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중국 노산,태산('13.8)

중국 노산, 태산 산행 9-8 (웨이하이 :威海) (2013.8)

남녘하늘 2016. 2. 14. 09:31

 

 웨이팡(濰坊)을 출발해서 웨이하이(威海)로 이동중에도 몇 개의 자그마한 도시를 지나친다. 오늘 저녁에 배를 타고 귀국하게 되는데 칭다오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웨이하이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웨이하이로 가는 것이다. 웨이하이시로 이동하면서 산둥성의 성도인 지난(제남:济南)에 거주하고 있는 가이드가  산둥성에 해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이 지역의 지역 총 생산은 전국 2위로, 인구는 9,3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생각보다 산업이 잘 발달한 곳인데, 연간 강수가 500~600mm 정도에 불과해 벼농사가 불가능 하다는 이야기도 해준다. 실제로 이동중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농경지에는 옥수수나 채소 같은 것이 주를 심어져 있다. 가이드 말로는 이곳이 농사가 중심이라는데, 지금은 밀을 재배하는 시기가 아니므로 밀밭을 볼 수는 없다고 한다. 산이 보이지 않은 엄청 넓은 땅을 지나며 옥수수가 심어져 있는 농촌풍경을 잡아 보았다.      

 

 

 

 

 웨이하이를 가는 동안에 주상복합아파트 같아 보이는 공동주택도 지나고, 붉은색 기와가 있는 농촌 마을도 지난다. 가끔씩 중국을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중국의 변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우리나라가 중국과 비슷한 지위를 누리고 살 수 있는 시기가 많지 않았음을 깨닫고 정말로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웨이하이 시내에 가기 전에 해안을 따라서 직선 도로가 이어진다. 칭다오에 도착하던 날을 제외하고는 내륙으로만 다녔는데 이제 다시 해안이 나온 것이다. 도로의 왼쪽으로 해변에는 백사장이 이어진다. 중간중간 양어장으로 보이는 곳과 염전 같아 보이는 곳도 지나친다. 또한 끝없이 모래밭으로 이루어진 사구도 지나치게 되는데 그 길이가 엄청나게 길다. 한번 내려서 구경을 하고 갔으면 좋으련만 버스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웨이하이를 향해 달려서 아쉽다. 사구지역에는 소나무가 심어져 있어 바로 바다가 보이지 않았지만, 가끔씩 도로가 해안가로 지나칠 때는 조그마한 포구와 정박해 있는 어선들도 보이곤 한다. 웨이하이도 도시의 3면이 바다와 접하고 있는 도시라고 한다.       

 

 

 

 

 

 웨이하이 도심을 10여km 정도 남겨 놓고 디즈니랜드의 성을 연상시키는 중국 중앙TV의 영시성(影视城)이라는 건물을 지나간다. 중국영화의 찰영장과 함께 아이들이 놀수 있는 테마파크 같은 곳이라고 가이드가 알려준다. 지나가는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버스에서 잠자지 않고 있었더니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이 있다. 이제는 아이들이 다 커버려서 이런 곳에 놀러올 일이야 없겠지만 웨이하이를 기억하기에는 좋은 소재다.  

 

 

 

 9시 30분에 웨이팡을 출발했는데 중간에 휴게소에서 약간의 휴식을 취하긴 했지만 웨이하이 도심에 도착한 것이 오후 1시가 넘었으니 3시간이 훨신 넘게 걸렸다. 오늘은 웨이하이에서 해상공원을 방문하는 것 이외에 시내 관광이 따로 없을 예정이어서, 관광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시내를 구경하며 건물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도심에 들어오니 웨이하이 시립병원(市立医院))도 지나가고, 백화점과 호텔을 지나친다. 처음 접하는 웨이하이의 모습은 깨끗하고 아담한 느낌이다.   

