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중국 상하이('06.1)

2006 상하이 여행 2-2 (2006.1)

남녘하늘 2008. 4. 29. 11:47

 

 이번 상해여행을 기획하고 안내하면서 통역까지 맡아주었던 김기화님과 함께. 덕분에 아주 편하고 즐거운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상해의 중심거리 남경로

 

 

 

 

 

 

 상해의 상징적인 거리인 외탄. 전체 길이가 약 1.7㎞이며 다양한 국가의 건축 양식이 모여 있어서 '세계 건축 박물관'이라고 불리며, 한쪽으로는 넓은 제방을 따라 많은 관광객들이 황포강의 경관을 즐기기 위해 항상 붐비는 곳이다. 황포강 위를 운행하는 여객선이나 강 건너의 동방명주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많이 찍는다. 하지만 날씨가 따뜻할 때 이야기이고 추운날씨에는 오래 머물수가 없었다. 화려한 조명이 전체 제방을 비추어 유럽 도시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갖게 했고, 황푸강을 건너보는 동방명주탑의 야경이 더욱 멋있었지만 낮에 다시 오기로 하고 산책은 생략했다. 

 

 

 

 

 

 

호텔근처에 있는 찡안꽁위엔(淨安公園: 정안공원). 아침 일찍 산책을 나갔는데 이곳에도 역시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서 기체조를 하고 있었고 달리기와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느 공원을 가보더라도 기체조하는 사람과 춤추는 사람들이 항상 많은 곳이 중국인 것 같다.

  

 

 

 

 

 

 상해의 겨울은 생각보다 상당히 추웠다. 우리나라보다 위도상 훨씬 아래쪽인 북위 30도 이하임에도 점퍼나 외투 없이는 지낼 수 없을 정도로 춥다. 추운 것도 대륙의 삭풍이 많이 불면서 아주 기분 나쁘게 엉성하게 춥다. 이날도 영하 3도밖에 되지 않다고 했는데 연못에 살얼음이 얼어 있었다. 역시 여행을 하기에는 추운 날씨가 도움이 되질 않는다.  

 

 

 

 

 

홍구공원으로 불렸으나 1956년에는 노신의 묘를 이곳으로 옮기고 1988년부터 루쉰공원이라고 명칭을 바꿨다. 일요일이어서인지 공원안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춤도 추고 기체조도 하고 물로 붓글씨 연습도 하고, 간이 경극 공연도 하고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특히 남녀노소 나이에 관계없이 공원 곳곳에서 왈츠등 사교댄스를 추고 있는 모습은 부러워보이는 광경이었다.

 

 

 

  

 

 


 

윤봉길의사가 1932년 도시락 폭탄 투척의거를 거행한 그 현장이다.
한동안 기념물 하나 없이 방치되다가 1994년에서야 기념정자 메이팅(梅亭:매정)을 건립되었으며 현재는 입장료를 받고 있다. 루쉰공원에 있는 루쉰기념관의 입장료는 2원인데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았음에도
매원의 입장료는 15원(한국돈 2,000원 정도)이나 되어 한국사람에서 온 관광객이외에는 입장하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한국 사람을 상대로 상해정부가 장사를 한다는 느낌이다.

윤봉길 의사 관련 전시물이 있는 매정.
한국말이 조금은 어눌한 조선족 안내원이 안내를 하고 있었다. 
 

 

 

 

 

 

매헌 윤봉길(梅軒 尹奉吉 :1908-1932)
충남 예산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6세 때부터 큰아버지로부터 한문을 배웠다. 11세 때 보통학교에 들어갔으나 3·1운동 후 일본식 교육을 받기 싫어 중퇴하였다. 19세 때 길에서 글을 몰라 아버지의 무덤을 못찾는 무식한 청년을 보고, 자기 집 사랑방에서 야학을 열어 농민들을 가르쳤다.
22세 때에는 월진회를 조직하여 청소년들에게 애국심을 심어 주고 근면과 협동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일제의 탄압을 받게 되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 애국단에 가입하였다.
그 뒤 김구의 특명을 받아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열린 일본왕 생일 경축식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 최고 사령관 시라카와를 비롯하여 상하이 일본 거류민단장등을 폭사시키고 노무라등 많은 일본군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 소식을 들은 중국의 장제스는 '백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한 사람의 조선인이 해냈다' 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뒤 오사카 군법 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같은해 서거했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주어졌다.
다음에 다시 아이들과 함께 상해여행을 온다면 매헌기념관과 임시정부청사는 꼭 한번쯤 둘러 보아도 좋을 듯하다.

 

 

 

 

 

 

역시 루쉰공원내에서 만난 악사들. 아마도 우리의 '창'이나 '판소리'와 비슷한 것이라고 판단되는데 그들의 전통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중국에서도 이런 것은 젊은 사람의 취향은 아닌듯 젊은 사람은 보이질 않고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 둘러서서 경청하고 있었다. 

