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동문 산악회에서 홍천의 공작산을 다녀 왔다. 작년 괴산 산막이 옛길에 갔을 때보다는 조금 적은 인원이 참석했지만 올해도 107명이나 참석해서 성황을 이루었다. 홍천으로 출발하기 위해서 올해도 잠실종합운동장역 근처에서 모였다. 요즘 잠실종합운동장역 근처는 등산 모임을 출발하는 관광버스로 복새통을 이룬다. 우리도 그 복잡함에 한표를 더한다. 학교 통학버스를 3대 임차해 주어서 편안하게 산행을 다녀 올 수 있었다. 회원들이 약속된 시간보다 일찍 나와서 출발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새로 선임된 총동문회장이 산행은 함께 하지 못하지만 출발장소에 나와서 첫 인사도 나누고 배웅을 해 주었다. 잘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늘 갑의 위치에만 있었던 고위 공무원 출신이라 걱정이 많이 된다. 오늘은 동문회장 인사를 받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산행을 즐겁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번 만나도 반갑고 즐거운 얼굴들이 오늘도 많이 보인다.
홍천으로 가는 중간에 잠시 휴게소도 들린다. 그리 이른 아침에 만난 것도 아닌데 집행부에서 커다란 백설기와 물 한병씩 나누어 준다. 이미 집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나온터라 배낭속에 넣어 둔다. 오늘도 하루 종일 엄청 먹방 여행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오랫만에 한 버스에 타고 이동하는 산행이다 보니 그냥 조용히 가지 못하고 인사말과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돌아가면서 한다. 그냥 조용히 모자란 잠을 자면서 가고 싶은데 내 생각처럼 안된다.
공작산 입구 수타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생태숲 교육관을 지나 자동차 길과 걸어서 가는 길로 나뉘어져 있다. 개울을 건너서 차가 다니지 않는 숲길로 들어서니 수타사 주변을 휘감아 돌면서 흐르는 덕지천의 물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고즈넉한 분위기다. 예상했던 것보다 찾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더 좋았던 것 같다. 갓 돋아난 연초록의 나무잎과 여러종류의 꽃이 가득한 주변의 모습은 한폭의 수채화다. 덕지천을 따라서 오르는 길은 오르내리막이 없어서 편안한 느낌이다.
수타사가 바로 보이는 소나무 숲에 모여서 잠시 산행 하기전 행사를 가졌다. 오늘 산행에서 외대동문산악회 회장의 이취임식 행사가 있었다. 이번 5월에 임기 만료되는 이영우회장의 후임으로 한개정 선배님이 외대동문산악회 2대회장으로 공식 추대되었다. 앞으로 새로운 집행부가 선출되어 재미 있는 산행을 이어가길 기원해 본다. 소나무 숲속의 상쾌한 느낌이 너무나 좋다.
오늘 공작산은 산행은 하지 않고 덕지천을 따라서 트레킹을 하는 것으도 되어 있다고 한다. 멀리 홍천까지 와서 산행을 하지 않고 트레킹만 하고 가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산행팀과 트레킹팀을 나누어서 운영했으면 좋았을 터인데 편안한 코스로 트레킹만 하려는 사람이 많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트레킹을 하면서도 부상 방지를 위해서 스트레칭을 했다.
식전 행사를 마치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올 봄 가뭄이 심하다고 하는데 수타사 계곡에는 가뭄에도 불구하고 물이 제법 많다. 신록의 초록색과 함께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산과 계곡을 찾아도 이맘 때의 풍광이 가장 눈에 많이 남는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수타사 계곡인데 오늘따라 다른 산행객이 보이지 않아서 계곡 전체를 전세 놓은듯 한적하고 조용하다. 계곡을 조금 들어서서 가끔 다른 일행이 보이긴 했지만 오늘 날을 잘 잡은 듯하다.
