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마라톤 여행/상해마라톤('06.11)

상하이 마라톤 2-2 (2006.11)

남녘하늘 2008. 6. 12. 09:10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 런닝복으로 돌아다니기에는 쌀쌀함을 많이 느꼈다. 다행히 대회 주최측에서 대형 타월을 나누어 주어 옷을 갈아입기 전까지 보온을 할 수 있어 좋았다. 대회 스폰서를 미즈노에서 했는데 셔스와 타월, 가방등 나누어준 기념품의 수준이 꽤 괜찮은 것 같았다. 주로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었던 박흥석 상하이 마라톤클럽의 회장님이 내가 들어온지 10여분후에 결승점을 통과했다. 이번 상하이 마라톤을 달리면서도 한글이 표시된 셔스를 입고 달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아서 뿌듯한 감정을 느겼었다.

 

 

 

 

상하이 국제마라톤은 엘리트와 마스터즈를 구분해서 시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스터즈가 상을 받는 것은 힘이 든다. 상금이 금액이 크지 않아서 국제대회이지만 아주 뛰어난 선수가 참가하지도 않아 대략 2시간 15분대 주자들이 우승을 하는 것 같다. 마스터즈에게는 꿈같은 기록이지만.... 비록 상은 받지 못하지만 시상대를 배경으로 나도 사진은 찍을 수 있다.

 

 

 

 

 

 

상하이 마라톤에 참가한 한국선수단 중에서 가장 늦게 들어온 박상학님(오른쪽에서 두번째)과 함께. 원래는 잘 뛰는 친구인데 요즘 너무 무리하게 많이 뛰다보니 부상이 와서 자신의 최고 기록의 두배에 육박하는 기록을 냈다. 너무 무리해서 달리는 것보다는 쉬는 것이 낳을텐데,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보니 충고를 받아드리지 않는다. 정동창 여행춘주 사장과 김태식님과 박상학과 함께..

 

 

 

후반부에 들어오는 주자를 기다리기에는 날씨가 너무 서늘해서 버스로 돌아가 복장을 바꿔입고서 다시 결승점으로 나와 들어오는 주자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함께 찍은 여자분은 상하이 마라톤 클럽의 여성주자이다.

 

 

 

 

결승점을 통과하고 나서 10여분이 지나고 나니 주자들의 기록이 바로 출력되어 게시되었다. 출발지에서 출발시간을 체크하는 넷타임이아닌 건타임을 적용하는등 전반적인 진행방식은 우리보다 뒤져있지만 성적발표는 엄청 빨리 한다. 내 기록은 3시간 45분 46초로 전체 494등을 차지했다. 기록증도 등번호를 반납하면 바로 출력해서 현장에서 배포하는데 기념메달이 없는 것이 흠이다.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같은 외관을 갖춘 민항(閔行)체육관. 결승점은 뒤로 보이는 건물 안쪽이 아니라 입구쪽이어서 체육관 윗쪽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뒷쪽까지 가보지는 않았지만 체육관의 규모가 꽤 커 보였고, 상하이 한인마라톤 클럽의 주된 훈련장소라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흡족했던 것이라면 이곳 전통 발마사지 집을 꼽을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일행의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발마사지만 받으려다 전신 마사지를 받았는데 국내 대회후 해주는 스포츠 마사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1시간 30분의 마사지후 풀코스의 피로가 완전히 사라졌다. 한국인 관광객이 자주 찾는 집인지 한국어 간판과 종업원의 한국어 실력이 보통은 넘는 것 같았다. 다음에 다시 상해를 찾게되면 한번 더 가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상해의 상징적인 거리인 외탄. 전체 길이가 약 1.7㎞이며 다양한 국가의 건축 양식이 모여 있어서 '세계 건축 박물관'이라고 불리며, 한쪽으로는 넓은 제방을 따라 많은 관광객들이 황포강의 경관을 즐기기 위해 항상 붐비는 곳이다. 화려한 조명이 전체 제방을 비추어 유럽 도시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갖게 했고, 황푸강을 건너보는 동방명주탑의 야경이 더욱 멋있었지만 비가 부슬부슬 내려 오랫시간 머물기가 힘들었다.

