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정은 통영의 몇 곳만 둘러보면 되기에 그다지 바쁜 일정이 없어 아침에 여유가 있었다. 아침을 통영에서 유명한 굴밥집으로 식사를 하러 갔더니 아침 10시부터 오픈한다고 한다. 유명한 식당이라 그런지 굳이 아침식사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다. 생각했던 계획이 틀어져서 무엇을 먹을지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도다리쑥국을 먹으러 갔는데, 굴밥을 먹은 것보다 훨씬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이다. 은은한 쑥향에 시원한 국물 맛이 서울에서 먹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나는 도다리쑥국을 여러번 먹어 보았기에 잘 알지만, 처음 먹어 본 가족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맛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침 식사후 어제 저녁때 잠시 들렀던 동피랑 벽화마을 방문하려고 차를 주차시켜 놓고 이동중, 작은 아들이 잘못한 것을 몇가지 지적했더니 집사람이 놀러와서까지 아들을 구박한다고 한소리한다. 이쯤해서 그만했으면 좋았을텐데 내가 좀 지나쳤던 모양인지 함께 다니지 못하겠다고 아들을 데리고 그냥 가버렸다. 나도 황당하고 화가 났지만 똑같이 행동하면 여행이 엉망이 될 것 같아 한동안 화를 삭히고 동피랑 정상에 가서 가족을 기다리기로 했다. 어짜피 아들과 함께 가버렸어도 동피랑 마을을 구경하고 다른 곳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성격이 아이들에게 칭찬에 인색하다는 것도 알고 있고 욕심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쉽게 고쳐지지가 않는다. 아들이 잘하는 것을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잔소리를 줄여야 하는데 오늘 아침에도 그것을 실천하지 못했다. 아들이 행동을 바꾸면 더 좋아질 것 같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데, 그 욕심을 줄여야 하는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혼자서 정상쪽으로 이동하면서 풍경사진 몇 장을 찍었다.
다른 곳을 구경하러 가지도 못하고 동피랑 마을 정상에서 통영 앞바다만 보면서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거제에서처럼 동피랑 마을에도 벚꽃이 활짝 피어 있다. 동피랑 마을 이름은 동쪽과 '비랑'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비랑은 비탈이란 뜻의 통영지역 사투리인데, 동쪽의 동이란 말과 합성해서 동피랑이 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 2007년 10월 전국적으로 벽화를 그릴 사람들을 모아, 마을 담과 벽 길 등에 그림을 그렸고 낙후된 바닷가 언덕마을이 벽화마을로 다시 태어난 것이라고 한다. 마을에서 내려다 보는 강구안 바다 풍경도 볼만 하다.
산쪽으로는 멀리 세병관의 모습도 보인다. 동피랑마을 구경을 마치고 나면 세병관에도 가 볼 계획을 가지고 있다. 마냥 마을 윗쪽에서 기다리기 지루해서 조금 옆으로 가 보았더니 정상에 동포루란 누각이 있었다. 원래 동피랑 벽화마을은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의 동포루가 있던 곳으로, 통영시는 이 마을을 다 철거하고 동포루를 복원해서 공원을 만들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벽화마을로 성공을 거두자 통영시에서는 동포루를 복원할 때 집 몇채만 철거하고 남겨 두는 것으로 정책을 바꾸었다고 한다.
정상에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다시 집사람과 아들을 만났다. 나도 화가 나고 아들도 화가 났겠지만 나는 가해자라 화가 빨리 풀렸고, 아들은 욕을 얻어 먹었던지라 얼굴이 쉽게 펴지지 않는다. 그래도 착한 녀석이라 조금 분위기를 띄어 주었더니 오래 가지 않고 다시 밝은 얼굴로 돌아왔다. 다시 만났으니 본격적으로 동피랑 마을 탐방에 나섰다. 나 혼자 정상에 기다리고 있었고 집사람과 아들은 이미 아래에서부터 구경을 하고 왔지만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보러 가자고 하니 다시 따라준다.
벽화마을을 구경하다보면 이곳이 현지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곳이기에 주의를 기울여 달라는 문구가 여러 곳에 써 있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오면서 이 벽화마을에 있는 카페와 슈퍼 잡화점등이 영업이 잘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현지주민들이 관광객 증가로 인해 불편을 감내하는 만큼 수익도 주민들과 공유가 되는지가 많이 궁금하다. 단순히 철거되지 않고 살고 있게 된 것만으로 불편을 감수하라고 하면 공평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다. 마을 골목 골목마다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어 돌아보는 재미가 대단하다.
