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일본 큐슈 ('05.7)

일본 큐슈 가족여행 5-1 (2005.7)

남녘하늘 2008. 3. 17. 00:03

 

지난 겨울 온 가족이 큐슈여행을 떠났으나 진영이의 몸살로 인해 나가사키를 비롯한 큐슈의 몇 곳을 돌아보지 못해 여름방학을 맞아 다시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집사람은 집에서 남자들을 떠나 보내고 휴가를 보내겠다고 해서 아들 둘과 함께 다시 6박 7일간의 일본 큐슈지방의 여러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집사람은 남자 셋을 떠나 보내고 집에 남아 가장 휴가다운 휴가를 즐겼다고... 날씨는 덥고, 강행군으로 인한 피로는 누적되었지만 그래도 여행은 즐겁다. 다만 학생을 데리고 다니려면 한여름이나 한겨울을 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첫여행 목적지는 지난 겨울 몸살로 인해 방문하지 못했던 나가사키. 역사에 관심이 많은 큰아이를 위한 여행지이다. 하카다 역에서 나가사키로 가는 카모메 열차에서 진영이와 시영. 작은 아들은 형을 만만하게 생각하고 늘 형에게 장난을 먼저 건다. 그리고 나서 문제가 생기면 그때부터는 모든 책임을 형에게 전가하곤 한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손은 엉뚱한 곳에 가있다.  

 

 

 

나가사키 역사 안쪽에 전시되어 있는 모형배. 열차로 나가사키에 도착하게 되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조형물이다. 아마 대다수의 여행자가 이 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게 되지 않을듯.. 나가사키에 방문한 기념으로 우리도 한장 찍었다.  

 

 

 

 

 

지나간 겨울 진영이의 감기로 인해 방문하지 못했던 나가사키를 6개월만에 다시 찾게 되었다. 이로서 내가 약속한 것은 지켰는데 아들이 약속한 것은 언제쯤 지켜줄런지 의문이다. 마구 베풀기만 해야 한다면 조금은 억울한 느낌인데 알아주기는 할까??  

 

 

  

 

원폭낙하중심지와 평화공원을 찾아가는 길에 마쓰야마쵸(松山町)전차역에서 내리니 바로 옆에 나가사키 육상경기장이 있다. 날씨가 무척 더운 한낮임에도 운동장을 달리는 나처럼 정신나간(?) 사람들도 있었고, 운동장 한가운데에선 이날 마침 나가사키 현(縣)의 소방관들이 모여서 각종 경연대회를 하고 있었다.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그들을 보면서 역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일본인들을 다시 볼 수 있었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시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반경 2Km를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고 7만3천884명의 목숨을 한순간에 빼앗아갔다. 일본은 원자폭탄이 낙하된 지점에 평화공원을 만들어 평화를 기원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이 생각하는 평화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알수가 없다. 자국민에게 역사를 제대로 가르키지 않으면서 자신이 원폭에 의한 피해국임을 강조하면서 주변국에 고통을 준 것을 기억하지 않으려하는 이중적인 태도... 일부 소수의 우익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비역사적인 행태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수의 일본인들은 친절하고 친한적이다. 소수 우익이 문제이다. 그러나 그들을 경계해야 한다. 역사은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바뀔수 있으므로. 역사의 주인공은 민중이지만..
공원계단을 올라가면 원폭투하 당시 목마름에 숨을 거두어간 사람들을 추모하기위해 만들어진 평화의 샘에 도착한다. 평화의 샘 분수 너머에는 1955년에 완성된 평화기념상(平和祈念像)이 있다. 
 

 

 

 

 

 

  

청동으로 제작된 기념상은 오른 손은 원폭의 위협을, 수평으로 펼친 왼팔은 평화를, 가볍게 감은 눈은 원폭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것이라고 한다. 평화의 샘에서부터 기념상으로 오는 길 좌우에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온 평화의 조각상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기념상의 왼쪽 편에는 원폭피해 무연고 사망자 추모 기념실도 있었다.  

 

 

 

  

 

 

평화공원에서 원폭자료관으로 가는 길목에 있던 원폭관련 석조기념물. 시간이 충분한 여행이었다면 이런 것도 자세히 읽어보고 다녔겠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아야하는지라 대충 배경으로 사진만 한장 찍고 지나쳤다. 석판에 새겨진 그림으로 보아 원폭피해와 관련되어진 것임에는 틀림없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와 8월 9일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단 두 발의 원자폭탄으로 일본은 항복을 선언했고 2차대전은 막을 내렸다. 또한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지 1주일만에 우리나라는 해방이 되었다.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에는 1945년 8월 9일 11시 2분에 멈춘 벽시계, 까맣게 타버린 시체, 부서져 내린 건물의 잔해, 원폭의 파괴력과 재해를 알려주는 많은 자료가 전시되어 참상을 알려주고 있다. 자료를 보면 미군은 당시 히로시마에 이어 지금의 기타규슈 지역에 있는 고쿠라(小倉)를 원폭투하 목표지점으로 잡았으나 흐린 날씨로 인하여 방향을 선회한 곳이 무기창고가 있던 나가사키의 미쓰비시 공장이었다고 한다.

