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레메 야외박물관을 출발해서 카파도키아의 지하도시인 데린구유(Derinkuyu)로 이동했다. 이곳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이곳에 살던 농부가 닭이 없어지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땅을 파 보니 거대한 지하도시 모습이 들어났다고 한다. 기독교인들의 1-3세기동안 로마인들의 침입으로 인한 박해를 피해 숨어 살았다는 지하도시로 용암층 바위속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어 왔던 곳이다. 카파도키아를 더욱 경이롭게 하는 요소는 최대 2만여명까지도 수용이 가능한 대규모 지하 도시였다는 점이다. 이곳 지하도시에 관한 정확한 자료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히타이트 시대부터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본격적인 확장기는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에 들어와 교육기관과 교회, 와인 저장고 등을 축조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작은 마을부터 거대한 도시에 이르기까지 총 40여개에 달하는 거주지가 발굴되었으나 몇 개만이 공개되고 있다.
마침내 깊은 웅덩이라는 이름의 데린구유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에 최초로 땅을 파기 시작한 것은 대략 4천년 전쯤으로 추정하는데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목적을 달리하며 확장해 나갔다. 선사시대의 지하도시는 최초에 추위를 피하기위한 용도였겠지만, 이후 침입자들로부터 피신의 이유가 추가 되었다. 로마시대의 박해와 아랍과 이슬람 제국시대의 박해를 겪으며 지하도시는 더 확장되고 견고해졌다. 데린구유로 들어서기 전에 만난 철근 구조물. 구조물이야 최근에 만들어 놓았겠지만 이 곳에 지하도시의 숨구멍이 있다. 지하세계에 필요한 신선한 공기들은 이 곳을 통해 들어 갔었다고 한다.
데린구유 지하 대도시로 들어가는 입구. 1964년 일반에게 공개되어 현재 지하 4층 까지만 개방되어 있다. 매우 복잡하고 미로형의 구조를 띠고 있어서 자칫 길을 잃기 쉬워 가이드의 안내를 받고 돌아봐야 한다. 입구 초입은 내려가기 아주 평이하다. 벽돌로 옆쪽도 깔끔하게 처리해 놓았지만 조금 내려가면 사람의 몸이 겨우 들어갈 만한 구멍 속에 2만여명을 수용하는 어마어마한 지하도시가 있다. 때로는 허리를 굽힌채 지나가야 하고 좁고도 꼬불꼬불 계단도 지나쳐야 한다. 지금은 조명을 해 놓아서 그래도 밝게 지나갈 수 있지만 옛날에 전기가 없던 시절에 어떻게 이곳에서 생활을 할 수 있었는지 이해도 상상도 되지 않는다.
지하 1층은 아치형 천정에 돌기둥을 받쳐서 넓은 공간을 확보했는데 아래층 상황보다는 온도와 일조량이 비교적 양호했고, 그래서 이 곳에서 가축을 기르고 포도주도 제조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가축을 키운 것은 이방인들이 침입하면 가축들이 소리를 내게 되고, 그사이 이곳의 거주자가 문을 걸어 잠그고 더 아래로 도피했다고 한다. 마치 개미집을 연상시키는 좁은 동굴 사이로 거대한 규모의 대피시설이 곳곳에 있다. 이곳을 돌아보면 규모의 거대함에 놀라고, 인간의 생존 능력에 다시한번 놀라게 된다.
동굴 아래로 내려가던 중간에 있었던 거대한 초대형 멧돌같이 생긴 동그랗고 커다란 바위는 중앙의 구멍으로 막대기를 끼워 굴려서 출입문을 봉쇄할때 사용하는 돌이다. 밖에선 쉽게 열수 없는 구조로 적이 쳐들어 오면 출입구를 봉쇄하는데 사용한 돌이라고 한다. 이 돌문은 두께 60cm정도에 170cm이상의 높이에 500Kg정도나 되는 육중한 것이었다. 어떻게 만들고 이동했는지 궁금한데, 나름 방어를 위한 장치까지 마련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미로 같은 동굴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어디쯤 내려 왔는지조차 구분이 되지 않는다. 가이드를 따라서 가다 보니 지하 몇층에 와 있는지 알수가 없다. 지하에는 넓은 공간의 창고, 교회, 학교 등 공공 생활 장소도 만들어져 있어 있었다. 주거 공간뿐만 아니라 땅속에서도 도시의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긴급한 일이 발생할 시에 모여서 대책을 논의했던 집회 장소도 있었다. 지하도시가 대단하다는 생각만 든다.