집사람과 아들은 이미 벽화를 둘러보면서 올고 왔지만 다시 입구쪽으로 내려가서 동피랑 마을을 외곽으로 한바퀴 돌아 보았다. 벽화 마을 어디에 가던지 빠지지 않고 있는 천사의 날개 그림도 이곳에 있다. 사진을 찍기에 좋은 포토 포인트라 다시 사진을 찍어 주면서 마음을 풀어 주었다. 이 동피랑 마을의 벽화는 2년마다 공모를 통해 새롭게 벽화를 바꾸는 방식을 채택해서 처음 오는 방문객 뿐만 아니라 이미 찾아 왔었던 방문객을 다시 오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다른 지역의 벽화마을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발상의 전환으로 차별화된 방식인 듯하다.
생각보다는 다양한 벽화가 제법 많이 그려져 있어서 동피랑 마을을 모두 돌아 보려면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릴 것 같다. 중간 중간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벤치도 마련되어 있고, 공공화장실도 준비되어 있어 관광지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어제 밤에 어두워서 제대로 보지 못할까봐 방문했다가 그냥 와 버렸는데 조명을 받으면서 돌아 다녔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최근에 다닌 벽화 마을 중에서는 가장 잘 꾸며 놓았고, 편의시설을 비롯해서 주변의 관광자원과 함께 한번 가볼만 한 곳이라고 생각된다. 꽃 피는 시기에 맞춰 오는 바람에 더 좋았던 것 같다.
남망산 조각공원은 동피랑마을과 비슷하게 통영항에서 굉장히 가깝다. 동피랑 마을 구경을 마치고 나서 마을의 맞은편에 있는 남망산 조각공원으로 넘어가서 바다를 보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통영항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약 10분 정도 걸어가면 들어갈 수 있고, 30분에서 1시간 정도 천천히 산책하면서 통영항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내 생각에는 동피랑마을보다는 남망산 조각공원이 통영항 전체를 조망하기에는 더 나은 것 같다. 조각공원은 시민문화회관과 붙어 있고, 이동중에 중간에 시비(詩碑)도 세워져 있었다.
국내 작가들을 비롯하여 외국 작가들의 조각 작품을 전시하고 있고, 작품 앞에는 간단한 설명도 있어 작품 이해에 도움을 주었다. 미술쪽에는 워낙 소양이 없어 작가 이름도 잘 알지 못할 뿐더러, 어지간한 작품을 보아서는 감동이 없다. 몇 몇 작품은 아무리 살펴 보아도 멋진 작품인지 구분 자체가 안된다. 그나마 베네수엘라 작가 헤수스 라파엘 소토의 '통과 가능한 입방체'라는 작품만 눈에 띄었을 뿐이다. 노란색 호스를 매달아 놓았는데 그나마 체험이 가능하도록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어 특이했다. 나머지 작품은 해설을 보아야만 의미를 추정할 수 있었다. 이 외에 조각품들이 몇개 더 있지만 작품 설명은 생략한다.
조각공원에서 바라본 통영 앞바다의 전경은 너무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시야에 걸리는 건물이 없어서 동피랑마을보다는 통영항의 조망이 더 좋기 때문이다. 조각가의 작품을 보면서 걸어가는 길가로 아름다운 통영 항구들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조각품 감상보다는 풍경이 더 멋있었다. 가볍게 공원을 한바퀴 다 돌아도 한시간도 걸리지 않았는데, 난망산이라고 해서 높은 산을 생각했었는데 그냥 조그만 언덕이었다. 산책하기에는 좋은 공원이었다는 생각이다.
1939년 발표한 시조시인 김상옥 대표작인 봉선화 시비를 비롯해서 유치환 시인의 깃발 시비등 여러 시인의 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알고보니 유치환 시인도 통영출신이다. 통영에는 작가, 작곡가 등 여러 문학인을 많이 배출한 예술의 도시라고 한다. 그래서 중앙시장 앞의 광장을 문화광장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조각공원이 멋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다지 볼 것이 없었다는 생각이다. 이런 곳이 어째서 통영 8경중 하나가 되었느지 알 수가 없다. 동피랑에서 보는 것보다 바다가 가까워서 항구를 남해 바다를 가까이서 내려다 볼 수 있다는 것과 바다를 내려다 보면서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만이 이 공원의 장점이다.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차라리 조각공원에서 조각을 빼버리고 그냥 해안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공원인데, 온김에 조각품을 구경하고 간다면 오히려 기분 좋게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삼모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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