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읍성을 나오면 제법 넓직하게 조성된 공원이 있고, 그 공원 한켠에 판소리박물관, 신재효고택, 고창군립미술관 등이 들어서 있다. 고창은 예로부터 많은 명창이 배출한 판소리의 고장이다. 여기에 판소리에 심취한 후원자이자, 판소리 사설의 집성자이며, 이론가이자 비평가로 이름을 날렸던 신재효의 복원된 고택이 있다. 신재효는 중인 출신으로 평생을 고작 아전에 머물렀지만, 40대 초반에 곡식 1000석을 추수하고 50여 가구가 넘는 세대를 거느렸던 대부호였다고 한다. 판소리에 약간의 관심은 있었지만 그 중심에 신채효가 있는지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 오늘 고창을 찾으면서 새로운 사실 하나를 더 알게 되었다. 함께한 해설사님의 강의를 진지하게 들었다.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택으로 중요민속자료 제39호인 신재효 고택은 판소리를 집대성한 국악의 개척자 신재효의 산실이자 판소리 교육공간이다. 그가 여생을 마치던 1884년(고종 21)까지 기거하였던 동리정사(桐里精舍)는 1850년대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의 아들이 1899년에 중수하였다고 전한다. 당시 안채를 포함한 크고 작은 여러 채의 건물들이 한 곽(廓)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조촐한 초가지붕인 사랑채만 남아 있다.
원래 시재효 생가는 주변의 물을 끌어 마루 밑을 통해 서재 밖 연못으로 흘러가도록 만든 운치 있는 집이었으나, 지금은 모두 파묻혔고 연못만 복원해 놓았다고 한다. 한국의 세익스피어로 지칭되는 동리 신재효(桐里 申在孝)는 심청가, 적벽가, 춘향가, 토끼타령, 박타령, 변강쇠타령(가루지기타령) 등 판소리 여섯마당의 체계를 세웠으며, 판소리의 창극화와 함께 판소리 사설을 집대성하는 등 우리나라 판소리의 발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1812년에 태어나 당시 천대와 멸시당하던 광대와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고 발전시키는데 온 정력을 기우렸다고 한다. 그래서 가람 이병기 같은 학자도 신재효가 이룩한 판소리의 업적이, 우리 민족성을 발휘하여 국가문학을 크게 발전시켜 주었다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사랑방에는 신재효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는 장면이 모형으로 전시되고 있다.
올해가 동리 신재효 선생이 태어난지 200년이 된 해이다. 1964년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된 판소리는, 2003년에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세계무형유산 걸작으로 지정되었다. 우리에게는 일부 세대에서만 듣는 것으로 되어 있는 판소리이지만, 유네스코는 한국의 판소리를 인류가 함께 듣고 즐겨야 할 공통 문화예술로 공인해 놓은 것이다. 그 중심에 신재효 선생이 있었으며, 요즘 K-POP을 비롯해서 한류가 세계를 뜨겁게 하는데에는 그런 선조들의 노력이 깔려 있었음을 기억해햐 할 것 같다.
고창읍성과 신재효선생 고택을 방문하고 나서 다음으로 찾은 곳은 고창 청보리밭이다. 지난 4월 21일부터 5월 13일까지 청보리밭 축제가 진행되었다는에 5월말에 찾은 보리밭은 청보리밭이 아니라 누런 황금빛을 보리밭이었다. 그동안 언론이나 여러 매체를 통해 이야기 들었던 고창의 공음면에 있는 10만여평의 청보리밭은 누렇게 익은 보리가 가득했다. 이곳의 정확한 명칭은 학원관광농장 혹은 학원농장이라고 한다. 청보리밭에는 특별한 놀이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명한 먹을거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은 것이란 이야기를 듣었는데 와서 보니 사람들이 찾을만한 매력을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이였다.
이곳 청보리밭은 보리를 단순한 식량생산의 기능이 아닌 관광자원으로 활용한 전국 최초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눈으로 보는 것도 좋지만 사진으로 찍으면 더 예쁘다고 했는데 그 말이 실감이 난다. 파란 청보리는 아니였지만 넓은 황금색 들판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상쾌해지고 마음이 후련해졌다. 어느곳에 카메라를 내밀어도 작품사진이 나오는 듯하다. 청보리밭 주변의 잉어못, 호랑이왕대밭, 백민기념관, 도깨비 숲 등 총 2km의 보리밭 사잇길을 걸으며 정취를 느껴보고 싶었는데 하루동안 고창의 여럿 곳을 다녀야 하는 입장에서 이곳에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학원농장 내에 자리하고 있는 청보리밭은 10만평이 넘는 대지에 가득 심겨 있어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6월 초에 보리를 베기 시작한다고 하니 이번 주나 다음 주 정도만이 이 멋진 풍경을 감상 할 수 있을 듯 싶다. 멋진 풍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 이외에 보리밭 안으로는 들어가고 싶었는데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중간에 몇 몇 장소에는 축제기간부터 워낙 많은 사람들이 보리밭 한가운데 들어가 사진을 찍은듯 움푹 패인곳이 있어, 나도 부담없이 들어가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청보리밭 사이로 나 있는 산책로를 따로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면서 걷다보니 그 순간은 자연 속에서 행복해졌다. 보리밭을 모두 다 돌아보려면 30여분 이상 다녀야 하는데 농장의 일부분만 구경하고 드 대신에 사진찍기에 몰두해 버렸다. 이곳 학원농장에서는 보리를 수확하고 난뒤에 농장을 찾는 분들을 위해서, 보리에 이어 메밀을 심는다고 한다. 또한 메밀과 함께 밭 구석구석에 해바라기와 코스모스를 심어, 여러 가지 꽃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한다고 하니 꼭 청보리밭을 볼 때가 아니어도 한번은 와 보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농장 안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식당이나 매점 등의 공간이 있지만 협소했고, 이곳에서 생산된 보리관련 제품과 추억의 보리건빵도 판매하고 있었다.
