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가끔 일 때문에 내려와도 한번 가보기 어려웠던 태종대를 다시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집사람과 함께 20여년 전 회사에서 금강산 유람선 관광을 보내주어서 부산에 왔다가 함께 방문한 적이 있는 태종대다. 아침내내 내리던 비가 다행이 태종대에 도착하니 많이 줄어들어서 돌아다니기에 불편함은 없었다. 태종대 순환 산책로를 따라서 왼쪽 길로 10여분 갔더니 태종사가 나왔다. 태종대에 오면 항상 바다를 보는 것에 중점을 두어서 절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얼마전까지 수국꽃 축제가 열렸다는 프랜카드가 있어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가 보았다. 지난 일요일까지 행사를 했으니 아직 꽃이 남아 있으리라 생각했다.
절 입구에서부터 절 주변에 각종 수국을 많이 심어 놓았는데 축제가 끝났어도 수국이 모두 진 것이 아니어서 제법 볼만했다. 다만 비가 내려 꽃대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축 쳐져 있기는 했지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태종사에서 수국축제가 열린다는 것도 모르고 태종대를 방문했는데 때를 잘 맞춰서 좋은 구경을 하게 되었다. 축제 기간에는 음악회, 전통놀이마당, 퓨전 타악공연 등 여러가지 문화행사도 열렸다는데 그냥 꽃 구경만으로도 충분하다. 축제기간이 끝나서 사람이 붐비지 않으니 구경하기에 더 좋은 듯하다. 수국에 둘러쌓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도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태종사가 우리나라 최대의 수국 군락지라고 한다. 경내는 40여 년간 가꿔온 다양한 국가의 10여 종류 3천여 그루의 수국이 활짝 피어 있었다.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장 찍고 절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태종사는 대웅전의 규모나 여러가지로 보아서 그렇게 큰 규모의 사찰은 아닌 듯하다. 수국때문에 유명해진 것이 아닐까싶다. 집사람과 함께 대웅전에 들어가서 제대가 얼마남지 않은 큰아들 무탈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원했다.
태종사 수국은 보라색, 붉은색, 분홍색, 흰색 등 다양했다. 수국의 색깔은 토양의 산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흙이 산성이면 푸른색 꽃을 염기성이면 붉은색 꽃을 피어서 수국을 살아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또 개화한 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칠면조처럼 색상이 변한다고 해서 칠면화(七面花)라고 불리기도 한다. 꽃이 풍성하게 피고 오랫동안 볼 수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꽃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생각지 않고 왔다가 우리나라 최대 수국 군락지를 보게 되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태종사에서 나와 순환로를 따라서 등대가 있는 해안으로 이동했다. 등대가 있는 곳은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야 해서 요즘 허리가 조금 아프다고 하는 집사람때문에 내려가봐야 할지 고민을 했는데 본인이 더 내려가겠다고 한다. 태종대의 영도등대 가는 길에는 다양한 조형물이 설치 되어 있었다. 해기사 명예의 전당 조형물, 무한의 빛 조형물, 바다의 헌장이 적혀 있는 조형물들을 감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 삼아 걸어내려 갔다. 오락 가락하는 비때문에 계단이 미끄러운 것만 조심하면 된다.
바다로 내려다 보이는 영도등대의 모습이다. 낮은 구름으로 인해서 수평선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영도등대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특히 아름답다. 영도등대는 1906년 12월 설치되어 100여년간 부산 바닷길을 알리는 역할을 해오다가 시설노후로 인해 2004년에 새로운 등대 시설물로 교체되어 이제는 이 지역 해양관광 명소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원형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높이가 35m라고 한다. 등대에는 당연히 엘리베이터가 없어 계단을 걸어서 올라갈 수 있다. 등대보다 더 높은 곳에서 바다를 볼 수 있기에 등대에 올라가는 것은 생략했다.
