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결승점인 미야코멧세(みやこめっせ)에서 천천히 걸어서 나왔다. 대회장 주변에 마라톤 대회로 교통이 통제되고 있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상태였고, 차가 다니는 큰 길가에서는 굳이 차를 탈 정도의 거리가 남지 않아서 카모가와(鴨川) 강변을 천천히 걸었다. 산조오하시(三条大橋)가 보이는 바로 앞쪽에 역전마라톤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역전마라톤 대회때 산조대교 앞에서 출발했다고 쓰여 있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 눈에는 이런 것도 잘 보이는 모양이다.
산조대교를 건너면 유명하다는 스타벅스 커피숍도 보이고 조금 번화한 거리가 시작된다. 다리 건너자마자 앞쪽에는 야지 키타상(彌次 喜多さん)이라는 자그마한 동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안전을 기원한다고 쓰여져 있지만 어떤 내용인지 자세히 쓰여 있지는 않았다. 소소한 볼거리가 많으 교토의 거리다.
카모가와(鴨川)와 실개천 같은 다카세가와(高瀬川) 사이에 있는 좁은 골목길은 일본전통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폰토죠 가부렌조(先斗町 歌舞練場)극장 앞에서 부터 시작되는 골목길로 폰토죠(先斗町) 골목이라고 한다. 에도 시대에부터 자생한 유흥가가 밀집해 있어 게이샤 등이 많이 있었던 골목인데,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고 깔끔하고 운치있는 가게들이 많이 모여있는 맛집 골목으로 변했다. 다양한 맛 집들이 있는데 가격은 조금 비싼 편으로 대부분의 음식점들이 오후 늦게 문을 연다고 한다. 골목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골목 중간에 교토 가츠규(京都 勝牛)라는 우리나라 여행자들에게 맛집으로 알려진 규카츠 집이 나왔다. 이곳도 6촌 동생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중에 하나인 교토 가츠규(京都 勝牛)의 한 직영점이다. 점심 시간이 한참 지났고 사장의 아버지가 간다고 예약이 되어 있어도 워낙 사람이 많아서 바로 입장할 수가 없을 없었다. 입구에는 한국 여행객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데 조금 떨어진 공터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연락을 준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내가 대신 설명해 주었다. 매장 입구 좁은 골목에서 기다리면 다른 가게에 불편을 주기에 조금 떨어진 공원에서 기다리라고 하는 모양이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근처에 있는 기야마치(木屋町)에 나가 보았다. 다카세가와(高瀬川)를 따라서 니조(二条)에서 고조(五条) 사이를 기야마치(木屋町) 거리라고 하는데 개울을 따라서 심어져 있는 벚꽃이 봄에는 아주 볼만하다고 한다. 지금은 겨울철이어서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지만 운치가 있어 보였고, 교토시가 이 지역을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중점지구로 지정해 관리한다고 한다. 식사를 하고 나서 산죠(三条)에서 시죠(四条)까지 가는 동안에 살펴보니 하천을 따라서 분위기 좋은 카페 , 레스토랑, 술집 등이 즐비해 있다.
자리가 비었다는 연락이 와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 입구도 좁아 보였는데 안쪽으로 들어가도 큰 규모는 아니었다. 바 형태의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인원이 대략 6-7명, 그리고 8명정도가 둘러앉을 수 있는 큰 테이블 1개, 작은 테이블 3-4개가 있었다. 돈카츠와 비슷하지만 안에 들어가는 고기가 소고기인 규카츠가 나왔다. 고기 종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돈카츠도 잘 먹지 않는데, 오늘 이곳에서 먹은 규카츠는 생각보다 훨씬 맛이 있었다. 사람들이 한시간씩이나 기다려서 먹을 정도로 육질이 부드럽고 고소하고 맛있었다.
규카츠 먹는 법이 한글로도 설명이 되어 있었고, 신용카드는 받지 않고 현금으로만 결재를 한다는 안내문이 문앞에 적혀 있다. 한글이 일상화 되어 있을 만큼 우리나라 사람이 많이 찾아 오는 듯하다. 종업원들이 엄청 친철하기는 하지만 우리말을 하지는 못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오후 3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공원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생 점포에서 공원에서 기다릴 수 있도록 간단한 벤취 형식의 쇠로 만든 구조물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후지미(伏見)에 있는 당숙집으로 왔다. 작은 할아버지께서 생존해 계실 때부터 이 집에 살고 있었으니 벌써 40년도 넘게 살고 있는데, 집 앞에 있던 공터에는 다시 집을 한 채 더 지어서 장남에게 주었다고 한다. 큰 아들과는 다른 집이지만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는 셈이다. 바로 옆집에 있는 손자 손녀가 시도 때도 없이 놀러 와서 놀다 간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서 할아버지 댁에 들러서 학교 다녀 오겠다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등교한다. 우리나라보다 더 엄격하고, 예절 교육을 시키고 있는 모습을 일본에서 보게 된다. 자기 자식 귀하다고 버릇없이 키우는 우리와 대조되어서 반성하게 되는 대목이다.
