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 약속이 있어서 갔다가 일을 마치고 멀리 파주까지 왔는데 그냥 집으로 돌아오기가 아쉬워 그간 가보지 않았던 화석정(花石亭)을 방문했다. 차량에 네비게이션이 있으니 처음 방문하는 지방의 명소도 찾아가는 것이 한결 편해졌다. 화석정과 관련된 율곡 이이에 대한 일화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번은 오고 싶었던 장소다. 틈틈이 화석정 기둥에 기름을 발라두게 하였던 율곡 이이가 죽은 뒤 8년 있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피난길에 오른 선조가 어두운 임진강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때 화석정에 불을 질러 그 불빛의 도움으로 임진강을 건넜다는 일화가 생각났다. 임진강변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궁금했다. 화석정으로 들어오는 길이 좁았는데 하필 내가 도착할 때에 주변에 군훈련장이 있는지 군인차량이 많이 와 있어서 차가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기다렸다. 쉬는 날 군인들은 쉬지도 않고 훈련을 하는 모양이다.
임진강을 바로 보는 곳에 정자 하나만 덜렁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추운 겨울임에도 사람들이 우리처럼 간간이 찾아 오는 모양이다. 우리 두사람 사진을 찍어줄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와서 집사람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정자 입구에는 화석정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었다. 임진강가에 세워져 있는 정자로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이이가 제자들과 함께 시를 짓고 학문을 논했다고 한다. 원래 고려 말의 문신인 야은 길재의 유지가 있던 곳에 세종 25년 율곡의 5대조인 이명신이 정자를 건립하였는데, 성종 9년 이이의 증조부 이의석이 중수하고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이름을 지었다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져 80여 년 간 터만 남아 있다가 현종 14년에 후손들이 복원하였으나 6.25전쟁 때 다시 손실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정자는 1966년 파주의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다시 복원한 것으로 건축양식은 팔작지붕 겹처마에 조선시대 양식을 따라지었다고 되어 있다.
임진강과 정자 사이에 도로가 생겨서 조금 보기에 좋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정자 뒷쪽으로 도로가 생겼다면 좀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정자 주변으로 수령이 있어 보이는 보호수가 여러그루 있었는데 잎이 무성할 때 왔다면 한결 보기가 좋았을 것 같다. 겨울에 오니 정자 하나만 덜렁 있는 것 같아 쓸쓸해 보였고, 생각했던 것보다는 볼 것이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찬 바람이 멈추질 않아서 설명문 읽고, 주변 경관만 살피고 화석정을 떠났다. 따뜻한 시절에 왔으면 정자에서 시원한 바람이라도 느꼈을텐데...
화석정에서 나와 집으로 오는 길에 화석정에서 그다지 멀지 않는 임진각 국민관광지를 방문했다. 화석정에서 임진각까지는 대략 5-6km 떨어져 있었다. 집으로 가려면 어짜피 자유로를 이용해야 하는데, 임진각은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임진각이 있는 국민관광지도 와 본지가 10년이 훨씬 넘은 듯한데 주변이 과거에 비해서 많이 바뀌었다. 이곳에는 임진각 본관과 평화누리공원, 평화의 종, 망배단, 망향의 노래비, 임진강지구 전적비 등이 있으며 6·25전쟁의 비극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임진각으로 가는 길목에 전차를 비롯한 군장비와 증기열차도 전시 되어 있었다.
망배단 바로 맞은 편에 지하1층 지상3층의 임진각이 있다. 남북공동성명 발표 직후 실향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건물로 각종 편의시설이 있으며 옥상에는 하늘마루라고 불리는 전망대가 있어 민간인 통제구역을 조망할 수 있다. 전망대에 오르니 여러대의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고, 무료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망배단 뒤쪽으로 자유의 다리가 보이고, 그 뒤로 임진강이 흐르고 있다. 왼쪽에 임진강 철교가 놓여 있고, 오른쪽으로 끊겨진 경의선과 구 경의선 교각들이 보인다. 모두 역사의 현장들이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10여년 전에 왔을 때에 비해서 새로운 건물도 많이 들어섰고, 일반인이 출입하지 못하게 되어 있던 공간들도 많이 개방 되어 있는 듯하다. 집사람이 오늘 사람을 만나는데 따라 나선다고 생각하고, 밖으로 돌아 다니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신발도 그렇고 옷도 따뜻하게 입지 않았다면서 빨리 사진만 몇 장 찍고 돌아 갔으면 한다. 하지만 내 특유의 집요함으로 인해 오늘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사진은 남아 오늘을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망배단으로 향했다. 망배단은 휴전선 북쪽에 고향을 가진 실향민들이 매년 설날과 추석 그리고 가족이 보고 싶을 때 북쪽에 두고 온 가족 친지들을 그리며 실향만의 아픔을 달래는 곳이다. 오늘은 날씨도 춥고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이 아니어서 망배단이 썰렁하다. 가족이나 친척들 중에서 이산가족이 없어, 이산가족이 느끼는 감정을 100% 알수는 없지만, 혈육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가혹한 형벌이라고 생각하다.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까마득하다.
망배단을 지나 자유의 다리 쪽으로 가 보았다. 자유의 다리는 본래 경의선 철교였는데 6·25 때 파괴되었던 것을 휴전이 성립되고 남북간의 포로가 교환되자 그들을 위해 급하게 만든 가교라고 한다. 자유를 찾아 이 다리를 건너 귀환한 포로를 기념하기 위하여 자유의 다리라고 했다고 한다. 옛날에 왔을 때에는 이곳에 갈 수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지금은 자유의 다리 중간까지 직접 가보는 체험도 할 수 있었다. 다리 중간부분에 길을 막아 놓았는데 태극기와 한반도 국기를 비롯해서 각종 소망이 적힌 띠지와 너무 어지럽게 달려 있었다.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장소인데, 조금 정비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자유의 다리 앞쪽에는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가 전시되어 있다. 한국전쟁 때 경의선 장단역에서 폭탄을 맞아 탈선하고, 반세기 넘게 비무장지대에 방치되어 있었던 남북분단의 상징물이다. 지난 2004년 아픈 역사의 증거로 보존하기 위해 문화재로 등록하고, 2009년부터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이 기관차에 있는 1,020여개의 총탄자국과 휘어진 바퀴는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알려준다. 열차를 배경을 사진을 찍지만 가슴이 짠하다.
임진각에 10년만에 다시 찾아왔지만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음에 이곳을 방문하게 될 때는 좀 더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통일의 염원이 공염불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순진한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통일이 우리가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모처럼 찾은 임진각에서 다시 한번 통일을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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