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과 생활 /마라톤대회 사진

트랜스 제주 트레일런 (2017.10.15)

남녘하늘 2019. 2. 11. 00:09


 밤새 비가 내리고 아침에도 비가 계속해서 내려 오늘 달리기는 우중주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대회 출발 장소인 표선면 가시리 마을로 이동했다. 가시리 마을은 크고 작은 오름과 초원이 함께 있는 곳이어서 오래전부터 목축 산업이 발달했다고 한다. 옛날 제주의 10개 목장 가운데 최고의 목장이 이곳 가시리에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선정된 가시리 마을의 입구를 지칭하는 녹산로는 목마장 녹산장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한다.   


 대회장에 도착할 때까지도 비가 오락가락 하고 있다. 비가 오더라도 대회는 참가할 생각이지만 비를 맞으면서 뛸 생각을 하니 조금 갑갑하다. 그나마 시간이 흐를수록 날이 조금씩 맑아지고 있는 듯해서 기대를 가져 본다. 날이 맑았으면 주변을 둘러 보겠는데 대회장에 도착해서 구질구질하게  비가 내리고 있어 주변을 둘러 보는 것은 생략하고 대회 등록을 하기 위해서 기다렸다.  






시간이 되어서 대회 주최측에서 배번과 함께 기념품을 나누어 주었다. 참가비에 비해서는 기념품은 단촐하게 셔스와 배번이 전부다. 오늘 10km 부분에는 참가자가 300명이라고 하는데 접수를 하면서 보니 참가자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제주까지 내려와서 10km를 포기할 것 같지는 않은데 날이 좋지 않아서 대회장에 오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어제 진행된 100km 부문에는 170명이 뛰었고, 50km 부문에는 290명이 뛰었다고 한다. 울트라대회에서는 꽤 많은 인원이 참가한 셈이다. 가끔 풀코스 대회에서 만난 적이 있는 주자들은 이곳 대회에서 여러 명 만났다. 제주까지 와서 만나니 더 반갑다. 






 출발 시간까지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대회장 주변을 조금 둘러 보았다. 가시리 마을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이곳에 있는 조랑말 체험공원에 대한 안내판이 있었다. 가시리 마을은 조랑말체험공원을 비롯하여, 녹산로 유채꽃길, 따라비오름, 붉은오름 자연휴양림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 곳이라고 한다. 유채꽃이 피었을 때 왔어도 보기 좋았을 것 같다. 오늘 날씨만 맑았아도 분위기가 한결 좋았을 터인데 날씨 때문에 우중충한 느낌이다. 카페 건물도 있었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운영을 하지 않는 듯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보니 조랑말체험공원이 나왔다. 가시리 지역의 오름에서 영감을 받아 건축했다는 둥글납작한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독특하다. 조랑말체험공원은 조선시대 왕에게 진상되던 최고의 말을 길러내던 갑마장이 있던 가시리의 주민들이 만든 말 테마 공원이다. 조랑말박물관을 비롯해 승마장, 카페, 캠핑장, 게르, 아트숍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시간이 있었으면 박물관 구경도 하고 승마 체험도 해 보고 싶지만 오늘의 목적은 달리기다.    





 트랜스 제주 50km와 100km 울트라 트레일런 대회는 어제 아침 6시부터 대회를 치뤘다. 관음사에서 출발해서 한라산 정상까지 오르 내리고 또 한라산 둘레길 5코스를 두루 달리는 대회였다. 밤에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엄청 고생을 했을 것 같다. 사실 나도 50km 부분에 참가하려고 했었는데 친구들이 모두 여행삼아 놀러와서 함께 10km를 뛰자고 해서 10km를 뛰었는데 나중에 울트라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엄청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순간의 선택이 고생을 하지 않게 만들었다.  






 대회장 주변에 볼거리가 꽤 있었는데 함께 온 친구들이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대회장 근처에만 있어 혼자 돌아 다니기 싫어서 주변을 둘러 보지 못했다. 날이 맑고 도로가 진흙탕만 아니었어도 출발까지 시간이 남아서 돌아 보았을 터인데 아쉽다. 멀리 말 조형물도 꽤 많이 만들어 놓았고 승마 체험장도 보였다. 다음에 한번 더 놀러와야겠다.   





 오늘 달리게 되는 코스 지도다. 주로는 교차로마다 반사판이 있는 형광 노란색 리본 혹은 안내판으로 표시되어 있다고 한다. 중간에 1개의 체크포인트가 있는데  이곳에서 급수를 해 준다고 한다. 지도로 보아서는 주로의 느김이 어떤지 알 수가 없다. 




 출발 시간이 다 되어서 출발점 앞에 모두 모였다. 비가 내렸고 바람이 조금 불었기 때문에 주자들이 출발점에 모여 있지 않다가 시간이 되어서 모이니 생각보다는 300명의 주자가 꽤 많아 보인다. 10km를 뛰게 되니 오늘은 카메라를 들고 뛰면서 나와 친구들의 사진을 찍어줄 생각이다. 이런 특별한 대회에서는 사진을 찍어 놓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고 나서 많이 아쉽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출발할 때가 되어서 비가 거의 그쳤다. 우의를 걸치지 않고 뛰어도 될 정도가 되어서 과감히 우의를 벗어 버렸다.   