 

 

 

 

 

 

원폭자료관에서 나와 정면의 계단을 내려가면 왼쪽에 원폭으로 피해를 당한 재일 한국인 추모비가 조그맣게 설치되어 있다. 추모비 옆에 설치된 안내문에는 1945년에 나가사키시와 주변에 3만여명이 징용으로 끌려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원폭투하로 2만여명이 피폭 당하였고 그중 약 1만여명이 폭사했다고 되어있다. '이름없는 일본사람들이 얼마간의 돈을 모아 이곳 나가사키에서 비참한 생애를 보낸 1만여명의 조선사람을 위하여 이 추도비를 건설한다'고 되어 있다. 1979년 8월 9일에 설치된 이 추모비는 ' 지난시기 일본이 조선을 무력으로 위협하여 식민지를 만들고 그 민족을 강제로 끌고와 학대혹사하며, 강제로동끝에 비참하게도 원폭에 맞아 죽게한 전쟁책임을, 그들에게 사과함과 동시에 이 세상에서 핵무기의 완전철폐와 조선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념원하여 마지 않는다'면서 끝을 맺는다. 아마 한글 번역가는 현대적인 한글을 쓰는 분이 아니었거나 북쪽에 연고를 둔 사람이 아닌가 싶다.  

 

 

 

 

원폭중심부 공원에 있는 모자상. 이곳에도 피폭자들의 명복을 비는 종이학들이 걸려있었다. 나가사키 호텔에서도 종이학을 만들어 놓고 투숙객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해 놓았는데 나가사키의 어디를 가더라도 종이학은 어디에서고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다.  

 

 

 

 

 

평화공원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원자폭탄이 낙하되었던 중심지가 있고 주위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검은 기둥이 서 있는 곳이 중심지라고 한다.  

 

 

 

 

 

 

금년(2005) 봄에 개관한 나가사키현 미술관. 미술관을 목표로 찾아나선 것은 아니였는데 나가사키 항구를 구경하다 발견하고서 방문하였다.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거나 그림이나 조각에 심미안이 있어서가 아니라, 더워진 몸을 식히기 위해서 겸사겸사 방문. 상설전시관만 구경하고 나왔는데도 시간에 꽤 흘렀다. 나가사키가 일본 내에서는 서양문물을 빨리 받아드린 곳이라 서양인물화도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지역주민에게 다가서기 위한 각종 미술교육과 함께 미술관 내에 조형물,설치물등이 있었다.  

 

 

 

 

 

 

데지마 주변의 재개발을 하면서 나가사키의 관광자원 개발 계획에 따라 나가사키 항 지역에 새로운 명소가 2000년 4월에 개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나가사키 데지마와프(WHARF)이다. 데지마와프는 바다에 면해 남북으로 길게 조성된 건물로,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바다쪽으로 150m의 테라스를 설치하여, 이곳에서 저녁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항구의 모습, 그리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일본 에도시대(1600년대) 쇄국정책의 일환으로 개항 때 들어온 외국인들을 격리시켜 일본인들에게 그리스도교의 전파를 막기 위하여 나가사키항에 만든 작은 인공섬 데지마 (出島). 다리 하나만이 육지와 연결된 유일한 출구로 민간인들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었다고 한다. 메이지 시대에 매립된 데지마(出島) 모습을 1/50로 축소해서 데지마 자료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나가사키의 신지 중화가는 일본에서 요코하마·고베와 더불어 유명한 차이나 타운으로 알려진 곳으로 중국인 식당과 상점, 중국식 건물들로 빽빽해 일본내에서 중국을 느낄수 있는 이색적인 곳이다. 여기에는 유명한 중국식당들이 많이 있어 어디 곳에서나 '나가사키 짬뽕'을 취급한다. 우리나라의 짬봉과는 달리 맵지도 않고 국물맛이 시원한 나가사키 짬봉을 시영이의 닥달에 의해 맛볼수 있었다. 고맙다. 시영아!!!  

 

 

 

 

  

 

'신지 중화가'가 끝나는 곳의 길건너에 있는 진공원(溱公園). 작은 규모의 공원인데 이 공원 역시 중국적인 향기를 풍기는 곳이다. 이름만 있을 뿐 설명이 없어 정확하게 알 수는 없어 아쉽다.  