 

 

 

  

 

상하이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황푸강(黃浦江). 길이 160km. 장쑤성(江蘇省) 타이후호(太湖)에서 발원하여 동으로 흘러 상하이(上海)를 거쳐 우쑹(吳淞)에서 양쯔강과 합류한다. 상하이의 동맥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강으로 유람선에서 대형 화물선까지 강을 가득 메우고 있어 보기보다는 상당히 지저분하고 물이 오염되어 있었다. 그래도 밤에는 주변의 조명으로 인해 운치가 있어 보인다. 배를 타고 있는 동안 부슬 부슬 겨울비가 내려 약간이 한기가 들기도 했다.

 

 

 

 

 

  

황푸강 유람선에서 오산마라톤클럽의 노준환님과 함께. 상해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황푸강(黃浦江)은 길이가 160km. 장쑤성(江蘇省) 타이후호(太湖)에서 발원하여 동으로 흘러 상하이(上海)를 거쳐 우쑹(吳淞)에서 양쯔강과 합류한다. 아직 환경문제까지 고려하는 중국이 아닌지라 황푸감은 엄청 지저분하다. 다만 밤에는 어둠과 주변의 조명으로 인해 운치가 있어 보인다.

 

 

 

 

 

  

겨울비가 내리는 가운데 유람선에서 외탄을 배경으로. 사진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화려하다.

 

 

 

 

상하이를 방문하게 되면 꼭 방문하는 곳중 하나가  예원이 아닐까싶다. 나는 이미 와 보았지만 상하이를 처음 방문한 사람들이 가보아야했기에 함께 따라 나선 예원. 친구 병주와 함께 예원에서...

  

 

 

상해시 동남쪽에 위치한 중국 전통 정원인 예원은 북경의 황궁정원 이화원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과거 황제만 쓸 수 있었던 용문양을 예원에 조각하면서 용발가락을 한개 더 만들어 역적으로 몰릴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예원'이라는 이름은 '유열노친(愉悅老親)', 풀어보면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잘 가꾸어진 연못이 예원의 가장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고 그 주변으로 몇채의 누각과 별당들이 있다. 정자와 누각에 앉아 바라보는 정원은 아무 생각없이 한나절을 보낼 수도 있을 듯 하다.건물과 건물을 잇는 길들은 여러 형태를 가진 기괴한 돌로 꾸며서 마치 도깨비들이 방망이들고 돌아다닐 것 같은 미로들로 꾸며져 있고, 그러한 바위들 위에 다시 건물을 세웠다. 뒤로 보이는 가운데 있는 구멍난 돌은 아래에서 연기를 피우면 모든 구멍으로 연기가 나온다고 하는데 반윤단이 그 돌을 감상하기 위해 정자까지 만들어다고 하는 유명한 돌이다. 

 

  

 

예원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의 기와를 유심히 살펴보면, 기와 한장한장 모두가 용(龍)의 비늘모양을 하고 있다. 이 용의 비늘을 따라 예원 안을 돌다보면, 마지막 거대한 용의 머리를 만나게 된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중국 황실에서 반윤단에게 황제의 상징인 용을 개인이 사용한 것에 대해 추궁하자 예원의 용은 황제를 뜻하는 용과 달리 용의 발톱을 3개로 되어 있고, 또 용머리 아래에 있는 두꺼비가 황제 아래에서 용의 침을 받아 먹는 신하라는 의미라고  둘러댔다고 한다.  용머리와 아래에 있는 두꺼비. 아마 반윤단의 그의 튼튼한 재력을 바탕으로 황제처럼 살고 싶었나보다.  사진의 배경에 보이는 것이 그 용머리 담장이고 용의 턱아래에 두꺼비가 앉아있다.