 대회 신청은 해 놓았지만 홈페이지에 한번도 들어와 보지 못해서 주로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어디를 달리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먼저 참가했던 사람들이 코스가 아주 환상적으로 좋다는 이야기만 들고 왔기 때문이다. 참가자의 중간쯤에서 출발해서 앞에 가는 주자만 따라가겠다는 생각으로 뛰어 나갔다. 출발해서 얼마간은 콘크리트 포장도로였지만 조금 지나니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주로다. 아침까지 내린 비로 인해서 군데 군데 물구덩이가 있어서 처음에는 피해 가느라 신경을 썼다. 하지만 조금 달리다 보니 물구덩이를 피하더라도 운동화가 모두 젖어버려서 그 이후로는 운동화를 신경쓰지 않고 그냥 편하게 달리게 된다. 







 마라톤 코스가 정말 재미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목장길을 거쳐서 가는 코스여서 중간 중간 키우는 말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목책이 세워져 있었고, 중간에 철조망을 통과하는 구간도 있었다. 한번의 대회를 위해서 철조망을 걷어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철조망을 통과하면서는 약간의 정체가 생겼다. 철조망을 지나서 조금 더 나가니 허리높이까지 자란 풀숲을 지나야 하는 코스가 나온다. 달리기를 하면서 이런 코스를 달려본 적이 없는데 나름 재미있다. 풀숲에서 사진 한장 찍으려다 뒤따라 오는 주자에게 눈총을 받았다. 둘러서 가는 길이 없기 때문이었다.  





  풀 숲길을 지나고 나서는 제주도의 숲 길을 달리는 코스가 나왔다. 산책하는 도로에 팜나무 매트가 깔려 있었는데 숲 길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동안 어떤 달리기 대회에 가더라도 이끼가 가득 낀 바위 등을 볼 수 있는 코스를 볼 수가 없었는데, 뭍에서는 보기 힘든 숲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길이 좁아서 앞에 가는 주자를 추월하기는 불편해서 그냥 앞사람을 따라가는 형국이다. 중간 중간 낙엽도 떨어져 있고 환상적인 주로가 꽤 오래 이어졌다.   







 코스 중에는 이낀 바위가 가득한 개울을 건너는 구간도 있었다. 아침까지 비가 내려서 길이 미끄러운데 이끼까지 있으니 개울을 건너는데 엄청 조심을 해야 했다. 숲 길을 달려 올 때에는 정체가 없었는데 개울은 조심해서 건너다 보니 정체가 생긴다. 그래도 안전이 가장 우선이기에 조심해서 지났다. 코스가 참 아기자기하고 재미도 있지만, 미끄러운 구간도 여러 곳에 있어 조심해도 미끄러질 수 있어 신경은 엄청 쓰인다. 어제 내린 비때문에 진흙속에 신발이 박혀서 신발이 벗겨지는 주자도 보인다.   





 긴 숲을 지나 따라비 오름 입구에 도착했다. 주변에 말을 방목하는 목장이 있는지 말들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출입구를 목책으로 여러 번 걱어지는 좁은 통로를 만들어 놓았다. 말이 통과하지 못하게 해 놓았는데 달리는 주자도 엄청 불편하다. 따라비 오름은 해발 342m이고 오름의 직경이 855m, 둘레가 2,633m로 3개의 원형분화구와 여석 개의 봉우리도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오름의 여왕이라고 불리며 억새와 더불어 멋진 전망을 보여 준다고 했는데 오르기 전까지는 실감하지 못했었다. 어떻게 정상까지 뛰어가야 하는지를 고민했었다.    





 따라비 오름 초입에서는 뛰어서 올랐지만 결국 정상 부근에서는 거의 모든 주자가 걸어서 오른다. 트레일런은 산악 마라톤이어서 걸어서 올라가기도 힘든 오름을 달려야 하기에 힘들지만, 걸으면 안된다는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제한시간 3시간 안으로 들어가면 기록도 인정된다. 앞서간 주자들은 기록에 신경쓰느라 이 길을 뛰어 올랐겠지만 걸어서 오르면서 뒤를 바라보니 풍광이 멋있다. 꽤 많이 올라 왔는지 따라비 오름에서 내려다 보이는 다른 오름이 발 아래로 보인다.  





 정상 부근 안내판에는 이 길이 갑마장길이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대회를 마치고 이름이 독특한 갑마장길을 찾아 보니 갑마는 조정에 진상하기 위한 최상급 말을 가르키는 것이고, 갑마장길은 그러한 갑마를 길러냈던 마장길이었다. 따리비오름과 큰사슴이오름을 포함해서 약 20km의 길을 갑마장길이라고 정하고 사람들이 걸을 수 있게 해 놓은 모양이다. 우리가 달리는 주로도 갑마장길의 일부였다.  