 

 

 

 

일요일이어서인지 루쉰공원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산책과 기공훈련들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공원 곳곳에서 뒤에 보이는 것처럼 춤을 추고 있는 팀들이 많았다. 아직 춤추는 것이 좋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어 있는 우리와 달리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 모여 시끄럽지 않게 즐기고 있는 것이 참 좋아 보였다. 우리나라도 공원에 모여 이런 여유를 즐길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중국 사람들이 공원에서 춤추는 것이 나이트클럽이 많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동양권에서 세계문단의 명성을 얻고 명작의 대열에 낀 작가는 그리 많지 않은데 아Q정전(阿Q正傳)으로 유명한 중국의 루쉰은 그 많지 않은 작가 중의 한 명으로 중국의 뛰어난 문학가이자 위대한 사상가였으며 교육자로서도 높은 명성을 지니고 있다. 루쉰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엽의 격동기를 온 몸으로 살다간 고뇌의 중국인 지성을 대표한다. 구질서가 붕괴하고 새로운 문화가 뿌리를 내리는 역사적인 과도기에 그는 문학혁명을 주도하며 조국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시대의 선각자로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으며 중국 곳곳에 루쉰 공원이 있다.
루쉰공원(魯迅公園 ) 안에는 루쉰의 묘와 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기념관은 노신의 고향인 소흥성의 건축 양식을 따라 지어졌으며, 기념관 안에는 작가의 필체가 담긴 원고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무덤에는 모택동이 직접 쓴 '魯迅先生之墓(노신선생의 묘)'라는 글자가 있다.
"길은 따로 없다. 내가 가는 곳이 길이다." 내가 좋아하는 루쉰 어록중에서 
 

 

 

 

 

 

 말은 통하지 않더라도 자신있는 지리감각과 배짱을 바탕으로 상해버스를 타 보았다. 버스내부에는 우리와 같이 전자식 요금결재시스템이 설치되어 있고 LCD모니터도 설치되어 있었으나, 이와는 별도로 버스안내양이 타서 요금을 받으러 다니고 있어 디지탈과 아나로그과 공존하는 버스이다. 워낙 풍부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해서라나... 내리는 문 바로 뒷좌석은 안내원 좌석이어서 승객은 앉을 수 없다. 

 

 

 

  

상해를 대표하는 건축물의 하나로 황포강의 푸동 지구에 솟아있는 468미터의 동방명주탑.  상해의 시내 전망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360도 탁 트인 전망대에서 상해의 야경 및 전경을 즐길 수 있다. 상해에 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을 남기는 건물이기도 하다. 

 

 

 

 

 

 상해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황푸강(黃浦江). 길이 160km. 장쑤성(江蘇省) 타이후호(太湖)에서 발원하여 동으로 흘러 상하이(上海)를 거쳐 우쑹(吳淞)에서 양쯔강과 합류한다. 아직 환경문제까지 고려하는 중국이 아닌지라 사진으로 보기완 달리 엄청 지저분하고 물이 오염되어 있었다. 그래도 밤에는 주변의 조명으로 인해 운치가 있어 보였다.

 

  

 

 

 

 1930년도의 유럽 각 나라가 앞다투어 건설한 아름다운 건축물이 줄지어 있는 외탄지역. 맞은편 푸둥 지구에는 동방명주를 비롯한 근대 건축물이 속속 건설되어 현대 중국을 상징하는 대비를 보여준다. 다양한 국가의 건축 양식이 모여 있어서 '세계 건축 박물관'이라고 불린다고..
사진속의 배경은 와이탄 13호 Customs House. 1927년 유럽고전 건축양식과 현대 건축양식을 결합하여 만들어졌으며 상단부에 종이 매달려 있어 매시간마다 종이 울렸다.

 

 

 

 

 

관광용 버스인줄 알고 목적지도 없이 타 보았는데 완전히 잘못된 선택이었다. 차안에 지저분했으며 매연냄새로 가득했고 마치 시골 장날을 운행하는 버스같았다. 이 버스 역시 안내양이 있고, 안내양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으나 이런 차를 타고 하루종일 있을 거라 생각하니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정거장을 못 넘기고 하차했다. 숨막혀 죽는줄 알았다. 

 

 

 

 

 화이하이중루(淮海中路)에 위치한 상해 도서관은 1952년에 설립되었으며 과학연구와 교육센터로 중국에서 가장 큰 도서관중이며 세계 7대 도서관중 하나이다. 상해 도서관 바로 앞에 있는 유명한 스테이크 하우스를 방문했다가 도서관을 배경으로 한컷 찍었다. 총 4850여 만권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관련 자료도 다수 있다고 한다. 

 

 

 

    

 

상해 푸동 공항으로 가는 자기부상열차가 출발하는 롱양루역(龍陽路站). 상해지하철 2호선 롱양루역과 연결되어 환승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는 것처럼 짐을 X-ray 투시기를 통과시기고 탑승하게 되어있다. 중국인들의 수준으로 비싼 요금(우리돈으로 5,200원 정도) 때문인지 이용객이 많지 않아 한산해서 좋았다.

 

 

 

 

최고속도 470km까지 낼 수 있지만 공항에서 시내까지의 거리가 짧기 때문에 431km이상 속도를 내지 않는다. 열차 옆으로 공항고속도로가 있는데 달리는 차량이 거북이 운행하는 것으로 느껴질만큼 빠르다. 총 구간 30Km를 최고속도 431km로 달려 시내에서 공항까지 7분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KTX와 외관상으로는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철로가 아닌 모노레일 위를 달리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자기 부상열차는 중국이 세계 최초로 상업화 시켰으며 푸동 국제 공항과 지하철 2호선 롱양루역(龍陽路站) 사이를 운행한다. 3열 배치의 의자에 역방향과 순방향 좌석이 반반씩 있는데 승객이 별로 없어 역방향에 앉을 이유가 없었으며, 승차감도 430km라는 속도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안정감이 있었다.

 

 

 

 

 독특하고 깨끗하고, 넓은 공항이다. 북경보다 조끔 덜 북적거린다. 상해에는 홍챠오 공항과 푸동공항 2개가 있는데 지난 99년 상해를 동북 아시아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계획에 의해 푸동공항을 건설한 이후 푸동 공항이 국제선 터미널이 되었다. 따라서. 한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는 모두 푸동공항을 이용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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