 

 

 

 

 

 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지에 있는 환취루공원(环翠楼公园)을 지나친다. 다른 곳은 몰라도 시간적인 여유가 조금만 주어졌어도 높은 언덕에 있는 환취루 공원은 가보고 싶은데 혼자하는 여행이 아니어서 생각뿐이다. 다음에 다시 웨이하이를 와서 한번 가 보는수 밖에는.... 다행이 점심을 하기 위해 도착한 식당이 환취루공원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공원 방문은 하지 못했지만, 공원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은 남길 수 있었다. 환취루 공원은 명나라 때 왜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1489년에 만들어진 4층 목조 건물로 일본군에 의해 1944년에 소실되었다가 1978년 재건되었다고 한다. 공원 입구에 있는 동상은 청일전쟁 당시 중국순양함 치원호의 함장이었던 등세창(1849~1894)의 동상이라고 한다.  

 

 

 

 

 웨이팡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출발했는데 버스에서만 시간을 보내다가 배도 꺼지지 않은 듯한데 점심시간이 되었다고 식사부터 하게 된다. 이번 여행중 중국에서 먹는 마지막 식사인 셈이다. 우리 일행의 숫자가 많다보니 어느 식당을 가던지 간에 큼직큼직한 식당을 잡아 놓아서 시원한 느낌이다. 중국 사람들의 식사습관은 항상 푸짐하게 한상 가득 차려놓고 먹는다. 낭비가 심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마도 국민성의 차이가 아닐까싶다. 한국에 여행오는 중국사람들의 가장 큰 불만은 식당에서 먹을 것을 적게 주는 것이라고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길건너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환취루 공원 입구까지라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전체 인원을 통제하는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 꾹 참았다. 낭비되는 시간을 생각하고 내 빠른 걸음이면 잠시 갔다 오더라도 진행에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겠지만, 한사람 한사람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개별행동을 하게 되면 전체적인 통제에 문제가 생길 것을 고려했다. 다음에 언제든지 개별 여행으로 웨이하이에 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개별행동을 자제하게 만들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가이드가 일행들의 주문을 받아 이곳에서 생산되는 술을 가져다 주어 받았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산에 함께 다니면서 친해져서 가이드 생활과 중국에서 조선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애환에 대해서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조선족 가이드가 웨이하이에 도착하고 나서는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 이제는 산행을 잘 마치고 나서 자신들의 생활전선으로 돌아가 우리를 상대로 지갑을 열게 만드려고 한다. 충분히 이해는 가는 행동이지만 우리가 적지 않는 비용을 지급하고 조금은 력셔리한 여행을 하고자 했는데, 결국 면세점이라면서 웨이하이시 중소기업국이라는 간판이 있는 건물의 한인이 운영하는 매장으로 안내했다. 이런 매장보다는 점심을 하러 가면서 지나쳤던 환취루공원이나 가 보았으면 좋겠는데....       

 

 

 

 

 

 다른 사람들과 함께 면세점이라고 불리우는 매장에 입장은 했지만 이런 허름한 장소에서 구매할 상품도 없었고, 처음부터 구입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형식상 입장했다가 바로 나와 버렸다.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기 싫어서 나와 뜻이 맞는 동료와 함께 매장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명품도 아닌 옷가지나 가방을 비싼 돈주고 사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다. 매장이 있었던 이 지역은 그런대로 웨이하이 내에서는 중산층이 살고 있는 지역인 듯하다. 바로 옆에 법원으로 보이는 관공서 건물도 있었고, 점심을 먹었던 중심 상가지역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어서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환취루까지 갔다 오기에는 거리가 있어서 참았다.       

 

 

 

 

 

 통일로(統一路)는 비교적 웨이하이의 중심 도로 중에 하나로 보였는데 이 도로를 중심으로 한인들이 밀집해서 살고 있는 모양이다. 이곳에는 중국어와 함께 쓰여져 있기는 하지만 중국인지 한국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많은 한글 간판이 있다. 음식점에서 세탁소, 안마방 심지어는 나이트클럽까지도 한글 간판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웨이하이에는 한국 사람도 꽤 많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갔었던 짝퉁 면세점도 통일로에 있었다. 나중에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웨이하이에는 한국인이 많을 때는 3만명도 넘게 살았는데 지금은 많이 줄어서 1만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한다.       

