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그리스, 터키('14.5)

터키 여행 26-18 (에페소 셀수스 도서관) (2014.5)

남녘하늘 2016. 9. 6. 06:32

 

 하드리아누스 신전을 지나  조금 내려오니 좌측으로 셀수스 도서관(Celsus Library)이 나온다. 셀수스 도서관은 에페소 유적지의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답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정말 그 옛날에 이런 건축물을 지었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입체감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양식의 우아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도서관은 로마건축가가 설계한 것으로 정면 장식은 그 당시의 로마 건축양식을 완벽하게 반영했다고 한다. 미적인 감각이 없는 내가 보아도 에페소에 있는 그 어떤 건축물보다 멋있어 보인다.   

 

 

 

 

 

웅장하고 화려하며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고대 건축물의 최고봉이란 찬사를 받는다고 하는데, 사실 도서관이라고 하기에는 건물이 지나치게 화려한 느낌이다. 셀수스 도서관은 서기 135년 로마시대에 아시아지역의 통치자이며 독서광이었던 셀수스 플레마이아누스의 아들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지금은 많이 훼손되어 도서관의 정면 입구만 남아 있지만, 남아 있는 건축물에서 아름다운 코린트식 기둥과 함께 지혜, 운명, 학문, 미덕을 상징하는 네명의 여인상도 볼 수 있다. 네 여인상은 오스트리아에서 발굴할 당시 진품은 자기네 나라로 가져 가서 지금은 복제품을 세워 놓았다고 한다.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4개의 코린트식 쌍기둥 뒤쪽에 건물로 들어가는 세개의 입구가 있다. 뒷쪽에는 도서관이 있었던 터만 남아 있어서 화려한 전면 외관에 비해서는 많이 차이가 난다. 셀수스 도서관은 당시 최고의 도서관으로 1만2천여권의 장서가 소장되어 있어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학문의 중심지를 놓고 경쟁을 벌렸다고 한다. 건축 당시 습도와 외부 공기의 변화로부터 책을 잘 보관하기 위해 벽돌로 된 내벽과 외벽의 간격을 1m 이상 떨어진 이중벽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정면에 비해서는 너무 차이가 나게 허름한 느낌이다.    

 

 

 


 도서관 옆으로 대리석으로 된 두개의 문은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의 문으로, 노예의 신분에서 자유인이 된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가 돈을 번뒤에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세운 문이라고 한다. 로마의 개선문 처럼 3개의 통로로 되어 있고, 문의 뒤쪽으로 아고라가 넓게 펼쳐져 있다. 아고라는 항구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해상로를 중심으로 국제간의 무역이 주로 이루어졌다. 인도에서부터 유럽과 지중해 각지에서 몰려온 상인들이 식료품, 향료, 금은보석, 도자기 등 상품을 거래했고, 심지어 노예들까지 거래한 시장이었다고 한다. 

 

 

 


 아고라에 들어가보니 한쪽 끝이 아득히 멀리 보이는데 200여m는 될 듯하다. 운동장보다도 더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이 곳은 도시의 중추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시장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문제가 있을 때에는 집회의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고 때로는 종교적인 문화 행사에 사용되었다. 아고라는 두 줄의 화랑으로 둘러싸여있고 그 뒤에 상점들이 늘어서 있어서 에페소의 중앙시장 역할을 했다. 다른 이고라가 모두 그러하듯이 이 시장의 한 가운데에도 신전이 위치해 있었고 하는데, 지금은 무수한 기둥들만이 널브러진 채 남아 있다. 

 

 

 

 

 

 아고라를 구경하고 나서 다시 셀수스 도서관 앞에 모여서 우리 일행 단체 사진을 찍었다. 터키여행 내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가이드와도 함께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 최정인(?)씨는 전문지식이 많고 알려주고 싶어하는 것은 좋았는데, 늘 뚱한 모습을 보여서 내맘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개인에 대한 호불호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비쳐졌을지는 모르겠고, 나도 그에 합당하게 불량고객이 되어 주었다. 에페소 유적지 중에서 셀수스 도서관 앞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었는데 그런 것을 보면 사람들이 보는 느끼는 감정은 모두 비슷한 모양이다.       

 

 

 

 셀수스 도서관에서 바라본 크레테스 거리(Curetes Street)와 하드리아누스 신전(Temple of Hadrian) 및 스콜라스티카 목욕탕(The Bath of Skolasticia).

 

 

 
 셀수스 도서관과 그 주변을 구경한 후 우리는 도서관에서 원형대극장까지 이어지는 대리석 길로 이동했다. 길 바닥을 대리석으로 깔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아르테미스 신전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이 길에는 부서진 건축물의 조각들도 산재해 있고, 세계 최초의 광고판도 볼 수 있다. 현재의 모습은 5세기 때의 것으로 길 밑으로는 하수시설이 대리석 길 전역을 따라 설치되어 있었다고 하며, 길을 따라서 왼편이 조금 전에 갔다 왔던 아고라가 있다.     

 

 


 대리석 바닥에 새겨진 세계 최초의 광고판이라고 말하지만 신빙성은 있어 보이지만 사실인지의 여부는 정확하지는 않다. 여인과 사랑을 나누려면 돈을 가지고 발이 향하는 방향으로 오라. 단 발의 크기가 이 발보다 작으면 안된다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믿기가 조금 어렵다. 재미로 들도 재미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고대의 매춘업소로 추정되는 유곽이 셀수스 도서관 건너편 쿠레테스 거리와 대리석 거리가 시작되는 곳에 있었다고 한다. 엄청난 크기의 유곽이 도서관 건너편에 있었다니 그 시대에는 매춘이 합법적으로 운용되었던 것 같다.  

