본사 직원들과 단체사진.

 

 

 

개성지사에  근무하는 북한측 여직원 김주옥님과 함께. 남남 북녀라고 했는데 요즘 우리나라의 여성들의 변장술이 워낙 뛰어나 북한 아가씨가 이쁜지 구분이 안된다. 개성공단내에서 제일 근무하고 싶은 직장이 우리회사이기에 아마 이 아가씨도 알아보지는 않았지만 소위 당성이 뛰어난 개성집안의 딸일 것이고,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우리와의 간격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개성은 북한의 3대 도시중 하나였기에 나름대로 기대를 많이 하고 갔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충격을 받고 왔다. 황량한 거리와 파손된 가옥들, 그리고 가난에 찌든 사람들의 남루한 모습을 보니 가슴이 많이 아팠다. 자본주의적 풍요로움보다는 정신적인 자세가 중요하다고 써있는 대형 입간판을 보면서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그들의 처지가 안타까왔다. 우리나라의 50-60년대의 모습이 개성 거리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아무리 이데올로기가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먹고 입는 것이 해결되지 아니한 정치는 실패한 것이다. 또 저런 나라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말로만 떠드는 일부 인사들이 행태가 한심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실제현실을 체험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개성방문도 전체를 모두 보고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일부를 보아도 그 심각성을 미루어 짐작하는데에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빨리 북한의 동포들도 따뜻한 겨울을 보낼수 있었으면 한다.

 

또한 정치적인 영향에 따라 운명이 좌우되지 않은 개성공단이었면 좋겠다는 소박한 소망을 가져본다. 실제 개성시민들은 개성공단으로 인해 그나마 삶의 질이 그나마 많이 향상되어졌다고 한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공단운영이 되어 통일이라는 거창한 목표는 아니더라도 기업을 운영하는 하는 남한쪽 기업인들과 북한 주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