 

 

 

 

 

 웨이하이에 와서 특색있게 보았던 것 중 하나가 도로표지판이다. 골목마다 거리이름을 적어 놓은 표지판이 많이 설치되어 있었느데 더 특히한 것은 도로표지에 동서남북이 표시를 해 놓았다. 지도나 안내판을 보고 방향을 판단해야 하는데 낯선 곳에서는 방향을 알아내기가 힘들다. 요즘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서나 겨우 방위표시를 하고 있는데 우리보다 훨씬 빨리 앞선 도로표시판을 설치해 놓았다. 나의 경우에는 처음간 지역에서 감각적으로 북쪽 방향을 찾아내고 그 지점을 중심으로 도시 전체를 머리속에 그리기 때문에 방위는 굉장히 중요한 정보이다.   

 

 

 

 

 

 큰 길을 벗어나 주민들이 살고 있는 동네를 보고 싶어서 뒷골목을 찾아서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동네에는 가로수로 플라타나스 나무가 제법 무성하게 자라서 터널처럼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이 형성된지는 꽤 오래 된 듯하다. 길가에는 보행자 도로를 거의 다 차지한채로 좌판을 깔아 놓고 과일과 생필품을  판매하고 있는 상인들이 보였다. 일시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상설로 운영되는 것 같다. 아파트가 아닌 일반 주택은 붉은 색 기와로 되어 있어서 특이했다.  

 

 

 

 

 거리에 있는 상인에게서 열대과일인 리치를 조금 구입했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엄청 큰 나라도 보니 이런 열대과일도 수입이 아니라 자국 생산품이다. 영어를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현지 상인과 중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내가 의사소통을 하려고 생각보다는 흥정이 쉽지 않았다. 이곳에는 관광객이 들어오는 장소가 아닌지라, 상인이 계산기도 가지고 있지 않아 엄청 힘들게 흥정을 했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 이런 과일을 가져 갈 수 없지만, 오늘 배를 타고 가게되니 가는 길에 동료들과 나눠 먹을 생각으로 조금 많이 구입했다. 대로변이 아니라서 그런지 10년전에 중국을 다닐 때 보았던 것처럼 윗통을 벗고 있는 상인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중국에서 올림픽을 개최할 때 옷 벗고 다니지 말자고 엄청 캠페인을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면세점에서 쇼핑을 마치기 전에 일행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다시 돌아왔다. 그래도 내 생각과는 달리 일행 중에서는 이곳에 몇가지 물품을 산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가이드의 표정이 밝다. 공식적으로 웨이하이에서 관광을 하기로 되어 있는 행복공원이 있는 해변으로 이동한다. 면세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웨이하이 시청사와 시청앞에 있는 인민공원도 지나고 또 조금 더 이동하니 바로 해안이 보인다. 우리가 점심을 먹고, 돌아다닌 곳이 모두 해안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해변에 있는 행복공원 근처에는 국제여객터미널이 옮기기 전의 구 여객터미널과 보따리 상인으로 인해 생겨났었던 한국음식점, 의류점, 잡화점 등이 건물이 보였다.   

 

 

 

 

 

 얼마전까지는 한국으로 가는 위동페리도 이 항구의 국제여객선 터미널에서 출발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새로 생긴 20km 남쪽의 신청사에서 출항한다고 한다. 우리가 타고 한국으로 가는 배는 아니지만 커다란 여객선이 아직 보인다. 웨이하이 바로 앞에 있는 리우꾸엉다오(유공도: 刘公岛)에 가는 배는 아직 이 항구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이어지는 싱푸공원(행복공원:幸福公園)은 웨이하이를 대표하는 공원으로, 사계절 시민과 관광객이 찿는 공원이다. 행복공원에는 공원을 대표하는 커다란 씽푸먼(행복문: 幸福门)이 우뚝서 있으며 성현들이나 국제적으로 유명한 철학자, 음악가, 미술가, 발명가 등 많은 사람의 동상을 세워져 있다.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휴식을 취할수 있도록 조경과 편의시설들이 잘되어 있었다. 서양사람의 조각이나 동상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서 중국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9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