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우붓에서 교통사고는 발생했지만 사람은 다치지 않았기 때문에 계획했던 일정은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곳 우붓에서 숙소를 정하고 잠을 자려고 했던 이유중에 하나가 이곳 우붓 왕궁(Ubud Palace)에서 전통공연을 보려기 위해서였다. 차 사고 처리를 하느라 황금같은 오후 시간을 2시간 넘게 소모했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이 오후에 일어났기 때문에 어둡기 전에 처리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어두울때 사고가 났으면 나로 인해 2차 사고도 일어날 수 있는 장소였다. 더구나 저녁에 전통공연을 보려고 계획해 놓았는데 그 목적을 이룰수 없을 뻔 했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내려 놓고 다시 우붓의 거리로 나섰다.
여행을 하면서 낮에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밤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꾸따 같은 곳이라면 클럽이나 펍에 들러 밤 시간을 즐길 수 있겠지만, 다행히 내가 밤문화에 즐기지 않는 편이라서 그런 계획을 세울 필요는 없었다. 다만, 이런 공연이나 행사가 있으면 참석하기 위해서 고민을 한다. 우붓 왕궁은 우붓의 마지막 왕이 살았던 옛 궁전으로 규모는 작지만 고풍스럽고 운치 있다. 이곳에서 매일 밤 레공 댄스, 바롱 댄스 등 전통 무용 공연이 열린다. 현지 문화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공연을 보기로 했다.
우붓 왕궁 근처에 오니 정문 앞에서 정식 티켓을 팔고 있는데 정문 근처에서 길거리 판매원들이 표를 똑같이 판매하고 있었다. 길거리 판매원도 입장료를 똑같이 받았는데, 왜 그런지 물어보았더니 자신들이 판매하면 커미션을 받는다고 한다. 관광객을 상대로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해서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 그런 제도를 만든 모양이다. 처음에는 암표상이라 생각하고 피했는데, 나중에 적극적으로 영업활동을 폈던 현지 아주머니께 입장권을 구입했다. 입장료는 8만루피아, 우리 돈으로 8천원 정도 되는데 현지 수준으로 생각하면 비싼 편이다.
레공 댄스(Legong Dance) 공연은 밤 7시 30분부터 시작되는데 비교적 일찍 공연장에 들어온 덕분에 최고 좋은 명당은 아니지만 바닥에 앉아서 보지 않고 의자에 걸터 앉아서 볼 수 있는 곳을 차지했다. 무대 정면에 있는 좌석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측면 좌석은 무대에서 훨씬 가까와서 배우들의 표정과 손동작 하나 하나까지 볼 수 있어 그것도 괜찮았다. 지정좌석제가 아니어서 늦게 온 사람들은 좌석이 다 차고 나면 바닥에 앉아서 보거나 뒷쪽편에서 서서 봐야 한다. 정보를 알고 있었기때문에 저녁식사도 하지 않고 공연이 보러 왔고, 식사는 공연을 보고 나서 하기로 했다. 공연 시작 시간이 되니 입석으로 들어온 사람들까지 객석에 가득하다.
연기자들의 입장에 훨씬 앞서 전통악기 연주자들이 먼저 입장해서 한참동안 악기를 조율한다. 오케스트라 같이 자리 위치에 따라 연주자의 역량을 나타내 주는 모양이다. 앞 쪽에 앉거나 높은 곳에 앉은 사람이 수석 연주자인듯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 사람의 연주에 맞춰서 따라 하는 것이 느껴진다.
사진은 정면에서 찍어야 잘 나왔을텐데 측면에 앉아 있어서 측면 사진밖에 없다. 사진을 찍겠다고 공연중에 옮겨 다닐수도 없고... 엄청 화려하고 아름다운 전통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등장한다. 살랑 살랑 거리면서 요염한 춤을 추는데, 눈을 크게 뜨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이고 손짓이나 발짓도 예사롭진 않아 과히 예술의 경지라고 보여졌다. 꽤 역동적이었던 남자 무용수들의 춤, 목이 없는 듯 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
레공댄스의 유래는 정확하게 나와있지 않지만, 19세기의 발리 왕족들을 위해 궁중 내에서만 행해지던 공연으로, 발리 전통 무용 중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아파 누워있던 수까와띠(Sukwati) 왕조의 왕자가 어느날, 가믈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두명의 소녀에 대한 너무도 생생한 꿈을 꾸었고, 병에서 완쾌된 왕자가 꿈에서 본 댄스를 그대로 만들어 추게 했다고 한다. 레공댄스 자체에도 여러가지 스토리가 있다는데 가장 많이 공연되는 것이 발리의 영웅 서사시 모음집인 말랏(Malat)에 나오는 '라셈왕의 이야기'라고 한다. 함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적국의 공주를 사랑하는 라셈왕, 그 라셈왕을 피해 달아나는 공주! 그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를 다룬 레공댄스.
