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발리 ('15.5)

발리여행 25-20 (크르따고사, 스마라푸라 박물관, 짠디다사), (2015.5)

남녘하늘 2017. 5. 31. 00:16

 

 렌트카가 있으니 다시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찾아서 가는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패키지 여행이 아닌 이런 자유여행을 나는 좋아한다. 오늘 처음으로 방문하는 곳은 발리 동부에 있는 스마라푸라 왕궁(Puri Semarapura)이다. 발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휴양지로만 알려져 있지만, 발리 섬은 8개가 되는 왕국이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던 곳이다. 발리의 중세시대를 통치하던 겔겔(Gelgel) 왕조는 17세기 말에 발리의 동쪽지역인 클룬쿵(Klungkung)에 수도를 옮기고 클룬쿵 왕조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때에 발리는 8개의 왕국으로 분열되었다고 한다.

 

 분열된 왕조중에서 클룬쿵 왕조가 정통성을 이어받아 20세기 초까지 발리섬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오늘날 발리의 음악, 미술,무용 등의 문화예술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클룬쿵은 1995년부터 스마라푸라(Semarapura)라고 개명을 했지만 아직도 발리 사람들은 이곳을 클룬쿵으로 부른다고 한다. 스마라푸라 왕궁은 발리의 역사상 굉장히 중요한 곳인데, 발리를 찾는 많은 사람들은 오로지 휴양을 위해서 또는 그런 배경을 알지 못해서 이곳을 거의 찾지 않는다. 우리가 방문했던 날도 우리 가족이 일찍 움직여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관광객이 많지 않았다. 나올 무렵에 단체 관광객이 왔는데 모두 서양사람들이었다.

 

스마라푸라 왕궁으로 이동하는 길은 큰 대로가 아닌 자그마한 길을 통해서 갈 수 있었다. 이런 곳에 왕궁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오늘도 구글 맵을 이용해서 좌표를 표시해 놓고 찾아가니 생각보다는 편하게 갈 수 있었다. 네비라고 하는 문명의 이기가 없었다면 혼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왕궁 앞쪽에 주차장이 있었는데 찾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왕궁 뒷편 공간에 차를 주차시켜 놓고 더운 길을 걸어와야 했다.   

 

 

 

 

스마라푸라 궁전(Puri Semarapura) 입구까지 걸어와서 입장권을 구입했다. 스마라푸라 궁전은 발리의 다른 관광지에 비해 관람객들이 그리 많지 않아서 한적했는데, 나는 편안하고 조용히 옛 왕궁을 관람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크르따고사(Kertagosa)는 이 왕궁을 찾은 이들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다. 크르따고사는 클룬쿵 왕국 당시에 죄 지은 사람들을 심판하는 법원 기능을 하던 곳이었다. 워낙 이 재판소가 유명하여 이 왕궁은 스마라푸라 왕궁이라는 이름보다는 크르따고사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스마라푸라 왕궁의 동쪽에 자리 잡은 크르따고사는 18세기에 지어졌고 1942년까지 실제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산스크리스트어로 '크르따고사'는 재판소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힌두교 사원을 지키는 수호자인 나가(Naga) 석상이 장식된 계단을 올라서면 사면이 뚫린 누각 같이 생긴 크르따고사가 있다. 내부의 바닥 면적은 매우 좁고 그 한가운데에 목제 책상이 있으며, 책상을 사이에 두고 의자가 3개씩 총 6개의 의자가 놓여 있는 재판정이 있다. 독특하게도 건물 천정에는 다양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데, 그 내용이 도덕적, 종교적 교훈을 주는 그림들인데, 그 보존이 좋아 아직까지도 색체의 화려함을 볼 수 있다. 생전에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른 사람들이 지옥에 가면 어떻게 되는지가 힌두교식으로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는 것이다.   

 

 

 

 

 

 현재 스마라푸라 왕궁은 크르따고사(Kertagosa)라고 불리는 재판소, 연못 위의 왕실 휴식 누각인 발레 깜방(Bale Kambang), 왕조시대의 번영을 보여주는 박물관, 그리고 클룬쿵 왕조의 수많은 전각으로 들어가던 벽돌문 만이 남아 있다. 왕궁이라고 하기보다는 왕궁터라고 불릴 정도로 남아 있는 건물이 거의 없었다. 연못 위의 있는 누각인 발레 깜방은 스마라푸라 왕궁에서 크르따고사와 더불어 남아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전각의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사면이 넓은 연못으로 시원스럽게 둘러싸여 있어서'물 위에 떠오른 궁전'이라고 불린다.  

