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새해 첫 산행을 집에서 가까운 남한산성으로 가기로 정하고 백산회 회원중 3명이 함께하게 되었다. 자가용을 가지고 가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출발하기로 하고, 처음부터 모이는 장소를 남한산성 유원지 입구로 정했다. 차를 가져가면 산행을 끝내고 다시 차를 가지고 가기 위해 출발지로 돌아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기 때문에, 오늘은 차에 구애받지 않고 산행을 하기로 했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산을 가게 되면 차 없이는 이동이 불편헤서 어쩔 수 없지만 오늘은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불편함이 없다.
오늘 산행 일정은 남한산성 유원지에서 일행을 만나 남한산성으로 올라간뒤 성곽을 따라서 한바퀴 돌고 나서는 시간과 등산로의 상태를 봐가면서 하산하는 장소를 정하기로 했다. 새해 첫 주말인데 날씨가 엄청나게 춥다. 겨울날씨가 추워야 제맛이라고 하지만, 모이는 장소에 제일 먼저 도착해서 일행을 기다리는 몇 십분이 엄청나게 길게 느껴지니 엄청 추운날씨임에는 틀림없다.
그래도 일행이 모여 유원지 입구에서 남한산성 남문까지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니 땀이 흐른다. 남문까지만 오르고 나면 그 다음에는 성곽을 따라서 산성 일주를 하게 되니 부담이 없어진다. 남문에 오를 때까지 해가 뜨지 않아서 쌀쌀함이 더했고, 음지에는 눈이 녹지 않은 상태이다. 신년초인데 추운 날씨때문인지 산에 오르는 사람이 생각보다는 적었다. 입구에서는 산행객이 그래도 조금 보였는데 올라오는 사이에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남문은 남한산성의 정문으로 4대문 중에 규모가 가장 크고, 조선시대 임금들의 출입문으로 1779년(정조 3년) 성곽을 보수할 때 개축하고 지화문(至和門)이라 하였다고 한다.
남한산성을 따라서 본격적인 산성 일주에 나섰다. 남문에서 동문, 북문을 거쳐 서문쪽으로 이어지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산행을 하기로 했다. 이 방향으로 가면 제일 마지막에 내리막길을 내려가게 되어 후반부가 편해지기 때문이다. 산성 안쪽길도 눈이 모두 녹지 않아서 조금 미끄러운 구간이 있었지만, 산성을 따라 걷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산성을 따라 걷는데 얼마전에 복원을 했다는 산성의 곳곳이 사진에서처럼 많이 훼손되어졌다. 남한산성과 남한산성 행궁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서 복원사업을 한다고 들었고, 그 복원사업이 끝난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렇게 부실공사를 해서 하자가 발생되었다. 너무 형식에 얽매여 내실을 기하지 못한 탓이다. 기와가 깨져 나가고 횟가루를 발라 놓은 것은 부실하게 접착시켜서 한번의 겨울도 넘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
장경사 신지옹성은 동문에서 1.1km 거리에 있었는데. 이곳도 복원된 성곽이 부실공사로 인해 파손되어 있었다. 장경사 신지옹성은 길이가 159m로 한봉성과 봉암성에 대한 방어를 주목적으로 설치하였다고 되어 안내문에 적혀 있었고, 복원작업을 잘 했는데 깔끔한 마무리가 너무 아쉽다. 경기도에서 남한산성을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복원작업을 했는데 이렇게 눈가리고 아웅형식으로 해서 제대로 된 복원작업을 했는지 묻고 싶다. 수원화성(1997)과 조선왕릉 31기(2009)에 이어 경기도로선 3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된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는데 많이 씁쓸하다.