 

 

 

예원은 명대(明代)의 관료인 반윤단(潘允端)이 그의 아버지 '반은'을 위해서 1559년부터 19년 정도의 시간이 들여 고향인 상해의 한복판에 세운 저택이다. 이후, 예원은 4백여년의 시간 동안 주인이 몇 차례 바뀌고, 중국 근대화 시기에는 영국군들과 태평 천국군, 프랑스군 등에게 점령되어 불타버리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는데 중국 정부는 예원의 문화적 중요성을 깨닫고 1956년에 대규모 복원 작업에 착수하였으며, 1961년부터는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기 시작했다. 예원의 전체 면적은 약 20㎢며, 오솔길처럼 좁고 구불구불한 회랑과 다리를 따라 돌며 40여개의 정자와 누각, 연못과 가산(假山)을 관람하게 되어 있다.

 

 

 

예원에 인접한 예원상장(豫園商場 위위엔상창)은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이 옷가지나 먹을 거리를 사고 팔던 대형시장이다. 명·청대의 건물 양식을 본떠 건축되어 있고 거리는 깨끗하고 넓게 조성되었 있다. 비록 과거의 건축양식을 모방하여 새로 지은 건물들이지만 중국 전통의 붉은 등이 연이어 달려 있는 거리를 걷다 보면 청나라 때의 시장 한복판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예원상장에는 1백 개가 넘는 작은 상점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다닥다닥 들어서 있고,상점마다 여러 품목을 취급하는 것이 않고 하나의 품목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다니다 보면 사진을 찍을만한 장소가 상당히 많은 곳으로 예원과 어우려져 전체가 하나의 관광상품이다. 

 

 

   

번화한 화이하이쫑루(淮海中路)에서 마땅루(馬當路)쪽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주택가가 나온다. 그 곳에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이국 만리타향에서 독립의 꿈을 키우며 고군분투하던 애국지사들이 활동하던 곳이 남아있다. 임시정부는 상해의 어느 한 곳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27년의 역사 중 13년 동안 이곳을 청사로 사용했다. 중국 당국에서 철거할 계획까지 세웠으나 중국과 수교 후 우리나라의 요청으로 그대로 남게 되었다. 지금은 상해 인민 정부에서 유적지로 지정, 직접 관리하고 있다. 개표소에서 표를 사면 안내원이 임시정부 청사를 1층부터 3층까지 안내해 준다. 1층에 바로 회의실이 보이고 그 뒤로 주방이 있다. 2층에는 박은식, 이동녕 등이 사용하던 집무실이 있고 3층에는 요인 숙소와 전시관이 있다. 아무리 망명정부라 해도 한 나라의 정부 청사치고는 너무 초라하지만 그 당시의 상황을 가히 짐작하게 한다. 전시실에서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사진 찰영이 금지 되어 있는 곳이기는 했지만 후레쉬를 사용하지 않고 3층 전시관에서 서울마라톤클럽의 이명직부회장님과 100회마라톤클럽의 최병주님과 함께 사진을 한장 찍었다. 사진 가운데에 있는 최병주는 관람을 끝내고 미화 100달러의 후원금을 기부했다. 나는 지난번에 와서 만원을 내고 임시정부청사가 새겨진 열쇠고리를 하나 받았는데 100달러을 기부하니 제법 묵직한 선물을 하나 받았다. 마음먹고 쉽게 행동하기 어려운 일을 선뜻해내는 통이 큰 내 친구이다.

 

 

 

 

혼자만의 여행이었으면 이런 비단공장 방문을 하지 않고 내가 보고 싶은 곳,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가는 여행을 했을텐데 단체여행을 하느라 현지 가이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찾아갔던 비단공장. 몇가지 비단만드는 공정도 구경하고 연결되어 있는 매장에서 일종의 충동구매로 비단이불을 하나 장만했다. 가족과 함께 오지 못한 미안함의 보상심리가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나마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이번 여행에서도 선물을 살 기회가 없었을터이니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이런 곳을 올 때마다 단체여행보다는 가급적 자유여행을 하는 것이 낳지 않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독특하고 깨끗하고 넓은 푸동공항에서 달빛마라톤 코치인 김경실님과 함께. 만들어진지 오래되지 않은 공항이라 깨끗하기는 하지만 공항면세점이 허접해서 눈요기를 할만한 것이 별로 없다. 천장에 있는 구조물이 특이해서 기억에 많이 남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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