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일본 대마도 ('07.4)

대마도 여행 2-1 (2007.4)

남녘하늘 2008. 8. 20. 08:39

 

대마도(對馬島, Tsushima)의 히타카스 (比田勝) 항에서. 인구  4만5천명밖에 되질 않는 쓰시마에는 지정학적, 전략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기에 일본의 자위대와 함께 해상보안청(우리나라의 해경)도 있다. 항구가 크지 않기 때문에 히타카스 (比田勝) 항에 해상보안청 소속의 함정도 정박해 있어 이 배를 배경으로.... 대마도의 젊은 사람은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면 자위대나 해상보안청등에서 근무하는 일본의 공무원으로 보면 거의 맞다. 

 

 

 

 

가미쓰시마마치(上對馬町) 관광안내 지도 앞에서.

대마도(對馬島, Tsushima)는 동경129°, 북위 34°에 위치한,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가로놓인 '국경의 섬'이다.  섬의 총 면적은 709㎢ 로서 제주도의 절반크기이며 우리 나라 두번째 크기의 섬인 거제도의 1.7배이다 남북의 길이가 82㎞, 동서의 폭이 18㎞로 부산에서 보면 마치 두 마리의 말이 마주보고 누워있는 모습이라고 하여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지리적인 거리로만 따지면 일본 본토보다는 우리와 더 가까운 섬으로 부산에서의 거리가 불과 49.51㎞이고, 일본 본토에서 가장 가까운 후쿠오카까지의 거리는 138㎞이다. 대마도는 행정구역상 나가사끼현(長崎縣)에 속하며, 6개의 마찌(町)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003년 3월에 섬 전체가 시로 승격되었다. 

히타카스(比田勝) 항구가 있는 가미쓰시마마치(上對馬町) 관광안내도를 배경으로...

 

 

 

 

대마도는 일본의 지형적 특징보다는 우리나라의 지형적 특징에 더 가까운 땅이다. 일본 본토와는 달리 지진도 거의 발생하지 않는 지역이어서 다른지역과 달리 단층의 목조건물보다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느낌의 건물도 많다. 다만 울창한 산림과 깨끗한 자연환경이 역시 일본답다는 느낌이다. 관광객도 일본사람보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몇십배나 많아 찾아와 과거 우리가 전해준 문화의 영향과 함께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의 지대한 영향을 받는 지역이기도 하다.
대마도 내에서 두번째로 큰 항구인 히타카스 (比田勝) 항도 우리나라의 이름없는 조금만 항구보다도 작다. 다만 한국 관광객때문에 자그만하지만 국제여객선터미널과 출입국 사무소도 있다. (완전히 구멍가게 수준이다.)

 

 

 

  

 

미우다(三宇田) 해수욕장에서.

일본의 해변 100선에 선정될 정도로 모래가 곱고 에머랄드빛의 바닷물 색깔로 인해 멋있는 미우다(三宇田) 해수욕장. 아담하고도 얕은 바닷물이 여름에 왔으면 꼭 한번은 바닷속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꽤 괜찮아보이는 해수욕장이다. 주변에 캠핑장도 있어 쓰시마 섬의 몇개 안되는 관광지중에서 괜찮은 곳이였다. 갬핑장은 7-8월 두달간 개장한다고 한다.

 

 

 

 

 

 

 

'조선역관사 조난비'를 배경으로

1703년(숙종 29년) 당시 대마도에서는 3대 번주(藩主: 대마도의 제후) 요시마사(義眞)의 장례와 , 5대 번주 요시미치(義方)가  승계를 축하하기 위해 사절단 파견을 위하여  실무진을 먼저 파견하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역관(譯官)이다.  역관은 일종의 통역사지만, 당시에는 단순한 통역 이외에도 실질적 외교 업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조선에서 파견된 역관 108명과 이들을 수행하기 위한 일본측 역관 4명이 1703년 음력 2월 5일 부산항을 떠나 저녁 무렵 대마도에 입항을 하기 직전, 갑자기 불어닥친 폭풍에 의해 그만 앞바다의 암초들에 의해 배가 좌초되면서 112명 전원이 사망을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조선역관사 조난비'는 바로 이 때의 사고를 기억하고 기리는 의미에서 1991년 3월 한일 양국 유지들의 힘을 모아 세워진 비이다.

이 역관사들은 조선통신사와는 별도로 쓰시마까지 100명 정도의 규모로 구성되어 파견된 통신사 사절로 에도시대에 50회 이상 일본에 파견되었다. 쓰시마번의 경조사 시, 또는 한일 외교 상 의견 절충이 필요할 때 일본을 방문하여 당시 한일 선린외교의 실질적인 중계자 역할을 담당하였다.

