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과 생활 /등산

남한산성 산행 (2016.8.14)

남녘하늘 2018. 3. 14. 00:28


 다음주 ITC 산악회에서 남한산성 산행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어서 미리 산행 시간도 체크하고 식사장소도 체크해 볼 생각에 집사람과 함께 남한산성에 올랐다. 집에서 출발한 시간이 산행을 하고 식당에 가기에는 어중간해서 먼저 식당을 찾아 보기로 했다. 어짜피 오늘은 산행하는 날처럼 순서를 지켜서 가야 하는 것이 아니기에 시간만 체크해 보면 되기 때문이다. 차를 가지고 남한산성 안쪽으로 들어와서 산성 안쪽에 있는 식당을 찾아 다녔다. 동문들과 함께 가서 식사라려면 적당한 공간도 확보해야 하고, 음식 맛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음식 맛은 알지 못하지만 깨끗하고 괜찮아 보이는 집을 정하고 음식맛을 보러 식당부터 찾아 들어갔다. 식당을 정하고 들어가서 5분도 되지 않아서 소나기가 억청나게 내린다. 식당부터 오지 않고 산행부터 했으면 산을 오르면서 비를 쫄딱 맞을 뻔 했다.   






 두부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었는데 회원들이 함께 오기에  규모도 적당했고, 음식을 주문해서 먹어보니 맛도 평균 이상은 되는 듯했다. 예약을 미리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니 예약을 받아 주겠다고 한다. 장사가 아주 잘 되는 집은 예약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낮에 손님도 적당히 있는 것으로 보아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교적 괜찮게 평가받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소나기였지만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도 비가 그치지 않아서 식당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조금 더 기다리니 비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비를 흠뻑 맞은 산행객들이 들어오곤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아도 오늘 순서를 바꾸어 식당부터 와서 잘 했다고 생각된다. 비가 조금씩 내렸지만 더는 내리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어서 식당에 차를 세워 놓고 버스를 타고 산성유원지 입구로 내려 가기로 했다. 차를 가지고 내려 가면 산에 올라 왔다가 다시 입구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없이 식당에 세워 놓고 올라 와서 가져가면 될 듯하다.   




 버스를 타고 산성유원지 입구로 내려왔다. 소낙비가 한시간 정도 심하게 내려서 더위는 한풀 껶였지만 습도가 엄청 높아져서 산행하기에 적당한 날씨가 아니다. 하늘도 맑지 못하고 구름이 끼어 있는 듯하다. 산성유원지 입구 주차장은 당분간 공사를 한다고 차를 세워 놓을 수도 없게 되어 있었다. 미리 와보지 않았으면 주차장에 차를 세우라고 말했을 터인데 미리 와본 덕분에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게 되었다. 강한 소나기가 내려서인지 입구에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평소 이 시간이면 사람들로 가득차 있어야 하는 곳인데.,,   






 남한산성으로 방향을 정해 오르면 남한산성 유원지 발 지압장을 지나 우측으로 약사사 방향, 좌측으로는 남한산성 돌탑공원이 있다. 남문방향으로 방향을 정하고 넓은 도로를 따라서 오른다. 남한산성 유원지에서 오르는 초입은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여서 그다지 힘들지 않고, 우거진 나무들로 가득한 숲 속 그늘 길을 걸을 수 있다. 





 소나기가 내린 뒤 습도가 많이 올라가서 카메라 렌즈에 습기가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사진을 찍을 때에는 몰랐는데 집에 와서 사진을 확대해서 보니 사진이 한결같이 뿌엿게 보인다. 높은 습도가 산에 오르는 사람만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카메라도 힘들었던 모양이다. 특히 하늘이 배경이 들어가면 사진상태가 훨씬 더 이상해져 버렸다. 남문으로 올라가는 중간에 백련사라는 작은 사찰을 지나가게 된다. 사찰 옆에는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테이블도 마련되어 있다.   







 백련사를 지나고 나서는 좋은 길은 끝나고 길의 경사도 백련사까지 오를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가파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문까지의 거리가 짧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생각보다 힘든 산행이 이어진다. 하지만 걷는 내내 숲이 좋아서 공기도 맑고 상쾌했다. 다만 점심 무렵 내린 소나기 때문에 습도가 놓아 땀을 엄청 많이 흘렸다. 




 땀을 제법 흘리며 산을 올라 남한산성 남문이 지화문(至和門)에 도착했다. 남한산성 남문인 지화문(至和門)은 수어장대와 함께 남한산성을 대표하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남한산성에도 동.서.남.북 방향으로 4개의 성문을 두고 있는데, 그 중 성남에서 올라오는 출입문인 남문에 제일 큰 규모로 실제 남한산성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문을 통해서 남한산성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남문 앞쪽은 공간도 넓고 잘 꾸며 놓아서 휴식을 취하고 사진을 한장 찍기에도 좋은 장소다. 흘린 땀도 식히면서 잠시 여유를 가져 보았다.  







