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집사람과 함께 간월암과 남당항, 해미읍성을 방문했다. 아침에 카메라 뱃더리를 체크하지 않고 출발했는데 서해안고속도로 행담도휴게소에 와서야 카메라가 작동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뱃더리를 충전할 방법이 없어서 그냥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그동안 한번도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PC에 다운받은 적이 없어 어떤 크기인지 알지 못했다. 집에 와서 사진을 다운받아 보니 용량이 아주 적게 세팅되어 있어 사진이 자그마하다. 스마튼폰 화면으로 보기에는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PC로 보려하니 큰 차이가 난다. 여행을 갔다 와서 다시 스마트폰 사진 찍는 설정을 바꿔서 앞으로는 제대로 된 사이즈의 사진을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문명의 이기도 제대로 알고 써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간월암은 서산 부석면 간월도리에 위치한 작은 암자다. 조선 초 무학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간조시에는 육지와 연결되고 만조시에는 길이 잠겨 섬만 남게된다. 우리가 도착했을때는 만조기간이라서 길이 잠겨 있어서 암자에 갈 수가 없었다. 간월암는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던 중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간월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후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으로 폐사되었다가 1941년 다시 개축되었다. 간월암을 둘러 싼 주위의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고즈넉한 암자와 서해의 풍광이 잘 어울러져 있다고 생각되었다. 암자에 가지 못하니 그냥 암자를 배경을 사진 한장을 남기고 출발한다.
물길에 막힌 간월암에 가지 못하고 차를 돌려 서산A지구 방조제를 넘어 남당항으로 이동했다. 남당항은 충남 홍성에 위치한 작은 항구로서 새조개와 대하로 유명한 곳이다. 매년 가을이면 대하 축제가 열리고 겨울에는 물이 오른 새조개를 맛볼 수 있다. 또 남당항은 낚시터로도 유명한데 항구 바깥쪽에 펼쳐진 기다란 방파제를 따라 많은 이들이 낚시를 즐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축제 시즌에 맞춰 방문하면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안타깝게 3월에는 이곳이 축제기간이 아니다.
남당항을 중심으로 넓게 방파제를 쌓아서 바깥 방파제쪽에 서부해양경비안제센터가 있다. 이쪽에는 수심이 깊어서 항상 배를 접안할 수 있는 모양이다. 이곳에서 방파제 너머로 천수만 바다가 보이고, 멀리 보령화력발전소 굴뚝도 보인다. 방파제에 접안한 배에서 서해안 최초로 민물어종인 무지개 송어를 바다양식에 성공했다고 하면서 배에서 송어를 내리고 있었다. 모 TV방송국의 먹방 프로그램에서 나와서 인터뷰를 해 달라고 해서 PD가 원하는 멘트를 해 주었다. 내가 인터뷰한 내용이 나왔는지는 확인해 보지 못했다. 바다에서 송어를 키운다는 사실을 이곳에 와서 알게 되었다.
방파제 안쪽을 매립해서 해산물을 파는 상가를 조성해 놓고 있는 것이 요즘 서해안에 있는 포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남당항도 새로운 건물을 신축해서 해산물 파는 상가와 횟집이 입주해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 호객행위를 하지 않아서 느낌이 좋다. 제살 깍아먹기식의 호객행위는 모두에게 피해다. 가을 대하철도 아니고 겨울 새조개철도 아니어서 영업을 하는 않는 곳이 많은 듯하다. 조금은 허전한 느낌. 주차장이 많이 비어 있었다.
새조개는 새의 부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쫄깃 담백한 감칠맛뿐만 아니라 단백질과 철분,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해 맛에서도 영양 면에서도 으뜸이라 겨울철에 찾는 최고의 수산물이라고 한다. 이곳의 특산물이어서 상가 앞쪽에 새조개 모양을 한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다. 아직까지 새조개를 판매하는 곳이 있었는데 철이 지나서인지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비싼 가격에 새조개를 사지는 못했다. 다음에 제철에 찾아와서 먹어야 할 것 같다.
