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우즈베키스탄('09.5)

우즈베키스탄 여행 5-5 (타쉬켄트- 독립광장,아미르티무르박물관), (2009.5)

남녘하늘 2009. 12. 4. 00:31

 

'무스따낄릭’은 우즈벡어로 ‘독립’이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붉은광장’ 혹은 ‘레닌광장’으로 불리던 이 광장은 구 소련시절 거대한 퍼레이드를 위해 사용하던 광장이였다. 구 소련에서 가장 큰 레닌의 거대한 동상이 있던 자리였는데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독립을 상징하는 커다란 구체가 세워져 있다. 이 무스따낄릭 광장에서 매년 9월 1일에 우즈베키스탄 독립기념일 행사와 불꽃놀이가 열린단다. 

 

 

 

우즈베키스탄의 독립을 기념하는 광장에 세워진 국가상징물. 지구를 뜻하는 지구본에 우즈베키스탄 지도가 중심에 있고 그 위에 하늘로 비상하는 학이 있다.

 

외국어대학교 통역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동시통역사 김나영님과 김기환 처장님과 함께.  

 

 

 

독립광장 안쪽의 왼편에 있는 건물로 우즈베키스탄 상원 국회의사당 건물이라고 한다. 독립광장과 추모의 광장을 돌아 안쪽으로 가보려고 했더니 출입금지 구역이라고 통제를 한다.

 

 


광장의 한쪽에서 이 독립광장의 변천된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 준다. 60년대의 레닌동상이 있는 모습도 보이고 독립한 이후의 사진도 보인다.  

 

 

 

광장에서 만난 우즈벡 학생들과 함께. 이 나라 사람들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면 거절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외국인과 말이 통하지 않아도 몸짖만으로 알아듣고 거리감을 두지 않고 다가온다. 특히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더욱 친절해지는 것을 여러번 느낄 수 있었다.  

 

 

 

타쉬켄트 추모의 광장은 무스따낄릭 광장과 연접해 있는데, ‘비애하는 어머니’ 동상과 그 앞에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밤낮을 밝히면서 “당신은 항상 제 가슴속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라는 글귀가 불꽃 주위 둘레에 새겨져 있다. 여기에는 세계 2차대전 당시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한 참전용사의 이름들이 우즈벡 전통양식의 건축물에 금속으로 만든 책자에 기록되어 있다.  

 

 

 

 

 

 


우즈벡은 북위 37~46도 사이에 위치하여 우리나라보다 위도상으로 약간 위쪽에 있으나, 사막형 대륙성 기후에 속하여 여름에는 비가 거의 안오고 매일 40도를 넘는 무더위가 계속되고, 겨울에는 1월 평균기온이 영하 1~2도로 우리나라보다 따뜻하다. 앞에서 언급했던것 처럼 우즈벡의 연평균 강수량은 대략 100-500mm 정도이고 그것도 동절기인 12월부터 4월 사이에 집중되기 때문에 물이 부족한 국가다.  4,000m가 넘는 텐산(天山)산맥의 눈녹은 물이 흘러내리는 2개의 큰 강으로부터 물을 공급받아 생활용수도 쓰고, 거리와 공원의 나무들에 물도 주고, 밀, 면화, 과수, 채소 등 농업용수로 이용하지만 늘 물이 부족한 국가이다.   

 

 


광장 부근에는 상원 국회의사당 건물과 내각건물, 행정부 건물, 정보부 건물, 외무부 영빈관 (구 로마노프 궁전) 등이 위치하고 있어 명실상부한 우즈베키스탄의 행정과 정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또한 광장 대부분이 공원과 분수가 조성되어 있어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와 웨딩사진을 찍는 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타쉬켄트 TV타워는 중앙아시아에서 건물 중에 가장 높은 건물로 높이가 375m로 타쉬켄트의 랜드마크같은 구조물이다. 타쉬켄트 도착 다음날 인터콘티넨탈호텔 스카이 라운지에 처음 보았었고, 아침 혼자 돌아다니면서도 보았던 TV타워에 직접 입장하게 되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입구를 비교적 깔끔하게 꾸며 놓았다. 그런데 입장하기 위해서는 공항에 들어가는 것처럼 철저한 검색대를 한번 통과하게 만든다. 물품을 모두 내어 놓고 공항에서처럼 몸 수색도 한다. 이곳 또한 중요시설물로 지정해 놓고 관리하는 것이 틀림없다. 관광지로 활성화하려면 반드시 고쳐야할 관행이라고 생각된다.    