 남문까지 올라 와서 예정대로 산성을 따라서 사전 답사를 할 것인지 고민을 하다가 날씨도 덥고 산성은 워낙 많이 다녀 보았기에 오늘은 산성을 걷는 대신에 복원된 뒤에 방문해 보지 않는 산성 행궁을 가 보기로 했다. 행궁은 임금이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 머물던 별궁으로 이궁(離宮)이라고도 한다. 주로 능행이나 휴양시 임시거처, 전란시 피난처 용도로 사용되었다. 지금까지 복원된 곳은 북한산성 양주행궁, 남한산성 광주행궁, 수원 화성행궁 정도라고 한다. 행궁과 부속 건물들은 복원된 것이기는 하지만, 예상외로 아주 잘 정비되어 있었고, 시야에 현대식 건물이 보이지 않아, 굉장히 멋스러웠다. 행궁 입구에 초가집은 관광 안내소와 행궁 매표소다. 





 행궁에 가면 제일 먼저 한남루가 보인다. '한남루'는 정조때 행궁 입구에 세운 2층 누문으로 기존의 외삼문과 중문만이 남아 있던 것에 추가하여 왕궁의 삼문삼조(三門三朝)의 법도를 완성한 문이라고 한다. 남한산성 행궁은 인조때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만들기 시작하여 인조 4년(1626년)에 완성되었다. 행궁은 서울의 궁전보다는 규모가 많이 축소되어 있지만, 우리나라 행궁 중 종묘와 사직을 두고 있는 유일한 행궁으로 유사시 임시수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곳이다. 




 한남루를 지나면 우측에 연못이 있고 그 뒤로 석축이, 좌측으로 굽은 계단길 위에 외삼문이 있다. 행궁은 자연 그대로의 능선을 따라 지어졌기에 한남루는 행궁 배치에서 약간 비스듬히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외삼문과 외행전, 내행전은 나란하게 배치 되어 있다. 외행전은 하궐의 중심건물로 28칸 전각으로 되어있고, 좌승당이 지어지기 전에는 광주 유수의 집무실로 사용되었단 기록도 있다고 한다. 외행전에도 외삼문처럼 현판은 걸려 있지 않았다.  외행전에 도착하니 마침 문화해설사의 행궁에 대한 설명이 진행되고 있어서 해설사를 따라 가면서 설명을 듣다보니 행궁 관람이 한결 재미있다. 





 산성 행궁은 1636년 12월 청나라군이 침략하자 인조가 이곳에 피신하여 머물던 곳이다. 청군은 국경을 넘은지 보름 만에 선봉대가 남한산성까지 이르러 인조를 압박하였다. 이때 남한산성 안에는 관리들과 군사들이 1만 4천여 명으로 50여 일분의 군량밖에 없었다. 해를 넘겨 정월 1일엔 청군 12만 명이 산성 아래 탄천에 진을 치고 산성을 포위하였다. 산성에 고립된 조선군은 제대로 싸움도 해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1월 22일에는 세자빈궁과 대신들을 피난보냈던 강화도가 함락되었다. 결국 1월 30일 인조는 47일만에 성을 나와 송파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고 항복함으로써 두 달간의 전쟁은 끝이 나고, 왕은 정궁으로 되돌아 갔다. 아픔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남한산성과 산성 행궁이다. 임진왜란으로 조선 팔도 백성들이 왜적들에게 침탈당하고 임금은 의주로 몽진하여 제 목숨만 연명한 것이 불과 44년 전 일이었는데, 다시 그런 치욕의 병자호란을 겪은 것이다. 역사의 교훈을 얻지 못하면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 다시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남행각 끝에 있는 쪽문으로 나가니 후원으로 자그마한 동산이 있는데 아이들이 활쏘기 체험을 하고 있었다.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을 채용해서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듯 한데 조금 엉성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딱 아이들 수준에 맞춘 행사처럼 보인다. 활쏘기 체험장 근처에 이위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순조때 광주유수가 활쏘기 위해 세운 정자라고 한다. 





 활쏘기 체험장에서 내려 오면 내행전이 있다. 내행전은 임금이 거처하던 공간으로 인조때 지어진 3칸 대청이 있는 28칸의 건축물이다. 좌우의 각 2칸은 온돌방과 마루방이라고 한다. 내행전 대청에는 십장생도 병풍 등 당시의 소품들을 재현해 놓았다. 행궁 자체가 상당히 경사진 곳에 지어져 있어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풍광은 좋지만, 실제 평지도 많이 있는데 왜 이런 경사지에 행궁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결국은 풍수지리에 따라서 좋은 위치를 찾다보니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산행을 하면서 시간을 내어 짧은 시간에 대충 돌아보았는데 그래도 잘 복원해 놓았다는 생각이다. 산행 답사를 와서 행궁 구경까지 하고 의미 있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