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일본 간사이 ('16.7)

간사이 여행 11-7 (교토 모모야마성) (2016.7)

남녘하늘 2018. 2. 24. 00:08


 이번에도 당숙께 말해서 작은 할아버지 묘소에 성묘를 하기로 했다. 나는 숙부님 댁에 올 때마다 성묘를 했지만 아들은 교토에 처음이고 또 작은 증조할아버지 산소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같이 가자고 했다. 작은 할아버지의 산소는 숙부님 댁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에 있다. 일본의 장례 문화는 우리처럼 따로 산에 산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 가까이 있는 절에 있는 납골당에 모시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화장에 대한 혐오감이 없고 행정적으로 매장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화장을 한다고 한다. 작은 할아버지 납골묘는 교토(京都)시와 우지시(宇治市)와 경계에 있는 나즈마한 산에 있는 부코쿠지(仏国寺)에 있다. 






 집에서 나설 때부터 비가 조금 내렸든데 부코쿠지(仏国寺)에 도착하니 조금 더 내린다. 납골당이 있는 부코쿠지(仏国寺는 우리나라 경주에 있는 불국사와 같은 이름의 절이였다. 이 절에 있는 납골묘은 거의 대부분이 재일교포 1세의 묘지였다. 사찰이 일반 가옥들과는 조금 떨어져 있고 우지시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이제는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는 6촌 동생들과도 교류의 끈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 다음세대에도 교류의 끈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 할아버지 산소 방문을 했다. 그 바램이 이루어지길 기원해본다. 






 숙부님께서 작은 할아버지 묘소를 다녀 오는 길에 멀지 않은 모모야마(桃山) 성을 한번 둘러 보자고 하신다. 그동안 여러 번 왔어도 근처에 성이 있는줄 몰랐는데 1964년 주변에 유원지를 만들면서 성의 천수각을 복원했다고 한다. 당연히 고증에 입각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기는 힘들고, 후시미 모모야마(伏見桃山) 성이라고 불리지만 후시미성은 아니다. 생각 보다 붉은색 톤으로 예쁘게 지어 놨기 때문에 한 번 볼 만은 하다. 지금은 유원지도 폐쇄 되고, 야구장을 비롯한  체육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후시미 모모야마(伏見桃山) 성터에 세워진 모모야마 성은 근대의 건축물이다. 원래 후시미 모모야마성은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직접 건축을 지휘하여 만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노후를 위한 성이었다고 한다. 시즈키(指月)산에 축성했다가 1596년 발생한 지진으로 성이 무너지자, 500m 떨어진 고하타(木幡)에 새로 축성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성에서 1598년 사망하였고, 권력을 차지하게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성을 사용하게 된다. 이후 쇼군의 선하(宣下) 의식의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오사카 전투 이후 그 역할이 오사카 성으로 옮겨가면서 중요성이 줄었다. 결국 후시미 성은 이에야스가 은거한 1625년에 폐성되었다. 폐성 이후 성곽 일대는 꽃밭으로 개간되었는데 그 이름을 모모야마(桃山)라고 했기 때문에 모모야마 성이 후시미 성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도쿠가와 가문의 에도 막부는 이 성을 완벽하게 해체시켜 교토의 사원과 신사에 자재로 사용했다. 고코노미야 신사의 문도 그 때 오테몬의 일부를 옮겨 온 것이고, 오하라에 있는 호센인에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유원지를 만들면서 복원한 성이어서 고증이 부족했을 것이고, 그 때문인지 성을 출입할 수 없게 막아 놓아서 들어갈 수는 없었다.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성문을 개방하는 모양이다. 그냥 성안 공원을 한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성 구경을 끝낸다.    






 무언인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방문했는데 그냥 복원해 놓은 오테몬과 천수각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침 시간이기도 했지만 찾아오기에는 교통편이 불편하고 교토에서도 유명한 관광지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아 찾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관광객이 없으므로 상점이고 기념품이고 아무것도 없이 넓은 주차장이 기억에 남는다. 복원한 성의 정문인 오테몬(大手門)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의 문장인 고시치키리몬(五七桐紋)  문장이 붙어 있다. 현재 일본정부를 상징하는 인장이기도 하다. 






 모모야마 성을 구경하고 나오는 길에 성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메이지 덴노(明治天皇)릉에 가 보기로 했다. 교토에 여러 번 왔어도 이곳에 능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모모야마 성과 마찬가지로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곳에 있고, 교토에 관광을 와서 관광코스로도 적합하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메이지 덴노는 일본의 근대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도쿠가와 막부 설립 후 일본 고유 종교 신토의 대제사장 역할 외에 어떤 권력도 가지지 못 했던 일본의 천황과는 달리, 거의 유일하게 절대적인 권력을 구가할 수 있었던 인물 중 하나다.      







 능은 입장료도 받지 않고 깨끗하게 공원처럼 꾸며 놓았는데, 엄숙할 것 같은 분위기와는 달리 주변 동네 사람들이 산책을 나오거나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차량 통제구역을 지나 한참을 걷다가 높은 언덕이 나왔고, 긴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능이 나온다. 이곳에도 도리이가 서 있었고 입장이 금지된 구역 뒷쪽으로 메이지 덴노의 능이 보인다. 우리나라의 왕릉과는 확연하게 다른 점은 봉분을 당시 일본의 개화기 시대 최첨단 소재중의 하나인 콘크리트를 사용해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흙과 잔디 그리고 석재를 사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왕릉과는 너무나 달라서 이상한 느낌이다.   






 능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전망은 참 좋다. 모모야마 성과 능 자체가 높은 지역에 있는데 다시 능은 산의 정상부에 가까이 있어서 우지시(宇治市)가 내려다 보였다. 교토에 와서 볼 것도 많은데 굳이 시간을 내서 이곳까지 방문할 필요는 없었지만, 역사를 좋아하는 아들이 가까이 있는 이곳을 한번 방문해 보고 싶어했다.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작은 할아버지 산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기에 숙부님 안내로 편하게 왔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보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이곳까지 올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당숙 댁으로 돌아와서 기온 마쯔리를 구경하러 가는 길에 동생이 운영하고 있는 체인점의 본사 건물을 방문했다. 고립(GOLIP)이라는 회사로 일본 외식 벤쳐기업 중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기업 중 하나라고 한다. 아직은 숙모님께서 도움을 많이 주고 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성장성이 있는 기업이다. 현재 교토 큐가츠(京都 勝牛)를 비롯해서 베지테지야(ベジテジや) 등 여러 체인점을 직영하거나 프랜차이즈로 운영하고 있다. 일본에서만 100개 이상의 매장을 가지고 있다.  






 건물 중간층에는 직원들이 휴식할 수 있는 공간과 사업상의 파트너들을 만나서 미팅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아직은 가족의 도움이 필요한 가족회사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는 규모도 크고, 잘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생이 재일교포 3세로 한국말을 잘 했으면 좋겠지만 일본에서 한국 국적을 잃지 않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사장인 동생방에 걸려 있었던 サムギョプサル革命(삼겹살 혁명) 이라고 쓰여 있던 액자. 꽤 오랫동안 준비하고 정성을 기우리고 있어 사업이 잘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더 좋은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사무실과 작업실을 두루 살펴보고 나왔다. 고기는 일본에서생산된 제품을 사용하지만 부재료는 한국에서도 많이 수입하고 있다고 한다. 







(8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