 

 

 

 

 

 연못 위의 누각인 발레 깜방에 올라서니 이곳 천장에도 클룬쿵 양식의 천장화들이 가득 그려져 있다. 이곳에는 크르따고사의 천장화와는 달리 힌두교 신화와 관련된 독특한 그림들로 힌두교의 신들과 상상의 동물들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누각에서는 클룬쿵 양식의 그림을 그리는 분이 있었는데, 흑색과 백색 외에 빨강, 초록, 노랑, 갈색같은 전통 색상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수가와티 시장에서 볼수 없었던 풍의 그림이어서 가격을 물어 보았더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싼 가격을 불러 구매하지는 못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 정성을 생각해 본다면 그 가격이 비싼 것은 아니었는데...   

 

 

 

 

 스마라푸라 왕궁은 1908년에 네덜란드 군대의 침략으로 대부분 파괴되었고 궁전의 일부 건물만 온전히 남아 있다. 궁전 본전이 있던 연못 북쪽의 핵심 구역에는 궁전 안으로 들어가던 정문만이 남아 있다. 왕궁 터에는 클룬쿵 왕조 당시의 유물을 모아 전시 중인 박물관이 있었다. 연못 뒷편에 자리한 박물관은 규모는 크지 않으나 당시 왕족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유물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다.  

 

 

 

 


  박물관 내부에는 왕들이 사용하던 유품과 당시 생활용품들이 유리 나무곽 안에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하면  거창한 의미를 가질 것 같은데 이곳의 박물관은 클룬쿵 왕조에 대한 설명문이 함께  유물이 전시되고 있으나, 기대보다는 다소 실망스러운 면이 있다. 전시물의 숫자도 많지 않고, 관리상태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왕족들이 살던 스마라푸라 궁전이 파괴되기 전의 모습이 미니어처로 재현되어 있었고, 방금 전에 크르따고사에서 본 재판소 의자도 진품이 박물관 안에 보존되어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던 과거가 있다.  네덜란드는 1908년 발리 왕국을 공격해 발리의 마지막 왕가였던 클룬쿵 왕가를 무력으로 제압하고  발리 섬 전역을 지배하게 된다. 이때 네덜란드군은 클룬쿵의 마지막 왕과 그의 신하 200여명을 참살하거나 자살을 시키고 왕궁을 철저히 파괴했다. 아래 그림은 발리의 주민드에게는 전설이 되어버린 너무나 유명한 항쟁사건을 그린 그림으로, 의로운 죽음을 택한 의인들을 기리는 그림이다. 대부분 칼과 창만으로 무장한 발리 사람들이 소총의 총부리를 겨냥하고 있는 잘 무장된 네덜란드 군들에게 항거하고 있는데, 일제의 지배를 받고 독립운동을 했던 우리선조의 모습을 보는 듯한 기분이다.

 

 

 

 

 왕궁에서 나오면 중심거리 한가운데 힌두교 신들을 나타내는 거대한 조각상이 있다. 가이드가 없이 우리 가족끼리 하는 여행이라서 설명자료가 없으면 어떤 내용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지나쳐야 하는 점이 아쉽다. 스마라푸라의 시내의 중심가에 그것도 왕궁 옆에 있는 조각상이라면 무엇인가 의미가 있을텐데... 이 조각상 옆으로 우리나라 기업인 LG의 광고판이 있어 이 또한 기분이 좋다.  

 

 

 

 


  박물관의 도로 건너편에 뿌뿌탄 기념비가 보인다. 네덜란드와의 항쟁에서 전투를 통해 네덜란드 군을 이길 수 없음을 알고 네덜란드 군에 대항하는 죽음의 행진을 시작한다. 이 명예로운 죽음의 행진을 발리에서는 '옥쇄'라는 의미의 뿌뿌탄(puputan)이라고 부른다. 이 뿌뿌탄에는 왕족 외에도 발리의 여성과 아이들이 참가하여 무려 4천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하늘로 높이 치솟은  뿌뿌탄 기념비는 총을 맞아 죽거나 자결한 남자들의 남근을 상징한다고 한다.