 

 


 대리석길로 지나가면서 담너머로 다시 아고라를 내려다 보았다. 도서관 옆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의 문쪽에서 보았을 때와는 그 느낌이 많이 다르다. 기원전 1세기에 세워진 이 아고라는 4세기에 있었던 지진으로 인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이곳도 복원을 하기 위해서 많은 건물의 잔해를 가기런히 쌓아 놓았다. 빨리 복원이 되어서 현대의 사람들이 항구도시로서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상업활동도 활발했었던 그 시대의 아고라의 모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리석 거리가 끝나는 구역에 있는 대극장은 피온산의 사면을 이용해서 만들어졌는데 연극공연이나 시의회가 개최되었던 장소로 에페소 시민들에게 중요한 곳이였다고 한다. 대극장의 모양은 바닥을 바라보며 부채꼴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헬레니즘시대에 처음 지어졌으나 로마시대에 각 부분이 확장되어 무대에서 극장꼭대기까지의 높이가 60m에 이르고, 약 2만 5천여명의 관중이 들어갈 수 있는 에게해 인근에서 가장 큰 극장으로 꼽힌다. 계단의 좌석에 쓰였던 대리석들이 후에 다른 건물을 짓는 자재로 사용되는 바람에 원형이 더욱 많이 훼손되었다. 무대의 1층과 2층 건물은 네로황제(AD54~68)때 만들어졌고, 3층은 셉티무스 세베루스황제(AD193~211)때 만들어졌다.  

 

 

 

 

 

 피온(Pion)산에서 당시 바다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져 있었는데, 대극장 앞쪽에 있었던 바다가 퇴적물이 쌓이면서 4km나 뒤로 밀려갔다고 한다. 소리가 무대 뒤의 바다쪽에서 불어 오는 바람을 타고 객석 먼 곳에 까지 소리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무대에서 극장 꼭대기까지의 높이가 60m에 이르러 거대한 극장이다. 이 대극장은 콘서트와 연극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종교적, 정치적 토론과 검투사와 동물의 싸움 등을 위해 사용되었다고 한다. 관중석은 외곽까지 약 150m의 크기로 약 25,000명이 둘어 갈 수 있는 극장이었는데 고고학자들이 당시 에페소의 전체인구가 25만 명 정도라고 추정하는 근거는 당시 거주 시민이 이 극장 수용인원의 10배는 되리라고 추산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침 우리가 극장에 들어갔을 때 인도에서 온 관광객이 홀 중앙에 모여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웅장하게 극장 뒷쪽까지 울려 퍼졌다. 나도 미리 한곡 부를 준비를 하고 갔으면 한번 시도해 보았을텐데 준비를 하지 못해서 참았다.   

 

 

 

 

 

 

 3층으로 된 무대 정면은 기둥, 부조물, 그리고 동상들로 장식되었으며, 무대는 높이 2.7m인 귀빈석 위에 있었고, 좌우에 위치한 경사로를 통해 무대에 갈 수 있었다. 지금도 여름이면 이곳에서 공연과 축제행사등이 이루어지고 있다는데 대극장의 상태로 보아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엄청난 규모의 극장을 구경하고 나오니 바깥쪽에는 축대가 무너지지 않게 쇠파이프로 돌과 돌 사이를 받쳐 놓았다. 이곳도 복원이 덜 끝난 것인지 쌓여 있는 유적들이 수북하다. 이제는 너무나 많이 보아서 감동이 일지 않는다.    

 

 

 

 

 대극장에서 나오면 항구로 향하여 곧게 뻗어있는 아르카디안 거리를 만난다. 대극장은 아르카디안 거리에서 바라 보아야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모두 이곳에서 대극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도로의 폭이 11m이고 길이가 600m에 이르렀다는 이 거리는 대극장에서 항구까지 연결되어 있었고, 길 양쪽에 상점으로 이어져 있고 바닥에는 모자이크가 만들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르카디안 거리는 멘데레스(Menderes) 강에 토사가 쌓이면서 해안선을 후퇴되어 바다로 부터 점점 멀어져 항구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고, 항구가 사라지자 천년이 넘게 에게해 최대의 항구도시, 상업도시로 번영을 누렸던 에페소의 영화도 끝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거리가 200m만 남아 있다.

 

 

 

 

 

 

 에페소는 로마보다 고대 로마시대의 유물들이 즐비하고 그리스보다 더 그리스다운 곳으로 수천년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 있는 곳이다. 아직도 유적의 1/3 정도밖에 발굴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터키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에페소와 히에라폴리스의 유적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 발굴 중인 유적지의 둥근 기둥들을 뒤로 하고 소나무 숲으로 들어오니 바람도 조금 불면서 몇시간동안 뙤약볕에 있었던 몸이 식는듯한 기분이다.  소나무 숲을 조금 지나가니 드디어 북쪽 출입구가 나온다.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북문 출입구로 나오니 남쪽 출입구보다 훨씬 더 많은 상가가 있는데 상인들의 호객행위가 이어진다. 이곳에도 한국 관광객이 많은지 어눌하지만 우리 말을 사용하는 상인이 많이 있다. 그만큼 터키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에페소도 중요관광지 중에 한곳인 모양이다. 기독교 신자였다면 한번 가고 싶었던 성지를 순례하는 여정이었겠지만 나는 기독교도가 아니어서 성지순례의 의미가 아닌 고대 유물을 확인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고, 오늘 하루도 눈이 호강하고 좋은 곳을 많이 둘러 보았다는 생각이다.   

 

 

 

 

 

(19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