고창 청보리밭을 떠나 오늘의 마지막 행선지인 고창 고인돌박물관을 찾았다. 고창은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재들을 살펴볼 수 있는 지역이라 문화답사지역으로 좋은 곳이다. 특히 고창은 국내 최대 규모의 고인돌 밀집지역으로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 등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로 발견되었다. 고인돌은 지석묘라고도 하며 청동기시대 때 권력이 발생하면서 지배자의 무덤으로 조성되기 시작하여 당시 계급의 출현과 군장사회에 관한 역사적 지표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고인돌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는 고인돌 왕국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남한에 3만여기, 북한에 1만 5천여기가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그 중 고창‧화순‧강화의 고인돌은 희귀성, 역사성, 특수성 등의 여러 측면에서 ‘아주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하거나, 오래된 유산’으로 평가 받아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고인돌을 널리 알리기 위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고창에 2008년도에 고인돌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지난 2000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북 고창의 고인돌유적을 소개하고 선사시대 생활을 전시하고 체험하도록 만든 고창고인돌박물관은 세계적 여행안내서 '미슐랭가이드'에 꼭 가볼 곳으로 추천되었다고 한다. 입장료를 삼천원을 받았는데, 관람료 대비 진짜 볼곳없는 박물관이였다는 생각이다. 외국인이 보는 관점과 우리가 보는 관점이 상당히 다른 모양이다. 이곳에 3천원의 입장료를 받으면 무료인 서울국립박물관은 열배의 입장료를 받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박물관 1층은 고인돌 수장고, 3D입체영상실, 기획전시실이 있으며 2층에는 상설전시실, 3층에는 체험전시실, 옥상정원을 갖췄다.
2층으로 올라가면 고인돌의 분포현황이 지도에 나와 있다. 우리나라에 있는 고인돌은 약 3만개라고 한다. 고인돌의 모양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되는데, 일반적으로 큰 받침돌 위에 돌을 얹어 만든 북방식 고인돌, 탁자식 고인돌이다. 무덤은 지상에 있는데, 보통 한강 이북에서 발견된다고 해서 북방식 고인돌이라고 부른다. 무덤은 지하에 있고 돌을 괴어 만든 남방식 고인돌은 북방식에 비해 받침돌의 크기가 많이 작다. 그리고 지하에 무덤을 만들고 그냥 큰 돌을 바로 올려놓은 개석식 고인돌 등 3종류로 구분된다. 북방식 고인돌의 한계지점이 고창이라고 한다. 사진을 찍어서 문제가 있을만한 유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촬영 금지라고 되어 있었는데, 저작권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슨 저작권 타령인지 모르겠다.
고인돌박물관부터 고인돌이 자리한 지석묘군이 있는 고인돌공원까지는 약 700여 m를 걸어가야 한다. 이동하는 길가에 청동기시대 부락과 주거 모습을 전시한 전시장도 마련되어 있었다. 박물관은 입장료를 받지만 고인돌 유적지만 관람할 경우에는 입장료가 없었다. 십여분 정도 걸으면 고인돌이 지천에 널려 있는 기슭에 당도하게 된다, 족히 세어봐도 백여기에 가까운 고인돌이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듯한 모습이다. 산 기슭 전체에 인위적으로 만들어 올린 고인돌들이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오늘 함께 답사를 온 일행중 일부는 그늘이 없는 더운 날씨에 그냥 고인돌 보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산기슭까지 가는 것을 거부한다.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보다 더 좋았는데...
얕은 야산 둘레 둘레로 끝없이 고인돌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크게 네 구역으로 나뉘어지는 이 일대 외에 다른 곳에도 고인돌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세계 최대의 고인돌이라고 알려진 운곡리 고인돌은 이곳에서 고갯길을 넘어 한참을 더 걸어가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시간에 여유가 있고 여건만 괜찮으면 걸어 가 볼 수 있겠지만, 나 혼자의 생각일 뿐 사정이 허락하지 못해 이곳 고인돌 공원만 둘러 보게 되었다. 날씨가 생각보다 많이 더워져서 구경하는 것도 힘이 든다. 간혹 매우 거대한 돌을 쌓아 올린 고인돌도 눈에 들어온다. 큰 돌을 올렸다는 것은 그만큼 지배자의 권력이 매우 컸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고인돌 유적지를 둘러보고 다시 박물관 앞에 오니 아주 커다란 고인돌이 하나 있다. 이 고인돌은 계산지구 농촌용수 개발사업지에 있던 것으로, 고창군이 고인돌의 고장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박물관 앞 야외마당으로 옮겼다고 한다. 가로 6.6m, 너비 3.4m, 두께 3.2m, 무게 90t에 이르는 바둑판식 덮개돌로 엄청난 규모이다. 오늘 하루 고창으로 문화답사 여행을 와서 선운사와 고창읍성, 신재효 고택과 청보리밭 그리고 고인돌 유적지와 고인돌박물관 등 여러 곳을 둘러보고 가게 된다. 짧은 시간에 여러 곳을 둘러보느라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은 것을 보지 못하고 지나친 경향이 있으나, 함께한 해설사 선생님 덕분에 알찬 여행이 되었다. 다음번에는 다른 계절에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고창을 모습을 보러 오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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