  발리를 포함한 인도네시아는 오랫동안 네덜란드를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았고, 또 우라나라처럼 일제에 의해 수탈과 고통을 받은 공통점이 있어 식민통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우리 근현대사와 너무도 비슷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동인도 회사를 앞세워 쳐들어온 네덜란드로부터 무려 350년 가량을 식민지배를 받게 되었고, 독립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중에 오히려 2차대전중에는 일본의 침략까지 받게 된다. 일제로부터 독립후에도 네덜란드의 식민지 재탈환을 위한 위협을 물리치고서야 인도네시아는 마침내 단일공화국으로 탄생하게 된다.

 

 

 

 

 스마라푸라 궁전을 출발해서 발리의 동쪽 해안을 따라서 짠디다사와 암라뿌라를 통해 발리의 북쪽 해안인 아메드까지 가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갑자기 문제가 발생했다. 아침까지 이상이 없었던 태블릿PC가 유심칩을 인식하지 못하는 에러가 발생해서 구글맵이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구글맵의 네비게이션 기능을 이용해 원하는 장소를 찾아가곤 했었는데 난감한 일이 발생했다. 암라뿌라까지는 한번 가 본 길이었지만 그 북쪽으로는 가보지 않은 곳이고, 발리의 시골길을 찾아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구글맵은 되지 않더라고 짠디다사(Candidasa)를 찾아가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 이동하기로 했다.  

 

 

 

 

 몇일 전 짠디다사(Candidasa) 중심도로를 지나가면서 짠디다사 해변에는 가 보았지만 이곳에 있는 라군이라는 연못은 그냥 지나쳐 가 버렸다. 멋진 풍광을 그냥 지나치게 되어서 차량 수리가 끝나면 다시 방문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오늘 찾아오게 된 것이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가는 여행이 내 체질에 맞는데 지난번에는 가이드와 함께 하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루지 못했었다. 원래 짠디다사가 해변이라 호텔들이 많이 생겼는데, 이곳은 장기로 투숙하는 외국인들이 조용히 쉬다가는 곳이라고 한다. 예쁜 연못 주변으로는 리조트와 레스토랑들이 많이 있었다.   

 

 

 

 

 도로변에 차를 세울만한 공간이 없어서 호수를 지나쳐 마을 입구쪽 공간에 차를 세워 놓고 다시 연못쪽으로 왔다. 발리의 도로가 좁아서 시골에는 주차가 항상 문제인 듯하다. 연못은 바로 바다와 이어져 있었다. 깨끗한 바다였지만 큰 파도가 밀려 와서 바닷물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연못 주변으로 야자수가 심어져 있고, 연못엔 연꽃이 많았다. 짠디다사(Candidasa)는 짠디는 사원을 뜻하고 다사는 숫자 열을 뜻하는 말로 10개의 절이있는 동네라는 의미라고 한다. 호수 주면에 레스토랑도 많이 있었는데 식사시간과 맞지 않아서 그냥 지나쳤다. 다음에 다시 짠디다사를 방문하면 바닷가 레스토랑을 한번 방문해 봐야 할 것 같다.   

 

 

 

 

 

 호수 맞은편에는 짠디다사 사원(Pura Candidasa)이 있었다.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짠디다사 사원은 풍부함의 여신을 모시는 사원으로 11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원 내부에 여신의 동상이 모셔져 있다. 사원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고 차에서 싸롱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입구에 있는 발리 여자분이 빌려 주어서 입장할 수 있었다. 사원에서 나올때 보니 여자분이 몸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았는데, 약간의 사례라도 하고 왔어야 했는데 지갑을 차에 두고 와서 그냥 와 버려서 한참동안 불편함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사례비를 바라고 빌려준 것은 아니었겠지만... 

 

 

 

 

 

 엄청 더운 날씨였지만 짠디다사 사원(Pura Candidasa)의 언덕에 올라보니 연못과 바다가 한번에 조망이 되고, 주변의 리조트와 레스토랑도 한눈에 들어온다. 땀을 흘리면서 올라 왔지만 잘 올라 와 보았다는 느낌이다. 산 중턱까지 오르니 바람도 불어와서 시원하기도 하다. 짠디다사가 장기로 투숙하는 외국인들이 조용히 쉬다가는 곳이라고 했는데 내려다보니 조용함을 즐기는 사람들이 선호할만한 지역이라는 느낌이 온다. 다음에 발리에 오게 되면 이곳에 와서 몇 일 쉬어가도 좋을 것 같다.   

 

 

 

 

 

(21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