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에는 인왕산 성곽길을 걸어 보았는데 오늘은 회사 동료들과 함께 인왕산 성곽길과 이어지는 북한산 성곽길을 돌아보기로 했다. 회사에서 직원간의 단합을 위해 시간을 내주어서 서울 성곽중 부암동 창의문에서 숙정문을 거쳐 낙산입구까지 이어지는 성곽을 순례하고, 대학로에서 식사, 다시 광장시장 방문과 청계천 일부구간을 돌아 보는 일정을 계획했다.
오늘은 수요일이어서 평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부지런히 분당에서 광화문을 거쳐 부암동으로 이동했는데 생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성곽길을 걷기 위해 모여 있었다. 최근 제주 올래길을 비롯해서 지리산 둘레길, 북한산 둘레길 등 걷기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하더니 그 열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곳에 와보니 트래킹의 인기가 하나의 사회적 현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 성곽길은 트레킹의 인기와 더불어 서울성곽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재목록에 오르면서 서울시민들의 관심이 더욱 많아진 것이 아닌가 싶다.
서울 성곽길이 있는 산의 높이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도 시민들이 많이 찾을 수 있는 이유인 듯하다. 300여m 높이의 북악산과 인왕산, 200여m 높이의 남산, 100여m 높이의 낙산 등, 서울 도심을 둘러싼 네 개의 산을 따라 쌓여진 성곽이 한양도성이다. 가파른 성곽 계단길도 있지만, 북한산이나 관악산에 비하면 서울 성곽 길은 트래킹에 가까와 운동화만 신어도 성곽 산책에 전혀 문제가 없다. 더구나 그동안 개방되지 않던 청와대 근처의 북악산 성곽길이 개방되면서 도성 길이 전반적으로 정비되어 서울 성곽 순례는 한번은 다녀볼만한 곳이 되었다.
창의문에서 숙정문을 거쳐 감사원 뒷편 와룡공원에 이르는 성곽길은 2007년에 일반인에게 개방됐다. 오늘 우리가 갈 북악산 구간은 일반에게 개방은 되었지만 아직 군사제한지역으로 입장 시간이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로 제한돼 있고 퇴장시간은 6시로 신분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사전에 이런 내용을 직원들에게 고지해 놓았음에도 신분증을 잊어먹고 가져 오지 않는 사람이 있어 결국 함께 이동하지 못하는 동료가 있었다. 함께 온 사람들이 보증을 한다고 해도 전혀 통하지 않는다. 300m 높이의 산도 오르기 싫어서 의도적으로 신분증을 가지고 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창의문(彰義門, 紫霞門이라고도 함)이 오늘 성곽길 순례의 출발점이다. 산 능선에는 옛 성벽이 원형대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다. 서울 4소문의 하나인 창의문은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1623년 인조반정 때 반란군이 이 문을 통해 한양 도성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자북정도. 창의문에서 북악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자북정도는 오르막이어서 가파른 계단길을 계속 걸어 올라가야 한다. 5월의 오후도 날씨가 생각보다는 더워 땀이 흐른다. 우리처럼 창의문 쪽에서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반대편에서 출발해서 이 방향으로 내려 오고 있었다. 처음부터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이 오르막이 경사가 급한만큼 조망도 좋은데 군에서 보안을 이유로 청와대가 나오는 방향의 사진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그것도 형식상의 통제가 아니라 상당히 압박감을 느낄 정도이다. 북악산 구간과 인왕산 구간에서의 사진 찍는 방향에 대한 규제 또한 행정편의주의라고 생각한다. 요즘 인터넷에 들어가면 위성지도가 보편화 되어 있는 훨씬 더 자세한 사진을 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 특정 지역 사진촬영 금지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고 본다. 지키고 있는 젊은 군인(경찰)이 사진 찍는 것을 통제하는 행위를 즐기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보안이 문제가 된다면 망원렌즈 등 특수 장비를 동원한 촬영만 금지하면 될 것 아닌가? 몰래 사진을 찍을까 하다가 의미 없는 행동이라 참았다.
