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의 매력에 빠져 그동안 다른 운동을 거의 하지 못하다가 2년전인 2008년부터 등산은 다시 시작하게 되었지만 아직 골프는 다시 시작하지 못했었다. 조금 격한 운동인 마라톤을 하면서 골프를 운동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고, 사교를 위해서 필요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골프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을 사귀거나 일을 하는데 문제가 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1995년부터 시작했던 골프를 2002년에 잠시 접은 지 벌쎠 8년이 지났다. 풀코스 마라톤을 100번 뛸 때까지는 골프를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었지만 작년에 100번을 달성하고 나서도 여건상 골프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내 생각과 관계없이 골프장 부킹을 해버린 동생때문에 정말로 준비없이 골프장에 따라가게 되었다.
8년 8개월만에 골프채를 잡으려니 걱정이 되어 약속날자가 정해지고 나서 몇 번 인도어 골프장에 나가 보았지만 골프가 그렇게 쉬운 운동이 아닌데 하루 아침에 잘 칠 수 있을리가 없다. 그렇게해서 잘 칠 수 있다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닐까? 다만 다행스러웠던 것은 달리기를 오랫동안 했기에 하체가 튼튼해져 하체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겨우 세번의 연습을 마치고 속초로 향하게 되었다.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했더니 티업 시간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있어 미시령터널을 통과하지 않고 미시령 옛길을 통해서 미시령을 넘어갔다. 이번주와 다음주의 설악산의 단풍이 가장 아름다울 것이라고 했는데 백담사가 있는 내설악쪽에는 이미 단풍이 예쁘게 들어 있었는데 미시령 정상에 오르니 정상 부근에는 이미 낙엽까지 떨어져 한겨울의 풍경이다. 다만 멀리 내려다보이는 울산바위쪽은 이제 단풍이 물들어 가고 있었다.
미시령 고개 정상에 있는 휴게소에는 엄청 바람이 많이 불어 서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아직 한겨울이 아닌데도 바람이 거세다. 미시령 터널이 개통된 이후로는 미시령 옛길로 다니는 차량이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단풍의 계절을 맞이해 설악산의 단풍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날 휴게소에는 차량이 엄청 많았고 관광객도 많았다. 우리 일행도 단풍을 구경하려고 이 루트를 택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결국 내가 보기 좋은 것은 남들도 보기 좋은 것이고,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은 남들도 해 보고 싶은 평범한 진리를 깨달아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바람이 어찌나 쎄게 불던지 머리칼이 한쪽으로 쏠린 것은 물론이고,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들었다. 오래 머물고 싶어도 바람때문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바람도 선선함을 넘어서 있었고...
함께 가기로 했던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행사에 참가는 하되 경기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필드에서의 연습이 최고의 연습이라고 함께 한 일행들이 부추껴서 결국 라운딩에 참가했다. 많이 헤메기는 했지만 결론은 함께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옛날과 달리 두려움이 전혀 없어졌고, 거의 9년만에 하는 것치고는 스스로 만족할만큼 했다. 좋은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면 엄청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늦게 티업한 것이 아니였는데 마지막 두홀은 야간경기를 하게 되었다. 그만큼 해가 짧아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숙소로 이동하면서...
전날 대회를 마치고 속초 장사항에서 저녁을 먹고 또 노래방까지 들러 놀다가 12시가 넘어서 숙소로 들어왔다. 정작 조경이 잘 되어 있고 잘 꾸며 놓은 숙소에서는 잠만 자고 나온 셈이다. 숙소 주변 산책로도 한번 걸어보지 못하고, 시설을 한번 이용해 보지도 못하고... 너무 피곤해 아침먹을 시간도 없어 예약해 놓았던 식사도 먹지 못하고 술에서 깨지도 못한채 김밥으로 아침을 대신했다는... 아침에 라운딩을 나가기 전에 그나마 나혼자 정신을 차리고 숙소 주변을 돌아 보았다.
어제와는 달리 오늘 라운딩은 디카를 가지고 필드에 나갔다. 골프장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촌스럽게 생각되기도 했지만 거의 9년만에 다시 필드에 나온 기념으로 사진을 한장 찍고 싶었다. 옛날에는 이렇게 필드에 서면 오비가 날까봐 항상 걱정스러움이 앞서곤 했는데 오랜만에 온 이번에는 그런 생각이 완전히 없어졌으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번에 함께 필드에 나온 효과는 충분하다.
이틀동안 함께 라운딩을 한 최재영과 정태호, 이민욱... 마음에 맞는 친구이자 동생들이다.
티업 박스 옆에 코스모스가 예쁘게 피어 있어 앞팀이 빠져 나가기를 기다리면서 사진을 찍어 보았다. 예쁜 코스모드를 보니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날씨가 추울까봐 옷을 따뜻하게 입고 나왔는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 어제 미시령의 바람은 그야말로 지나가는 바람이었던듯... 준비했었던 윈드자켓은 전혀 무용지물이였다.
레이크 코스 8번홀의 모습이다. 파인 리브 CC는 비교적 조경이나 코스가 잘 꾸며져 있다는 느낌이다. 부담없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다 보니 이틀동안 아주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다만 내가 워낙 준비가 돼 있지 않아 민폐를 많이 끼쳤다는 생각이며, 돌아오는 겨울동안 이제는 골프 연습도 열심히 해서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최소한의 실력을 갖추어야겠다고 느꼈다. 운동은 되지 않지만, 함께 어울리뎌는 사람들이 운동을 좋아하면 나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레이크 코스의 9번홀은 다른 골프장과는 달리 연못을 배를 타고 건너가게 되어 있었다. 물론 노를 젖거나 모토 보트는 아니지만 골프장에서 배를 탄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골프장을 많이 다녀 본 것은 아니지만 배를 타고 가는 골프장이 있다는 것을 처음보았다. 이 홀은 파5로 거리가 630m나 되서 나 같은 사람은 한참을 쳐도 그린위로 가기가 어려웠다. 사진 뒤로 보이는 숙소가 우리가 하룻밤을 잤던 골프 빌리지이다. 어두울 때 들어가서 잠만 자고 아무런 활용도 하지 못하고 나온 곳이다.
이틀동안 2번의 경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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