공연 시간은 90분인데, 음악이 단조롭고 처음 신기했던 무용수들의 움직임도 너무 반복적인 패턴이 많아지자 슬슬 지겨워지 시작한다. 말이 없이 손과 발의 동작, 그리고 눈연기로 이루어진 공연이었는데 극의 전개나 스토리 구성이 조금 아쉬웠다. 무용수들 의 개인 역량은 뛰어났으나 후반부에 가서는 솔직히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레공댄스는 사춘기 이전의 소녀들만 출 수 있다고 들었는데 공연하는 것을 보니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분도 있는 듯 했다. 공연이 끝나자 이제 끝났다고 좋아하면서 박수를 쳤다. 나는 스스로 문화인이라고 생각해도 실질적으로는 자질이 부족한 모양이다. 한번 보는 것으로 충분하지 다시 볼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발리에 와서 레공댄스를 한번 보았다고 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연을 위해서 저녁을 빨리 먹지 못했는데, 왕궁 바로 옆에 있는 이부오카에서 바비굴링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9시가 넘은 시간인지라 문을 닫아 버렸다. 아들은 이부오카에서 바비굴링이 먹고 싶다며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우붓에 있을 시간이 많지 않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 모양이다. 숙소쪽으로 이동하면서 식사를 하는 곳을 찾아 다녔는데 가격도 착하고 맛도 있는 집을 하나 발견했다. 이조라고 되어있는 와룽이었는데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온 사람이 운영하는 집인듯 했다. 늦은 시간인데 가볍게 식사를 하려는 외국인들이 제법 많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과일과 몇가지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서 숙소에서 가까이 있던 델타 데와타라는 쇼핑센터를 찾았다. 시원한 쇼핑센터에서 코코넛 슈거와 코코넛 가루등 발리에서 생산되는 공산품 몇가지와 과일을 구입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나라의 포장마차처럼 각종 야식을 판해는 작은 거리의 상점을 보았다. 위생상태를 따진다면 당연히 사 먹을 수 없는 곳이지만, 아주 젊은 친구들의 현란한 손놀림이라도 구경하자는 생각으로 있다가 용기내서 야식 마르타박을 샀다. 반죽을 피자 만드는 것보다 회려하게 돌려 주고, 가운에 각종 야채가 들어간 계란을 풀어 부어주고 접어 기름을 계속 뿌려주며 골고루 익히고 연유까지 뿌려주는데 기름기가 엄청나다. 저녁 먹은지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현지 야식을 맛 보겠다고 도전을 해 보았다. 이곳에서는 각종 야채 튀김도 팔고 있었다. 햔지인은 많이 이용하는 모양이다.
앞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내가 우붓에서 숙박을 하고 싶었던 이유중에 하나가 우붓 새벽시장을 가보고 싶었었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서 잠을 자게 되면 아침 일찍 이곳에 오기가 힘들것 같아서였는데 우붓에서 숙소를 정한 것이다. 어제 사고의 악몽은 잊어버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우붓 새벽 시장을 방문했다. 숙소에서 시장까지는 걸어서 5분거리... 이런 것을 생각하고 숙소를 정했다. 이곳은 낮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전통공예품들을 많이 팔고 있어 관광객들의 필수코스중 하나이지만, 이른 새벽에는 현지인들의 시장으로 변한다. 시장이 열리는 시간이 보통 오전5시경부터 8시 정도라고 들어서 부지런히 나섰는데 벌써 시장이 시끌벅적하다.
낮에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재래시장인 우붓시장 뿐만 아니라 왕궁 앞쪽 길인 라야우붓 거리에까지 각종 차량에 신선한 과일과 각종 농산물을 가져와 팔고 있었다. 새벽의 우붓시장은 활기 넘쳤고, 부지런한 현지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유로운 것 같기도 했다. 현지인들의 생활에 필요한 물품은 사고 파는 곳인지라 심한 호객행위도 없는 것도 마음에 든다.
기존 시장 안쪽으로 들어서니 사람도, 과일도, 고기도, 야채도 넘쳐났다. 안쪽편에는 계단으로 위 아래가 나뉘어져 있는데, 아래쪽에서는 고기류를 팔고 있었다. 시장 안쪽에는 꽃 파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짜낭을 만들어 신에게 바치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일상이라서 만들어 제단에 바치는 것만 보았지, 꽃을 시장에서 사서 만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시장에서 꽃을 사다가 만드는 모양이다. 짜낭을 만들때 사용하는 야자수 잎으로 만든 접시도 함께 팔고 있었다. 현지인들이 생활하면서 필요한 모든 것이 새벽시장에서 거래되고 있었다.
아침에 이 생기 넘치고 활력이 넘치는 재래시장을 방문해 본 것도 참 좋았다. 몇 몇 곳에서 과일 가격도 물어 보고 했지만 우리가 이곳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음식을 해 먹는 상황이 아니어서 그냥 재미로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다만 코코넛을 사서 아침에 먹어 보았고, 이곳에서도 두리안을 팔고 있기에 두리안을 사서 먹었다. 두리안은 철이 아닌듯 크기도 작았고, 기대했던 맛이 나지는 않았다. 시간이 점점 흘러서 8시가 되어가니 시장이 마감되어 간다. 트럭으로 장사를 왔던 사람들이 먼저 빠져나가면서 새벽시장은 점점 관광객을 위한 시장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나와서 시장을 구경하니 참 좋다. 우붓에서의 아침이 행복하다.
(9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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