 힘들여 언덕에 올라서니 특이한 형태의 분화구 풍경이 펼쳐지는데 엄청난 광경이다. 숲속을 통과해 왔는데 거짓말처럼 숲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선을 드러낸 초원의 구릉이 펼쳐진다. 여려개의 분화구가 어우려진 멋진 풍광이다. 화산지형인 제주도의 오름중에서도 가장 멋진 풍경이라고 하는데 그말이 실감났다. 나만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이 아니라 함께 뛰었던 대부분의 주자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낀 듯하다. 사진으로는 그 느낌을 전할 수 없지만 감동이 몰려왔다.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는 것도 잠시 잊고 주변 풍광을 즐기면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사진으로 그 느낌을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냥 잠시 이곳에 머물면서 멋진 풍광을 눈에 많이 담고 싶었던 것이 나를 포함한 우리 일행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서쪽으로 한라산까지 탁트인 풍경에 가슴이 시원해진다. 바람을 막을만한 지형이 없으니 풍력발전기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도 보이고, 정상에는 바람이 적당히 불고 있었다.    






 높고 낮은 언덕이 어우려져 부드러운 능선으로 연결되며, 원형 분화구 안에 3개의 작은 화구를 가진 특이한 오름이었다. 정선 민둥산에서 느낀 분위기와도 비슷해 보인다. 정상 부근에도 억새가 많이 있었는데 조금 더 일찍 왔다면 더 멋진 풍광을 볼 수 있었을 것 같다. 주변으로 제주 동부지역에 있는 수많은 오름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이곳 따라비 오름이라고 한다.  






 따리비 오름에서 내려 가지 않고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대회에 참석했으니 결승점까지는 뛰어야 한다. 벅찬 감동을 가슴에 담고 오름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내려가는 쪽으로는 올라올 때와는 달리 숲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위치에 따라서 나무의 식생대가 다른 모양이다. 숲이 없어서 주변을 둘러보면서 내려갈 수 있어서 좋았다. 따라비 오름을 오를 때와는 달리 금방 오름을 내려갔다. 오름 아랫쪽으로 보이는 풍력발전기가 있는 곳으로 뛰어 가야 한다.   







 오늘 달리는 구간중에서 가장 편안한 길이 풍력발전기가 있는 곳이였다.  평지 구간에 콘크리트 포장까지 되어 있어서 흙길을 달릴 때보다 느낌은 좋지 않았다. 풍력발전기가 있는 곳에 처음으로 급수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물을 마실 수 있었다. 날이 하루종일 흐리고 기온이 오르지 않은 덕분에 목이 마르지는 않았다. 급수 봉사를 하고 있는 스텝에게 함께 달린 우리 일행 단체 사진도 부탁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대회를 즐기다 보니 이제 우리가 후미쪽에 가까운 모양이다.  






 풍력발전기가 있는 곳을 지나서 다시 처음 출발해서 2km정도 뛰었던 구간을 되돌아 오는 코스다. 다시 허리까지 자란 풀숲을 지나야 하고 또 콘크리트 터널과 철조망으로 된 울타리와 목책이 있는 목장길을 되돌아 와야했다. 따라비 오름에서 느꼈던 벅찬 감동은 아니지만 아기자기하고 멋있는 도로를 뛰고 있음은 틀림없다. 어디 가서 이런 길을 달릴 수 있을까 싶다. 오늘 달린 시간이 늦어진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더 오랜 시간 이런 길을 즐길 수 있음이 기쁨이다.   






 주로에서 정체현상도 있어 잠깐 걷기도 하고, 사진을 찍느라 멈추기도 하면서 달렸더니 결승점 통과 시간은 생각보다 늦었다. 하지만 마나 빨리 목표지점에 들어오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자연을 즐기면서 달리느냐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오늘 목표는 달성했다. 우리 보다 앞서 달려간 친구들은 기록은 좋았지만 주로에서 사진도 거의 없고 빨리 뛰느라 많은 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결승점을 통과하면서 너무 행복하다는 느낌이 가득했다. 이런 기분이면 10km를 더 달려도 될 것 같다.     





 완주메달이 돌하르방이었다. 재미 있고 기억에 남는 트랜스 제주 트레일런의 완주 메달이다. 




 트레일런 대회에 참가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였지만 그동안 참가해본 트레일런 중에서 가장 좋은 코스를 달린 대회였다고 생각한다. 함께 달린 친구들도 아침에 비가 내리는데 꼭 뛰어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뛴 친구도 있었는데, 뛰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것 같다고 말하니 그만큼 코스가 좋았다. 주로가 미끄럽고 수풀속을 헤치고 다니는 구간이 있어 달리고 나서 잔뜩 더워워진 신발을 보니 힘든 코스를 달린 것은 맞지만. 기록 욕심이 없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음에 다시 참가할 기회가 생긴다면 다시 오고 싶은 대회였다. 대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서 씻고 다시 제주 여행을 이어 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