북악산 정상에 도착할 때까지 사진 한장 찍지 못하고 올라 왔다. 과거 북악산 길이 통제가 되었을 때에는 이곳에 방공포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북한산 방향을 제외한 모든 방향으로 사진촬영 불가하고, 정상석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만 가능하다. 북악산 정상, 해발 342m이다. 북악산은 한양의 북현무에 해당하는 북쪽 주산으로서 조선왕조가 도성을 정하였던 지형적인 이유를 알려 주는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북악산을 백악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정상석에는 백악산이라고 표기 되어 있었다.
1968년 1월 북한 124부대의 김신조외 30명의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를 습격할 목적으로 침투하였을 때 이곳에서 우리 군경과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때 이 소나무에 15발의 총탄자국이 남게 되었다고 한다. 나무에 대한 설명과 총탄자국 표시가 없으면 그냥 지나칠 평범한 소나무인데, 총탄자국 표시로 인해 한번 더 돌아보게 된다. 이사건 이후 북악산 성곽의 경계가 삼엄해졌고 1975년부터 대대적인 성곽 보수공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1.21 사태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한장 남겼다.
이 지역이 군사보호지역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듯 위에서처럼 성곽 안에 감시초소가 곳곳에 있다. 멀리 경복궁도 보인다. 경복궁 뒤쪽에 청와대가 있는데 그 때문에 북악산 길에서 경복궁이 있는 시내 방향은 대부분 사진촬영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촛대바위를 지나 만나는 곡장의 풍경도 근사하다. 곡장(曲墻)은 쳐들어오는 적을 관찰하고 공격하는 초소로 산세가 험한 곳에 설치됐다. 군사보호구역 대부분이 전망이 좋은 곳들인데 이곳도 마찬가지로, 곡장에 올라서니 서울 도심 풍경이 시원하게 들어왔다.
서울의 사대문 중 유일하게 산 속에 있는 대문인 북대문, 숙정문(肅靖門)에 도착했다. 성곽과 함께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4대문인데 원래 문의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동대문이나 남대분에 비해 그 규모가 많이 작다. 문을 통과해서 아래로 내려가 성북동 방향으로 내려갈 수 있는 것 같다. 문루에 올라 바깥 경치도 감상할 수 있는데, 서울의 도성문 중에 이렇게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이곳과 창의문 둘밖에 없는 듯 하다. 숙정문에서 동료들과 잠시 쉬면서 휴식을 취해 주었다.
말바위 안내소에서 창의문 쪽에서 받았던 출입증을 반납했다. 여기부터는 통제를 받지 않고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는 곳이다. 북악산 코스는 오랫동안 일반인의 출입을 막아서인지 성곽이 끊기거나 부서진 구간 없이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숲도 우거져 걷는 내내 상쾌했다. 산세가 험준해 계단을 오르다 보면 땀이 흐르기도 하지만 잠시 멈춰 도심 쪽을 바라다 보면 가슴이 시원해졌다. 북적거리는 서울도 멀리서 바라보니 그저 평온한 모습이었다.
헤화동 쪽으로 내려오다 보니 눈에 띄는 건물이 삼청각인 듯하다. 이쪽에 대한 설명을 찾지 못해 추측만 할 뿐... 조금 더 내려 오니 말바위 전망대가 나온다. 말바위는 이름만 들으면 말 모양의 바위라서 이름이 지어진 것 같지만 유래는 조금 다르다. 조선시대에 말을 이용해 이동하던 이들이 가장 많이 쉬던 자리라고 해서 말바위라고 이름이 붙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북안산의 산줄기가 동쪽에서 내려오다가 제일 끝에 있는 바위라고 해서 말(末)바위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이곳 역시 서울의 동쪽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 장소이다.