남한산성은 해발 500m가 넘는 험준한 자연지형을 따라 둘레 10여km가 되는 성벽이 있다. 때문에 많은 병력으로도 쉽게 공략할 수 없는 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고, 병자호란이 일어난 인조 14년, 청나라가 침략해오자 왕이 이곳으로 피신해 47일간 항전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북문은 병자호란 47알간의 항전기간중 청나라와 유일한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총으로 무장한 우리 군사 300여명이 북문으로 나가 청나라 군사에 선제공격을 가했으나, 유인작전에 말려 총 한번 제대로 쏴 보지 못하고 전멸한 곳이다. '전승문'이라는 이름의 북문은 패전을 극복하자는 의미에서 호란후 정조때 붙인 이름이다. 산성로타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 이곳을 거쳐 수어장대까지만 돌고 남한산성을 가 보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북문에서 서문가는 길에 있는 연주봉 옹성의 모습으로, 남한산성에는 연주봉 옹성을 포함하여 모두 다섯 개의 옹성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연주봉의 옹성과 남한산성의 본성 사이에는 성을 연결하는 좁은 성벽 길이 있고, 남한산성의 성벽과 만나는 곳에는 조그마한 암문이 있어 남한산성으로 출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연주봉은 지형상 남한산성보다 다소 고도가 높기 때문에, 남한산성을 적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요충지인 연주봉에 옹성을 만든 것이다. 연주봉 옹성가는 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었으며, 옹성 끝에 전망대가 있어 서울시내를 비롯해서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옹성이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 쌓은 이중의 성벽을 말한다. 그러나, 남한산성의 옹성은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3 면에서 입체적으로 공격하고, 요충지에 대한 거점 확보를 위하여 성벽에 덧대어서 설치한 시설물로서, 다른 성들에 설치된 일반적인 옹성들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전술 개념으로써 구축된 것으로 해석된다고 한다.
뒤로 보이는 서문역시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나 강화도로 피난 간 봉림대군(뒤의 효종)도 포로가 되고, 청태종이 이끄는 10만이 넘는 병력이 도착하자 전의를 상실한 인조가 47일간의 항전을 끝내고 무조건 항복을 위해 삼전도로 향할 때 통과했던 문이기 때문이다. 서문은 산성 4대문중 가장 규모가 작아서 인조가 말에서 내려야 했다고 한다. 일부 사람들은 남한산성에서 항복은 했으되 함락은 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말장난이라고 생각된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똑같은 역사가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내 생각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서문에서 남문으로 이동하는 중 송파구 방면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지역이 나온다. 아주 맑은 날씨가 아니어서 전망이 멀리까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우리 회사가 개발하고 있는 위례신도시의 모습은 아주 가까이 보였다. 이제 5년이 지나면 이곳에도 새로운 신도시가 들어서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군인들은 멀리 지방으로 보내고 아파트를 짖는다는 것이 정확한 해법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곳에 살게 될 사람들은 아주 멋진 환경에서 생활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영춘정에서 남문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두번째 있는 사진에서 뒷쪽으로 공군부대가 있는 검단산이 보인다. 사진에서 보이는 검단산은 하남에 있는 검단산이 아닌 성남시계 등산로상에 있어 남한산성 줄기와 이어지는 봉우리다. 검단산 아랫쪽에 약수터가 있어 분당에서 검단산 아래 있는 약수터까지 산악 달리기를 몇번 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 내리막만 내려가면 아침에 출발했던 남문(지화문)이다.
아침에 산성에 올라와 대략 10km의 산성일주를 마치고 남문(지화문)으로 다시 돌아왔다. 빨리 움직이지 않고 천천히 풍광도 즐기면서 돌았더니 3시간 정도 넘게 걸렸다.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산행을 했다는 느낌인데, 출발할 때와는 달리 산성에 오른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다. 오늘 산행에 좀 더 많은 회원들이 참석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연초에 바쁜 일들이 많아 오븟하게 3명이 하게 되었다. 산행을 마치고 산성 안에 있는 음식점에 가서 막걸리와 함께 점심을 함께하고 산행을 마쳤다. 올 한해도 열심히 산을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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