비까지 오락가락 해서 등대까지만 가 볼까 생각했었는데 집사람이 등대 아래로 보이는 망부석과 신선대가 있는 절벽까지 가보자고 해서 내려 가 보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태종대에 와서 신선대에 와 본적이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역시 기록해 놓지 않으면 기억은 사라져버리게 마련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아래는 깍아지 듯한 절벽인데, 바위는 수억년 형성된 화석 같이 층층이 여러 색갈을 띠우며 장관을 이루고 있다. 내려와 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이곳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장소라고 생각되는데 오늘은 날씨가 좋지 않고 평일 오전이어서인지 사람이 많지 않아서 부부가 함께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았다. 주변을 구경하고 있으니 다른 일행이 내려와서 기암절벽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을 부탁했다. 시원스럽게 펼쳐진 바다와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신선대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조금 보냈다. 신선대는 신선들이 와서 놀았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고, 망부석은 왜구에 끌려간 남편을 기다리던 여인이 망부석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공룡발자국도 있다고 하는데 그 느낌은 덜하다.
신선대에 있을 때에는 비도 거의 내리지 않고 바람만 불어서 멋진 풍광을 즐기고 돌아왔다. 등대로 올라오는 길에 집사람이 허리가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중간에 등대에 있는 휴게실에 들어가서 조금 쉬었고, 나는 바람이 많이 부는 곳으로 가서 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식혀 주었다. 오늘이 비가 내려 걸어서 구경하기에 편했지 그냥 다른 때처럼 햇빛이 비추는 날씨였다면 돌아다니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나마 비가 내려서 사진을 찍을 때는 불편하기는 했지만 덥지 않아 좋았다.
영도 등대에서 나와 태종대 순환관광로의 중간지점인 전망대까지는 5분 정도 걸으면 된다. 카페와 레스토랑, 편의점 등의 편의시설이 있어 잠시 쉬어갈 수 있다. 전망대가 건립된 자리는 본래 자살바위로 생활고나 실연 등의 괴로움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낭떠러지 아래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던 곳이라고 한다. 전망대 2층에서 바라본 바다는 신선대에서 볼 것처럼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탁 트인 태종대 앞바다가 펼쳐지는데 그야말로 장관이다. 전망대에서 커피를 한잔 할까 하다가 커피 대신에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고 다시 이동했다.
태종대를 몇번 오기는 했지만 하도 오랫만에 와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옛날에 곤포의 집이라고 있었는데 이제는 철거를 해 버렸는지 보이지 않았고, 만들어진 시설물들은 대부분 처음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전망대를 나와서 서쪽 방향으로 산책길을 따라서 이동했다. 바다를 따라서 한참을 가니 남항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나왔다. 이곳 앞 바다에는 부산 남항쪽으로 향하는 화물선으로 보이는 배들이 많이 보였다. 부산 앞바다에 이렇게 입국을 기다리고 있는 배를 본적이 없었는데 남항이 생기면서 보여주는 풍경인 듯하다. 밋밋한 바다보다는 대형 화물선이 정박해 있는 바다의 모습이 더 정겨워 보인다.
태종대를 나올 무렵이 되어서야 날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날이 맑았으면 오히려 더울뻔 했는데 태종대 산책을 마치고 날이 맑아지면서 더워진다. 맑은 공기와 우거진 수목으로 인해 태종대 산책이 더 줄거웠던 것 같다. 오전 시간을 활용해서 잘 돌아본 듯하다. 산책로가 맑은 공기가 있고, 적당한 언덕과 높낮이가 있어서 달리기를 하는 나로서는 이곳에 최적의 달리기 훈련장소로 보였다. 실제로 부산 영도에 사는 사람들이 일요일 새벽에는 이곳에서 달리기 연습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태종대 입구로 되돌아 오니 비때문에 운행을 하지 않고 있는 다누비열차가 보인다. 열차가 운행되었다고 해도 열차를 타지 않고 산책로를 걸어서 돌아 보았을 것이다. 그래도 몸이 불편하거나 아이들이 있는 일행에게는 다누비 열차가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늘 모처럼 시간을 내서 태종대를 한번 둘러 보았는데 또 언제 태종대를 다시 찾아올지 모르겠다. 부산으로 이사 와서 살게 된다면 그때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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