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과 생활 /나의 단상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하며 (2016.11.19)

남녘하늘 2018. 5. 5. 00:30


 지난주까지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 책임을 물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3차례의 촛불집회가 서울 광화문 광장을 비롯해서 전국적으로 열렸다. 3차례의 촛불 집회가 있었는데 한번도 참석하지 못해서 이번주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참석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광화문으로 나갔다. 지난1987년. 군생활을 마친 뒤 복학해서 대학 4학년이었을 때 취업에 대한 부담이 있었지만 6월 민주화 항쟁에 참석한 이래로 처음인 듯 싶다. 그 당시에도 항쟁에 참석하지 않으면 나중에 세월이 흘러 민주화를 쟁취했을 때 그 당시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을 때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싶어 예비군복을 입고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행렬에 참석했었다. 그래서 얻은 것이 민주화이고 개인적으로는 비염을 얻었다. 


 지난주에는 전국적으로 100만명의 국민이 모여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지난 광화문 촛불집회는 국내로 봤을 때는 1987년 6월 항쟁이후 최대의 인원이고, 세계적으로 봐도 20세기 이후 최대 인원이 모인 시위라고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또는 눈치를 보면서 행동하지 않는다면 다음에 또 똑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뭐라고 답변할 수 있을까? 지난주 촛불집회 이후 청와대에서 나온 공식 반응은 '어제 국민 여러분의 목소리를 무거운 마음으로 들었으며 현 상황의 엄중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또한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라는 것이였다. 대통령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주도로 국정을 정상화하겠다는 의지의 표명한 것이다. 아직도 국민의 정서가 어떤지를 모르고 있으니 한심하고 답답하다.    






 혼자서 참석하기에는 뻘쭘해서 친구 성권이와 함께 광화문에서 만나 동참했다. 지난 17일 대입 대입 수능 시험을 마치고 나서 오늘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이는 젊은 친구들도 많이 보였다. 아마도 최순실이 자기 딸 정유라를 부정한 방법으로 대학을 보낸 것에 대한 불공정함 때문에 젊은 학생들까지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 광화문 광장에서는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에 엄청난 인원이 참석했다. 주최측(20만명)과 경찰측(7만명)측의 계산 인원이 워낙 차이가 나서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국민의 뜻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한 인원이었다고 생각한다.    





 날이 서서히 어두워져 간다.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쌀쌀한 날씨 탓에 어린 아이와 함께 참석한 가족단위의 집회 참석자는 일부 자리를 뜨기도 한다. 광화문으로 들어오지 못한 참석자들은 교보문고 앞을 중심으로 해서 종로, 태평로, 율곡로, 세문안로, 서울시의회 앞쪽 등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다음번에는 작은 아들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석해 보아야겠다. 경찰들도 많이 나와 있었지만, 자신의 업무가 치안유지였을 뿐, 심정적으로는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 서로 폴리스 라인을 지켜가며 평화 집회를 이어 나가고 있다. 감동스러운 장면이다.      







 저녁 9시부터는 민중총궐기대회를 마치고 청와대 방향으로 촛불행진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 아쉽게 행진할 때까지 있지 못하고 돌아왔다. 조금 따스한 복장을 갖추어야 했는데 따뜻한 옷을 입지 않아서 밤 늦게까지 있기에는 조금 추웠했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내가 행진할 때까지 있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앞으로 몇 번의 촛불 집회가 이어질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나중에 다시 참석해서 행진까지 참석할 생각이다. 집으로 오는 길에 지하철 시청역 근처를 지나쳤는데 이곳에서는 박사모 등 보수단체 회원이 모여서 '빨갱이로부터 대통열을 구하자며' 맞불 집회를 열고 있었다. 평화적인 모임을 폭력 모임으로 만들고 싶은 모양이다. 





 내 사진기로는 찍을 수 없지만 당일 언론사에서 찍은 촛불집회 사진 몇 장을 올려본다. 나도 저 인원 속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언제까지 계속 되어야 국민의 소리를 알아차리고 스스로 물러날지 끝까지 기다려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