내가 일본에 마라톤을 하러 왔다는 소식에 교토를 중심으로 근처에 살고 계시는 고모님 6분 중에서 4분이 모여서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모처럼의 방문 소식에 당숙의 형제분중 2명만 빠지고 모두 모이게 된 셈이다. 다이코쿠초(大黒町) 지하철 산조역(三条駅)근처에 있는 베지테지야(ベジテジや)라는 한국식 삼겹살 전문점에서 저녁을 하게 되었다. 이 식당도 6촌 동생이 운영하고 있는 체인 중에 하나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막연히 레스토랑을 운영한다고 해서 조그마한 음식점 몇 개를 운영하는줄 알았더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규모가 엄청 크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우리나라 부산 총각에게 시집보낸 세째 고모님 부부와 함께...
세째 고모님과 숙모님과 함께. 숙모님은 70세가 지났음에도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젊음을 유지하고 있으시다.
삼겹살 전문점 베지테지야(ベジテジや)는 2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1층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꾸며 놓았다. 출입문 입구에 여러가지 복잡하게 많이 적어 놓았는데 메뉴판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 그림이 있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데 왜 그 그림을 차용했는지 물어보질 못했다.
베지테지야는 베지(ベジ:Vegetable, 신선한 야채), 테지(テジ: Pork, 돼지고기), 야(や:가게)의 합성어라고 한다. 내 생각에 테지라는 발음은 우리말의 돼지인 듯하다. 일본사람은 돼지라는 발음이 안된다. 동생이 운영하는 여러 종류의 체인점 중에서 이 상표로 제일 먼저 영업을 시작했다고 하면서 애정이 많은 상표라고 한다. 일본에서 맛보는 삼겹살, 한국에서 먹는 것과는 약간 다른 소스와 약간 변형된 다양한 삼겹살로 맛은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맛은 상당히 좋았다. 맛 보다는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 때문에 더 좋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저녁식사에 함께한 친척들.... 첫번째 사진을 당숙모님과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있는 6촌동생, 두번째 사진은 세째 고모님과 고모부, 세번째 사진은 당숙과 큰아들. 동생은 오늘 교토마라톤 대회에서 첫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했다. 4시간 20분의 기록으로 들어왔는데 너무 힘들어서 집에 가서 푹 쉬고 나왔다고 한다. 내가 카메라까지 들고 사진 찍으면서 뛰었다고 하니 정말로 대단하다고 한다.
6촌 동생들의 아들과 딸. 내게는 7촌 조카이다. 큰 동생 남수는 1남 3녀를 두었고, 둘째 동생은 아직 아이가 없고, 음식점 체인사업을 하는 세째 동생은 2남을 두었다. 큰 동생의 장남만 오늘 오지 못하고 조카 5명이 함께 왔었다. 이들도 아직 우리말을 할 줄 모른다. 6촌 동생들도 우리말을 하지 못하고, 또 일본사람과 결혼을 했기에 이제 뿌리만 한국인인뿐 서서히 일본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고 본다.
식사를 마치고 가족이 단체사진을 한장 찍었다. 오늘 이렇게 만나고 나면 다시 함께 만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교토에는 가끔 방문했지만 혼자의 단독여행이 아니어서 그간 연락을 취하지도 못햇는데 이제는 갈 때마다 연락을 취해서 자주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당숙부님도 마찬가지고 고모님들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드셨다. 20년만에 만나본 분도 있었으니....
다음날 아침 당숙께 말해서 작은할아버지 묘소에 한번 찾아가서 성묘를 하기로 했다. 숙부님도 여자형제는 많지만 외아들이자 장남이어서 한국에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제사도 지내면서 전통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시는 분이다. 내가 작은할아버지 산소에 가겠다고 하니 굉장히 좋아하신다. 덕분에 아버지 산소에 한번 더 가게 되었다고 하신다. 일본의 장례 문화는 산소를 우리처럼 따로 산에 모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 가까이 있는 절의 부속된 납골당에 모시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화장에 대한 혐오감이 없고 행정적으로 매장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화장을 한다고 한다.
작은 할아버지 납골묘는 집에서 20여분 떨어진 교토(京都)시와 우지시(宇治市)와 경계에 있는 나즈마한 산에 있는 부코쿠지(仏国寺)에 있다. 우리나라 경주에 있는 불국사와 같은 이름의 절이였다. 이 절에 있는 납골묘은 거의 대부분이 재일교포 1세를 모셔 놓았는데 그 때문에 절이름도 친숙한 불국사가 아닌가 싶다. 사찰이 일반 가옥들과는 조금 떨어져 있고 우지시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작은 할아버지 묘소 옆에 있는 다른 묘소의 비문을 살펴보니 거의 재일한국인들이 묘소다. 교토에 있는 재일동포들 가운데 여유가 있었던 분들이 이렇게 모여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에 있는 무덤에서 보는 비문과 비슷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작은 할아버지도 모국으로 돌아 오고 싶어 했지만 이미 아들과 딸을 비롯해서 자손들이 일본에서 살고 있어 본인의 생각을 끝까지 주장하지 못하셨다. 앞으로도 내 다음 세대에도 교류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져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9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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