남당항을 돌아보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산시를 거쳐 해미읍성을 방문했다. 작년에도 집사람과 함께 방문했었는데 다시 아들과 함께 1년만에 방문하게 되었다. 아들에게도 인문학적 관심과 지식, 여행의 즐거움을 알려 주기 위한 것인데 아직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해미읍성은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석성으로 충청도 지역의 군사 방어를 담당했던 병영성(兵營成)이다. 고창, 낙안을 포함한 조선시대 대표 읍성 중 하나로 서해안 방어와 왜구 침략을 막기 위해 조선 태종 때 성을 쌓기 시작하여 세종 3년(1421년)에 완성된 읍성이다. 병마절도사가 효종3년(1652년) 청주로 옮겨가기전까지 230년간 충청도 군사의 중심지로 국방은 물론 내란 방지 등의 업무를 맡았었다. 남문인 진남문과 동문, 서문이 있고, 성내에 동헌, 어사, 교련청, 작청, 사령청 등의 건물이 있다. 진남루는 원형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데 올라가보면 해미 시내가 한눈에 들어 온다고 한다. 해미읍성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다.
해미읍성의 정문인 진남문을 들어서 성안에 있는옥사를 방문했다. 1935년에 간행된 해미순교자약사를 토대로 복원한 옥사인데, 100여년간 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규정해서 이곳에 투옥했다고 한다. 옥사에 수감되었던 천주교 신자들은 옥사 뒷쪽에 있는 커다란 회화나무에 매달아 고문도 하고 처형하기도 했다는데 우리나라 천주교의 역사로 봤을 땐 아픔과 비극이 서려있는 옥사이다. 그래서 해미읍성은 천주교 신자들의 순례지이기도 하다. 지금은 옥사에 형틀과 곤장을 가져다 놓아 사람들이 장난도 치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아들과 함께 설정 사진을 찍었다.
해미읍성은 초가집과 관아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찬 순천 낙안읍성과는 달리 읍성 안쪽에는 텅비어 있는 느낌이다. 성의 복원을 위해서 성안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모두 이주시킨 것 같은데, 이주를 시켰더라도 안쪽에 과거 읍성의 느낌이 날 수 있도록 적당한 건물을 복원해 놓았으면 좋았을텐데 너무 빈 공간이 많았다. 박물관이나 여러 시설이 없는 상태에서 비어 있는 공간이 너무 인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방문한 사람이나 현지 주민이 공원처럼 이용하려고 여유 있게 만들어 놓으려고 했다면 어쩔 수 없지만...
동헌과 내아 그리고 객사도 복원해 놓았다. 동헌은 병마절도사를 비롯한 현감의 집무실로서 관할 지역의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이 행해지던 건물이다. 내아는 관리와 가족들이 생활하던 관사 건물이고, 객사는 조정의 관리들이 묵어가던 일종의 귀빈 숙소이자 관아의 관원들이 국왕에 대한 예를 올리는 장소였다. 복원을 잘 해 놓았는데 이 역시 다른 건물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휑한 곳에 있어 조화롭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더구나 저녁 시간이 되어서 구경하는 사람도 없으니 그런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봄이지만 아직 이른 봄이어서 날이 쌀쌀하고 주변은 황량하다. 이곳도 초록이 우거지는 계절에 와서 조금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성안에 건물이 별로 없고 훵한 공간에 숲조차 없으니 더 쓸쓸한 느낌이다. 오늘 아침부터 부지런히 많이 걸어 다녔더니 가족들이 힘들어한다. 힘든만큼 많이 볼 수 있는 법인데...
오늘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성안을 두루 구경하고 나서 다시 성곽을 따라서 성을 한바퀴 일주했다. 걷지 싫어하는 아들과 집사람이 내게 붙잡혀 꼼짝 못하고 함께 했다. 동문에서 북문으로 가는 길이 가장 경사도 심하고 작은 언덕 같은 곳을 올라야 했다. 북문이 있는 뒷동산에는 소나무 숲이 있는데 많은 소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다. 성 북쪽 정상부는 구릉지대로 높아서인지 해미 시내도 잘 내려다 보였다. 서문 앞쪽에는 국궁장이 있어 활쏘기 체험을 할 수 있었는데 오늘도 체험은 하지 않고 지나쳤다. 해미읍성은 우리나라에서 있는 읍성 중에서 가장 원형이 잘 남아있는 읍성이라고 하는데, 조금은 썰렁하고 황량하고 적막하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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