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산악회에서 경기도 파주에 있는 감악산(紺岳山)으로 산행을 떠났다. 산행 다음날인 내일은 동아마라톤 대회에 참석해야 하는데 대회전날 산행을 갈 것인지 말것인지 잠시 고민을 했지만, 동아마라톤 대회에서 기록갱신을 한다든가 빠른 기록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산행에 참석하기로 했다.
산이를에 ‘악’자가 들어가는 산은 바위산이어서 산행이 힘들다는 말이 있다. 경기 5악으로 꼽는 가평의 화악산, 과천의 관악산, 포천의 운악산을 보면 산세가 거칠어 이 이론이 맞는 듯 하지만 감악산은 예외라고 한다. 산 입구에서 보면 산등성이의 바위가 거칠어 보이지만 막상 들어가서 산행해 보면 위험한 지역이 별로 없다고 한다. 오늘 산행은 선고개 - 까치봉 - 임꺽정봉 - 장군봉 - 범륜사로 이어지는 코스를 잡았는데 4시간 정도에 마칠 수 있었다. 한번 올라보니 초보자들조차 충분히 오를 수 있는 산으로 꽤 괜찮은 산이었다. 회원 80여명과 함께 산행 출발지인 감안산휴게소에서 도착하여 짐정리 후 곧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감악산(紺岳山 : 675m)은 경기도 파주시, 양주시, 연천군 사이에 있는 높이 675m의 산으로 예부터 바위 사이로 검은빛과 푸른빛이 동시에 흘러나온다 하여 감악(紺岳)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관악산(629m), 화악산(1,468m), 운악산(936m), 송악산(705m)과 함께 경기 오악(五嶽)에 꼽히는 수도권의 명산이다.
산이름에 '악'이 들어갔음에도 산행 입구는 바위가 거의 보이지 않은 평탄한 흙길이 계속되었다.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조금 더 오르니 능선을 타는 구간이 시작되었다. 아직 신록의 계절이 도래하지 않아 나무들이 메말라 있지만 이에 비례해 가을 단풍은 제법 아름다웠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해 보였다. 침엽수는 많이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이 활엽수였다. 통상 감악산에 오면 산행 들머리를 범륜사로 해서 오르는데 우리 일행은 반대로 선고개 방면에서 올라가서 범륜사쪽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감악산은 산행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며 암벽,계곡 등을 고루 갖추고 있는 청정지역에 있어 공기도 맑고 초심자들도 즐기기엔 충분한 산이다. 까치봉까지는 완만한 오르막이었고, 중간 중간 가파른 곳에는 계단을 만들어 놓아 위험한 구간없이 평이한 산행코스라 생각이 들었다. 가시거리가 좋은 날은 주위 풍경을 조망하며 여유로운 산행을 즐길수 있는 곳이다. 아직 산에서는 봄이라고 볼 수 없고, 변덕이 심한 산에서의 기상상태가 불안해서 준비했던 겉옷는 출발하자 마자 벗어버렸고, 포근한 날씨가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까치봉 바로 아래에 조성되어 있는 전망데스크에 도착했다. 산 들머리에 평이했던 산길이 정상쪽에 가까와지면서 제법 경사도 심해지고 바위가 많이 나타나면서 힘이 들었는지 땀을 제법 많이 흘렸다. 파주 적성의 들판도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 감악산은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는 청정지역이었는데, 1990년경에 지자체와 협의를 거쳐 일부 등산로를 개방하여 등산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멀리 감악산 정상 송신중계철탑이 보이고, 정상으로 가는 능선에 계단이 보인다. 처음에는 흙길에 평탄한 산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상으로 갈수록 왜 '악산'인지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거리로 이어지는 오르막은 이마에 땀이 맺힐쯤이면 끝이 나곤 했다. 산행을 시작해서 정상 부근까지 오르는데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경치 좋은 산은 많지만 감악산이 특별한 이유중 하나는 북한 지역을 눈으로 생생하게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시야가 뿌옇게 되어 있어 아쉽다.
파주 10경을 조망할수 있다는 정자에 올랐다. 날씨가 흐린 것은 아닌데 낮은 구름 때문인지 가시거리가 좋지 않아 멀리까지 깨끗한 조망은 어려운 상황이다. 이곳에서 맑은 날은 북녘 땅인 개성 송악산까지 조망 된다는데 오늘은 아쉽게도 볼 수 없다. 정자 아래로는 전망데스크가 조성되어 있었고, 멀리 북한땅은 보지 못해도 산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들녘풍경의 모습이 뻥뚫린 느낌이다.