서울 성곽은 높이 12m, 총연장 18km의 타원형으로 축조되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 후 한양 도성을 외적이나 도적의 침입으로부터 막고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서 건설했으며, 이후 1422년 세종대왕에 의해 돌로 축조되고 활 총을 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다고 한다. 동쪽의 흥인지문과 서쪽의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 등 4개의 대문과 혜화문 ,소의문, 광희문, 창의문 등 4개의 소문을 만들어 출입을 했다고 한다. 현재 돈의문과 소의문 광희문은 그 터만 남아 있다.
경사가 완만한 와룡공원에서 도착하면 실질적인 북악산 성곽길 걷기는 끝나게 된다. 이곳에서부터 성곽길이 끊어지면서 교회와 학교건물을 따라 성곽길의 흔적이 이어진다. 일부는 사진에서처럼 성곽을 축대삼아 민간주택이 지어진 곳도 있었다. 심지어 서울시장 공관도 성곽의 축대위에 세워져 있었다. 낙산에서 혜화문으로 넘어오는 곳에도 차가 다니는 큰길에 의해 성곽이 끊겨 있다. 북악산에서 본 것처럼 서울성곽이 모두 복원되었으면 좋겠다. 민간 주택과 도로등을 매입하기 위해 비용이 들어가겠지만, 장기적인 계획과 노력으로 서울 성곽 전 구간이 모두 복원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 성곽 걷기를 마쳤다.
성곽 걷기를 마치고 대학로에서 조금 이른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었음에도 다시 광장 시장에 와서 유명한 녹두빈대떡에 막걸리를 한잔씩 했다. 식사를 적게 한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광장시장을 자주 이용했던지라 상당히 익숙한 곳이였는데 동료들 중에는 광장시장을 처음 와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평소에 자주 가던 식당을 가려고 했는데 우리 일행이 숫자는 너무 많고, 오늘따라 손님이 너무 많아서 갈 수가 없었다. 사람이 많지 않은 처음가는 식당을 갔더니 손님이 적은 식당은 왜 손님이 많이 찾지 않는지를 오늘 다시 한번 실감했다. '빈곤의 악순환'처럼 손님이 없으니 안주를 새로 만들지 못하고 미리 만들어 놓았던 것을 재활용하게 되고, 그러니 음식맛이 좋을리 없다. 배가 고프지 않아서 맛만 보고 나왔다. 손님이 붐비는 집을 찾아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알았다.
광장시장에서 나와 청계천으로 내려와서 광화문 방향으로 산책을 시작했다. 정치적인 논리를 배제한다면 청계천을 복원한 것은 시민의 입장에서 너무나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와 볼거리와 휴식의 공간이 생겼다는 점.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명소가 되었다는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우리 일행도 과식의 후유증을 줄일겸 모처럼 청계천에서 여유를 갖기 위해 청계천으로 내려와 한참을 걸었다. 우리가 걷는 시간에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을 찾아와 휴식과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청계천에서 산책하다가 커피를 한잔 하자는데 의견을 모아 오랫만에 동료들과 서울에서 차 한잔을 마시는 여유까지 부려보게 되었다. 오늘 직원들과의 화합행사는 서울성곽 걷기부터 시작해서 청계천을 함께 걸으면서 회사에서 추구했던 목표를 충실하게 이행한 듯하다. 사무실에서 공적인 업무이야기만 나누다가 편한 마음으로 사적인 이야기도 나누었으니... 나만의 생각인지를 모르겠으나... 청계천 개발이후 서울의 모습이 자꾸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는데 오늘 와서 보니 새로운 건물과 문화 공간이 너무나 많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계획에도 없던 명동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는데 한 매장에 들어가서 박물관장님이 티셔스를 하나씩 구입해서 선물해 주었다. 성곽 걷는 것도 즐거웠고, 동료들와 함께 한 시간도 좋았는데 행사의 마지막에 관장님의 선물이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행복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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