숲길을 조금 걸어 오르니 공작산의 한 봉우리인 약수봉으로 가는 곳과 귕소로 가는 삼거리가 나왔다. 생각 같아서는 잠시 벗어나서 약수봉이라도 한번 갔다 오고 싶지만 동문 사진을 찍어 주겠다는 생각에 내 욕심을 접었다. 발빠른 몇 동문은 산에 갔다 오겠다고 잠시 벗어나고 나는 그냥 좋은 사람들과 트레킹으로 만족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조금 오르니 길이 잠시 개울가를 지나치게 되는데, 물이 워낙 맑아서 물에 들어가서 물놀이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직은 물놀이를 한만큼 따뜻한 날이 아니어서 참는다. 더운 여름철에 오면 꽤 피서하면서 물놀이 하기에도 좋은 곳으로 보였다.
중간에 귕소도 있고 귕소출렁다리도 있었다. 귕소라는 말 자체를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는데 귕소란 아름드리 통나무를 파서 만든 소 여물통을 가르키는 말이라고 안내판에 써 놓았다. 덕지천계곡의 협곡 중에 한 곳이 마치 그 소여물통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귕소라고 부르고 근처에 있는 출렁다리는 귕소 출렁다리라고 부른다. 새로운 단어을 하나 배워간다.
덕지천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숲길이 있었는데 어느 정도 올라가니 한쪽의 숲길이 끝나게 되어 덕지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반대편에 숲길을 따라 상류쪽으로 올라 갔다. 한참을 오르니 사람들이 거주하는 마을이 보였다. 음식점을 겸하면서 농사도 짖고 있는 곳이였다. 중간에 이 길이 수타사 산소길이라고 적힌 팻말을 보았는데 트레킹의 끝 지점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나온 음식점이 있는 마을까지만 걷다가 되돌아 오기로 했다. 숲속길을 걷는 것이 중요하지 얼마만큼 많이 걸었는지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집 앞에 막 모내기를 끝낸 논이 있었는데, 이 좁은 계곡에 짜투리 논이 있는 것도 대단해 보인다. 직접 농사를 한번도 지어 보지는 못했지만 군시절 대민봉사를 나간 적이 있어서 모심기의 기억을 가지고는 있다. 물가에 있는 논이어서 물걱정은 하지 않고 논 농사를 지울 수 있는 곳이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지나친다. 물위에 비친 동문의 모습을 찍어 보았다.
되돌아 오는 길에 산책길에서 조금 벗어나 개울가 바위에 둘러 앉아서 간식 시간을 가졌다. 오늘도 조금 걷고 많이 먹는 형태의 산행이 되어가고 있다. 별로 걷지도 않은 듯한데 개울가에 펼쳐 놓은 음식들은 파티를 해도 될 정도다. 조금 있으면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가서 뒷풀이가 예정되어 있는데 준비해온 정성을 보아 한가지씩 먹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삶은 감자도 있고 흰 가래떡도 있고, 과일이며 견과류까지... 그나마 오늘은 홍어를 준비한 회원이 없어 다행이다. 막걸리 한잔을 하면서 좋은 시간을 갖는다.
간식을 먹고 나서 오늘도 숲속 음악회가 열렸다. 왜 이리 노래를 좋아하는 동문도 많고 노래를 잘하는 동문도 많은지 대단한 동문회다. 다행히 오늘은 산책로에서 조금 벗어나 개울가에서 우리끼리만 즐기는 시간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래를 잘하는 선후배가 많아서 지나가다가 한번쯤 귀 기우려 들어도 괜찮다고 말한 정도는 되는 듯하다. 수준 있는 노래 몇 곡을 청취하고 내려 오는 길에 공작정이란 정자도 보인다. 계곡물을 따라 걷다보니 숲길이 끝나고 공원이 나온다. 아름다운 생태숲과 함께 하니 힐링은 되었는데 운동은 거의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100대명산 중 하나인 공작산 자락에 위치한 수타사와 수타사를 중심으로 잘 조성된 공작산 생태숲공원이 있었다. 수타사 생태숲은 2009년 조성된 이후 꾸준한 복원 노력으로 전국 우수 산림생태 복원대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명품 산책길이라고 한다. 생태숲이 넓고 중간 중간 쉼터 정자를 만들어 놓아 쉬어 갈 수 있도록 했으며 연못과 팔각정을 설치 해 놓아 운치 있는 풍경을 바라보며 힐링 할 수 있도록 조성 되어 있다. 조경도 잘 해 놓아서 꽃도 많이 피어 있었고 잘 꾸며놓은 공원이었다.