까치봉에서 정상까지는 15분 남짓 걸려서 감악산 정상에 도착했다. 이곳을 오르는 동안에 여기 저기 군사용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어 이곳이 북한과 가까운 접경지역임을 느낄 수 있었다. 정상에는 군부대 초소와 헬기장이 있다. 옅은 구름때문에 임진강 너머가 보이지는 않지만 뿌연 공기 사이로 이곳이 평지 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란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지리적 이점 때문에 이곳이 설인귀나 임꺽정이 활약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정상의 초소 옆에는 글자를 확인할 수 없는 감악산비가 놓여 있다. 삼국시대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그 실체가 파악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 생김새가 북한산의 진흥왕순수비와 비슷하여 진흥왕 순수비라는 설도 있고,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이 고장 출신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설인귀비라는 설도 있다고 한다.
이곳 감악산은 파주시,연천군,양주시 경계가 만나는 곳이다. 그래서 정상에는 양주시에서 안내 하는 안내판과 파주에서 설치한 안내판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있었다. 정상에는 군부대도 있었고, 군인들이 철조망을 치고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내가 근무했던 강원도 양구에 비해서는 훨씬 편한 곳이겠지만 세대가 달라져서 지금 이곳에 있는 젊은 친구들은 이것도 힘들다고 하면서 근무를 서고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넓은 공간과 춥지 않는 날씨 덕분에 이곳에서 준비해온 음식으로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하고서 하산을 했다.
임꺽정봉에 도착하니 산의 형세가 감악산을 오를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산을 올라 올때 받았던 부드러운 느낌과는 반대로 하산길의 산세는 바위가 많은 바위산의 기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앞쪽은 절벽을 이루고 있어 좌우로 조망이 좋아졌다. 그만큼 경사도 심하고 바위가 많아진 것이다. 임꺽정봉에는 입석과 이등삼각점이 있었다.
임꺽정봉 아래로 보이는 신암저수지 풍경이다.
바위가 검은빛과 푸른빛이 동시에 흘러 감악(紺岳)이라 불려졌다고 하는데 이쪽에서 보니 바위가 제법 많고 악산의 느낌이 든다. 봉우리 밑에 있는 임꺽정굴(설인귀굴)은 안내판만 볼 수 있을 뿐 굴을 찾을 수는 없었다. 봉우리와 굴 사이를 다시 한 번 왕복했으나 정확히 어디를 지칭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겨우 찾아 본 곳이 낭떠리지 암벽에 구멍만 뜷려 있어 들어갈 수도 없고, 너무 위험하여 통제하고 있었다. 호기심에 한번 보기는 했지만 영 별로였다. 양주 불곡산의 임꺽정봉이 있고, 철원땅에도 임꺽정이 활약한 무대가 있다. 고석정을 비롯해서...
정상에서 임꺽정봉을 비롯해서 장군봉까지는 경사도 급하고 절벽도 많고, 바위도 많은 구간이었다. 급경사를 내려와 산 아래에 있는 법륜사로 향해 이동하기로 했다. 정상부의 급한 경사지를 내려오니 산세가 다시 완만해지고 편한 길이 나왔다. 내려가는 중간에 쉬어갈 수 있는 쉼터도 만들어 놓았고, 내려 오는 코스는 계곡으로 이루어진 구간이어서 조망은 별로 없어 사진을 찍을 일이 별로 없었다.
산에서 내려오니 등산로를 따라서 감악산 법륜사가 나왔다. 태고종에 속하는 법륜사는 1970년에 옛날 운계사터에 세운 절이라고 한다. 등산로와 붙어 있어 사찰 방문하기가 좋게 되어 있었는데 여느 사찰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내 느낌으로는 사찰 주위로 세워저 있는 시설물들로 인해 산만해 보였다. . 세조가 하사했다는 공덕비를 비롯해서 백옥 관음보살상, 십이지신상 등등...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사찰로 대웅전도 다른 절에 비해서는 조금 작다는 느낌이었다.
동양최초로 중국 아미산에 들여온 백옥으로 만들었다는 백옥 관음보살상과 그 앞쪽으로 12간지상이 세워져 있었다. 12지신상에 세워져 있었는데 내가 범띠라서 범띠 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장 찍었다. 문화재를 감상할 수 있는 심미안이 없어 잘 만들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12간지상은 그다지 잘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고, 왜 관음보상상을 둘러싸고 있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절 안에 여러가지 부조물을 많이 설치해 놓았는데 너무 무계획적으로 눌어 놓았다는 산만한 느낌이...
대웅전을 배경으로 함께 산행을 나섰던 동료들과 한컷. 법륜사에서 다시 주차장이 있는 곳까지는 10여분 더 내려와야 한다. 오늘 산행에는 파주본부의 동료들이 파주에 있는 산에 산행을 왔다고 조그만한 선물까지 마련해서 산행온 회원들에게 주었다. 서울서 그다지 멀지 않는 곳에 있는 감악산. 다음에 날이 맑을 때 시간을 내서 한번 더 와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날이 맑지 않았음에도 다시 한번 와 보고픈 느낌을 준 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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