 

 

 

 

1864년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으며 가톨릭교에 대한 탄압으로 순교한 26성인을 기리고 있어 정식 명칭은 일본 26성인 순교성당이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성당으로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성당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하이라이트라고 하는데 오픈 시간이 지나버려 밖에서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구라바엔(Glover Garden)은 18~19세기에 나가사키에 거주하던 서양인들의 집을 모아서 전시해둔 곳으로 나가사키 항이 내려다보이는 미나미야마테의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3만 평방미터의 언덕위에 토마스 글로버의 주택을 비롯해 오르트 저택, 링거 저택 등 메이지시대(19세기) 서양식 건축물이 한자리에 모여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나 분수, 정원, 화단 등과 같이 전시된 건축물들은 흡사 유럽의 어느 도시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름답고 잘 꾸며놓았다.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 놓았는데, 야경을 구경하러 너무 늦게 오는 관계로 제대로 된 구경을 하지 못했고, 또 모기가 너무 많아 첫날부터 헌혈을 너무 많이 했다. 여름에 이곳에 가게 되면 최소한 긴바지를 입고 갈것을 충고한다. 그리고 너무 더울때는 아무리 좋고 아름다운 곳이라도 피해야 할듯. 에어콘이 없는 언덕을 오르내리기에는 너무 덥다. 
 

 

 

 

 

 

나가사키의 야경이 무척 멋있다는 말을 듣고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그라바 공원 관광을 저녁일정으로 돌렸다. 여행책자에 나가사키 야경이 100만불짜리 야경이라는데 내가 보기에 부산의 1/10도 되지 못했고, 서울야경의 1/100도 따라오지 못한다. 여행사에서 붙여 놓은 말에 현혹되지 마시길...  

 

 

 

5일간의 여행중 가장 마음에 드는 나가사키 프린스호텔. 숙박비는 비슷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경도 좋았고 방이 넓어서 무엇보다 좋았다. 1층로비도 특급호텔에 버금갈 정도로 넓고 잘 꾸며 놓았다. 다만 역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인데 걸어서 10분 거리도 안되고 전차로 두정거장 거리이다. 이번 여행중 가장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는 호텔이다.  

 

 

 

 

 

 

나가사키 역에서 5분거리에 있는 니시자카(西坂) 공원안에 26성인 순교지 (日本26聖人 殉敎地).
우리나라의 절두산 순교성지와 비슷한 곳으로 일본에서 최초에 선교활동을 하던 6명의 스페인 선교사와 일본인 최초의 선교자 26명이 순교한 곳이라 한다. 뒤로 보이는 건물이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니시자카 성당이다. 이 성당의 탑부분 조형물은 상당히 특이해서 눈길을 끄는데, 가우디의 디자인을 흉내내서 만들었다고 한다. 나는 관광으로 들렀지만 천주교 신자들은 일본의 성지로 한번 들려볼만한데 인 것같다.
 

 

 

 

 

 

니시사카(西坂) 공원안에 있는 일본 26성인 순교지 (日本26聖人 殉敎地)의 기념 부조물. 동네의 조그마한 공원안에 위치해 있어 조용하고 느낌이 참 좋았다. 약간의 언덕위에 있어 나가사키 항구도 내려다 보이고, 나가사키 역과 아뮤프라자도 맞은편에 내려다 보인다.  

 

 

 

 

한국에서 자주 보는 분홍색 무궁화를 발견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한 흰색 무궁화. 후쿠사이지(福濟寺) 입구 바로 앞쪽 골목이다. 일본 사람들은 무궁화가 한국의 국화인지도 모를 것이고, 한국사람들이 이국땅에서 무궁화를 보았을 때 어떤 느낌을 가질지도 모를 것이다.  

 

 

 

호텔에서 나와 후쿠사이지(福濟寺)를 찾아가던 길목에서 발견한 무궁화. 이국땅에서 그것도 일본땅 좁은 골목에서 무궁화를 발견하니 기분이 참 좋았다. 이날 무궁화를 본 뒤 큐슈지역을 다니면서 다양한 종류의 무궁화를 참 많이 보았는데 우리나라에 벚꽃이 있는 것이나 일본땅에 무궁화가 있는 것이나 별 다른 것이 없음에도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색상과 모양으로 보아 아사달계의 종류가 아닐까 싶다. 

 

 

  

1928년 중국승려가 지은 절로 커다란 거북이 모양을 한 전쟁유물 전시관과 18m나 되는 관음상이 있어 ‘나가사키관음사’라고도 불린다. 원폭이 터진 오전 11시 2분에는 매일 종소리가 울린다고 하는데 우린 너무 이른 시간에 방문해서 종소리는 둘째치고 유물 전시관도 문을 열지 않아 관람하지 못하고 사진만 찍고 나왔다. 대신 아침 7시에 치는 종소리는 들었고 입장료 200엔은 아낀 셈이 됐다. 찾아가는 길을 바로 찾지 못해 골목 골목을 많이 헤멘 기억이 있다.

 

 

 

  

부처님상의 모습은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후쿠사이지 (福濟寺)의 부처님상은 우리나라와 몇가지 다른점이 있었다. 부처님 두상의 후광을 표현한 방법이 특이했고, 거북이 상위에 부처님을 모시고, 그 주위에 동자승이 공경하는 자세로 무릎을 꿇고있는 모습까지...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생소한 표현이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