내려 오는 길에 들린 수타사. 옛날 동생이 홍천에서 근무할 때 한번 왔었던 절이다. 벌써 25년도 지났는데 그 때 왔던 기억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수타사(壽陀寺)는 영서지방을 대표하는 사찰로 소박한 느낌을 풍기는 사찰이다. 평지에 지어진 사찰이어서 조금 특이하고, 공작산(887m)에서 내려다보면 공작이 알을 품은 둥지에 위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당 사찰이라고 한다. 708년(신라 성덕왕7) 원효 스님이 창건했다고 하며, 1568(선조2)년 현 위치로 이전했고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가 재건되고 몇차례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절을 입구에서 들어가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윗쪽부터 구경을 해서 정문으로 나오는 역순의 순례가 되었다. 정면5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의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인 원통보전도 구경하고 목어와 법고가 있는 흥회루도 지나친다. 보통 사찰의 누각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수타사의 누각인 흥회루는 단층으로 지어져 있다. 동문들 사진을 찍어 주면서 후미로 내려 왔더니 정작 수타사에서는 찬찬히 살피지도 못하고 내려간다. 수타사 성보박물관에는 보물인 월인석보를 소장하고 있다는데 아예 어디에 있는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수타사를 나오는 길에 있는 사천왕상이 있는 정문은 이름이 봉황문이었다.
수타사쪽으로 올라가지 않아서 내려오는 길에 살펴보니 수타사 뒷편 산책길 이름을 산소길이라고 이름 붙여 놓았고 왕복 5km라고 되어 있었다. 총 4개의 코스로 되어 있었는데 우리가 갔다 온 것은 2코스에 해당하고 수타사에서 신봉마을까지 갔다 오는 코스였다. 산으로 가는지 트레킹 코스를 걷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따라 왔던 터라 그냥 와 보았다는 것에 의미가 있을 뿐이다. 안내판을 보니 신봉마을에서도 공작산은 꽤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다음에는 공작산에 가기 위해서 한번 더 와야겠다.
산챙을 시작할 때 모였던 숲 속에 다시 모여서 늦게 내려 오는 동문을 기다렸다. 이곳에서 고석운 선배님이 수타사 정문인 봉황문을 지나쳐 왔다면서 동탁 조지훈시인의 봉황수(鳳凰愁)란 시를 읖어 주었다. 아직도 이런 시를 외우고 있는 사실도 경이롭지만 해설이 더 멋졌고, 조선의 부끄러웠던 역사가 아쉽다. 이날 들었던 봉황수라는 시를 찾아 보았다.
"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 소리 날러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 위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서 정일품(正一品) 종구품(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天)에 호곡(呼哭)하리라. "
산행을 마치고 수타사 앞쪽에 미리 예약해 놓은 식당으로 이동한다.수타사 정상까지 산행을 한 것도 아니고 계곡 트레킹을 했으며, 중간에 간식 시간까지 가졌는데 다시 식사를 하러 간다고 하니 운동량에 비해서 너무 먹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먹는 즐거움을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입구에서 차를 타지 않고 조금 걸어서 내려오니 칙사랑 메밀사랑이라는 음식점이 나왔다. 100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 한번에 식사하려면 미리 예약하지 않고는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정자같은 장소와 야외식탁까지 빼곡히 동문들이 자리를 차지해서 좋은 시간을 가졌다. 조금 멀리까지 왔기 때문에 되돌아 가는 버스에서 쉬면 된다는 생각에서 맛있는 동동주를 제법 많이 마신다. 산행은 짧고 뒷풀이는 긴 전형적인 아제 산행이다. 모밀국수와 수육을 먹다가 지나가는 세찬 소나기에 식당에서 비를 만났기에 망정이지 트레킹을 하다가 소나기를 만났으면 어찌했을까 하는 안도감이 몰려온다. 평소에 덕을 많이 쌓아놓은 동문들이 많은 모양이다.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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