데린구유 주변에는 30여개가 넘는 지하도시가 10km 넘게 형성되어 있고, 수용 인구만하여도 2만명이 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지하 4층까지만 내려 가 보았는데 중간 중간에 터널 구멍이 좁아 겨우 한 사람이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굽혀야 통과할 수밖에 없는 통로가 여러번 있었다. 한번 들어가면 올라오는 사람이 없어야 내려 갈수가 있었다. 어떻게 평생을 종교적 신념만으로 이런 곳에서 생활을 했을까 싶다. 내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현이 맞다.
데린구유에는 52개나 되는 환기구멍이 있어 지하 깊숙이까지 내려가도 전혀 호흡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과학적으로 설계되어 있었다고 한다. 많은 지하 주민들이 불을 지펴서 빵을 구웠음에도 연기는 흔적도 없이 분산되어 바깥으로 스며 나갔고, 이런 시설 덕분에 지하세계가 완벽하게 유지될수 있었다. 전문가들의 얘기로는 그들은 동굴생활을 오래 연명하기 위해 생명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만을 먹었기에 이곳에는 별다른 화장실의 흔적 조차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
무수한 지하통로들은 마치 개미집을 연상하듯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조그만 구멍을 통해 지하로 들어가니 여러개의 방과 층으로 이루어져 있어 길을 잃을 수도 있을 만큼 복잡하다. 다행히도 좁은 통로는 다시 넓은 장소로 이어졌는데 세로 20m, 가로 9m 규모의 십자형으로 만들어진 교회가 나왔다. 그들의 고단한 삶은 종교에 대한 믿음으로 극복 했을 것이다. 집단의 규율을 다스리기 위해 감옥과 같은 시설도 존재했었다고 한다. 대단하다는 말 이외에는 이곳을 지하도시를 표현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지하도시라고 하는데 사진으로 보아서는 어떤 모습인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개미집처럼 꼬불 꼬불 내려가기만 했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정리하다 보니 이곳 데린구유의 지하세계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해 놓은 것이 있었다. 그림으로 봐도 개미집같은 느낌이다. 현재 카파도키아 지역에는 이곳 데린쿠유를 포함해서 36개의 지하도시가 발견되었는데, 발굴을 통해 이 숫자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많은 지하도시를 건설하는데 과연 몇년이 걸렸으며, 어느 정도의 인원이 동원되고, 그 시대에 이 엄청난 작업을 실현시킬 수 있었던 기술은 무엇인지 궁금한 것이 너무나 많은데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음에는 틀림없다.
데린구유 주변은 우리의 시골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곳에서는 숙박을 하면서 현지에 도움을 주는 관광지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숙박을 하고 잠시 스쳐 지나가는 관광지라 이곳 주민에게는 특별한 혜택이 없어 보였다. 그야말로 자동차 매연과 쓰레기만 남기고 가는 것이 아닌가싶다. 아이들은 숙박했고, 관광지의 야박한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카펫과 인형 등 기념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데, 카펫은 너무 크고 인형은 너무 조잡해 보였다. 아이들에게는 가지고 있던 과자와 사탕을 나눠 주었는데 굉장히 좋아했다.
지하도시의 돌위에서 잠을 자고 생활했기에 이곳이 카펫문화가 발달했는지 모르겠다. 커다란 카펫을 많이 판매하고 있었지만 사가지고 올 수 없어 가격조차 물어 보지 못했다. 이 지역은 아직도 생활여건이 상당히 열악해 보였다. 조그만 인형을 팔고 있는 할머니가 있었는데, 가격도 상당히 저렴했지만 내 취향과 너무나 달라서 구입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어려운 이 지역에 무엇인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생각만 많이 하고 돌아왔다.
(7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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