 

 

 

  

 

쓰시마 최북단 와니우라라는 지역에 있는 '한국전망대'.  '와니우라'는 한때 왜구의 본거지였으며 특히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주요 집결지로 군량을 보관하던 곳이라 한다.  현재도 일본의 공군과 해상 자위대가 부근에 주둔하고 있어 그 군사적 중요성을 입증하고 있는데, 이곳 와니우라의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언덕 위에 서 있는 팔각정 건축물이 바로 '한국전망대'이다. 전망대 건축물은 한국의 건축양식으로 1997년에 세워졌으며 기와지붕의 팔각정 형태는 서울 파고다 공원에 있는 정자를 모델로 하여 설계단계에서부터 한국 학자에게 자문을 구하였으며 한국산 재료 구입 및 전문가 초빙 등 철저히 한국풍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전망대 주변으로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높은 지형에 위치해 있어 주변의 쓰시마 무인도등 작은 섬들이 펼쳐 보이고 근처에는 자위대의 주둔지도 보인다. 쓰시마가 우리나라에서 가깝다는 사실은 이곳에서 우리나라  휴대폰이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쓰시마가 거리상으로 보더라도 제주도나 울릉도 기타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섬보다 가까운 곳이지만  그래도 외국땅인데 국내통화가 연결되는 것이 신통하다. 보안상의 이유로 일본측에서 방해전파를 쏘아 쓰시마의 다른 지역에서는 휴대폰이 연결되지 않지만 이곳은 워낙 중간에 다른 방해물이 없어 연결되는 것 같다.

 

 

 

 

 

 

에보시타케(烏帽子岳)전망대

대마도 내에서 유일하게 360° 동서남북 사면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이다. 여기에서 보는 아소만은 몇 겹의 산과 바다 위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과 리아스식 해안 등, 그 웅대한 모습을 자랑한다. 바다가 너무 잔잔해서 바다보다는 호수같은 느낌이 든다.

 

 

 

 

 

와타즈미신사(和多都美神社) 본전 앞의 도리이(鳥井)

 

 

 

 

 

토요타마쵸(豊玉町)’의 상징인 와타즈미신사(和多都美神社)는 일본 건국신화의 주역인 하늘신 ‘히고호호데미(彦火火出見)’와 용왕의 딸 ‘토요타마히메(豊玉姬)’를 제사지내는 해궁(海宮)으로 바다 신을 모신 신사로는 가장 오래된 신사이다. 신사의 문이 서쪽 바다, 즉 한국을 향해있는데, 이와 관련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과 깊은 관련성이 있다는 이야기와 가야의 김수로왕의 자손이 대마도로 건너와 세웠다는 설도 있다. 본전 정면의 바다 속에 서 있는 토리이(신사 문)는 만조 시 2m정도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특이한 풍경을 연출한다. 신사 뒤로 돌아가면 ‘토요타마히메(豊玉姬)’의 무덤으로 알려진 석관묘(실제는 묘가 아니고 제를 지내는 장소로 판단된다)가 외롭게 서 있고 주위엔 울창한 숲과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있다.

 

 

 

 

 

 

와타즈미신사(和多都美神社)

바다에 서 있는 토리이는 아소만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더한다. 와타즈미신사(和多都美神社) 입구에서 오미쿠지(おみくじ) 라고 하는 제비뽑기를 하나를 재미삼아 뽑았는데  大吉이 나왔다.

 

 

 

 

 

 

쓰시마(對馬島)는 원래 하나로 이어진 섬이었다.  그런데 군사적인 목적으로 인공운하를 개통시킴으로서 오늘날처럼 상대마도와 하대마도로 나뉘어졌다.  상대마와 하대마를 이어주는 다리가 바로 만제키바시(万關橋)이다.  일본은 러일전쟁때 이 운하를 일본 해군의 전략적 거점으로 십분 활용하여 당시 해군 전력상 세계최고로 꼽히던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게 된다. 이 쓰시마해전의 결과로 일본은 동북아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고, 러시아는 짜르왕조의 몰락과 동시에 볼세비키 공산혁명의 시발점이 된다. 또한 우리나라는 일본에 35년간을 지배당하게 되는 치욕적인 수모를 당하게 된다. 이후 일본은 대륙으로 나아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 운하와 만제키바시(万關橋)는 그 역사의 시발점이 된 사건의 현장으로 우리에게는 원통함이 시작된 한이 어린 역사의 다리이기도 하다. 현재 만제키바시(万關橋)는 오렌지빛 아치 교량으로 세번째로 놓여진 다리이며 (첫번째와 두번째는 철거함),  교량길이 210m로 여행객들과 가족동반의 산책코스로 많이 알려진 곳이라고 하는데 나의 눈에는 역사적인 가치를 제외한다면 그저 평범하고도 자그마한 다리중에 하나로만 비쳤다.

 

 

 

 

 

 

 

일본 해군의 주도하에 섬의 가장 좁은 부분을 뚫어 허리를 관통하는 만제끼운하 건설하고 그 곳에 만든  만제키바시(万關橋)에서. 

 

 

 

 

대마도의 가장 큰 도시인 이즈하라(嚴原)의 바닷가 풍경.

대마도에서는 가장 큰 도시라고는 하지만 이즈하라(嚴原)는 우리나라의 동(洞)정도의 크기로 작은 동네이기에 포구도 아주 작다. 뒤로 보이는 이즈하라(嚴原)대교도 조그만하다. 이 포구 옆으로 여객선 터미널과 출입국 사무소등이 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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