 

 

 

 

1966년 타쉬켄트에는 진도 7.5도의 지진이 발생하여 사상자가 수 만명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이후 고층건물들은 진도 9도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이 TV타워도 설계했다고 한다. 이 탑이 얼마나 높은지 비교하라고 세계의 높은 탑들을 모두 모형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375m인 이 탑이 9번째에 서 있고, 서울타워가 237m로 17번째 자리에 반갑게 서 있다. 저 멀리 바라보니 타쉬켄트가 사막 위 오아시스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신시가지 쪽은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녹음이 우거진 것이 부러웠다.  

 

 

 

우즈베키스탄에는 20만명 가까운 고려인이 있다.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우즈베키스탄에 그렇게 많은 고려인이 살고 있는 이유는 1937년 스탈린이 연해주의 고려인 18만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그때 이주한 고려인의 자손이 우즈베키스탄에만 20만명이다. 지금은 고려인 2세도 몇 명 남지 않았고 3세, 4세, 5세까지 번성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다민족국가로 2400만 가까운 인구의 71%가 우즈베크인이며 8%가량이 러시아인, 고려인은 전체 인구의 1%가 조금 못된다. 근처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견학을 왔는데 보이는 것처럼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타쉬켄트 시내전경. 숲과 더불어 나즈막한 집들이 보기에 좋다. 침간산이 있는 쪽을 제외하고는 산도 없이 지평선만 보인다.

  

 

 

 

침간산은 천산산맥 서쪽 끝의 사막과 맞닿아 있는 곳의 봉우리다. 천산산맥은 중국의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키르기스스탄을 거쳐 우즈베키스탄 동부까지 뻗어있는 산맥으로, 길이는 2,000km, 너비는 400km이다. 최고봉은 포베다(7,439m)며 칸텡그리(6,995m) 등의 높은 산들이 많이 있다. 침간산이 있는 서쪽은 날카로운 봉우리와 빙하가 많은데 비해 동쪽은 두루뭉실한 편이다. 사진속 도심을 지나 눈으로 덮혀 있는 산은 가까와 보여도 차로 두시간을 가야한다고 한다.     

 

 


우즈벡 도착 다음날 한국-우즈벡키스탄 동반성장 포럼이 개최되었던 인터콘티넨탈 호텔과 울루그벡 공원이 보인다.  역시 푸른 숲으로 둘러쌓여 있다.  

 

 

 

 

TV타워에 놀러온 우즈베키스탄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은 역시 어느나라를 가던지 천진난만하고 귀엽고 이쁘다. 몇 명의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지만 아이들의 어느나라 출신인지 알 수 없을만큼 인종이 다양하다.

 

 

 

외국에 나가서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드는 태극기. 이곳에 우리 국기가 없다면 얼마나 서운했을까?

 

 

 

 

타쉬켄트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이 아미르 티무르 박물관 이었다. 아미르 티무르는 과거에 처음으로 우즈베키스탄 지역의 사마르칸드를 중심으로 중앙 아시아 지역을 통일하고, 과학 기술을 진흥시키고, 그 당시 국가를 부유하게 했던 우즈베키스탄의 영웅이다. 티무르가 사마르칸드를 도읍으로 정하고 활동을 했기에, 많은 문화 유적들이 우즈벡의 사마르칸드 쪽에 있다. 티무르와 그의 후손들이 우즈벡의 영웅인 만큼, 우즈베키스탄 곳곳에서 티무르와 후손들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1층 출입구에는 기념품 상점이 몇 군데 있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 비해서 가격은 많이 비싸고 쓸만한 물건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그러나 구 소련시절에는  아미르 티무르가 봉건시대의 독재자로 묘사되었었고, 그의 존재 자체를 거론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었는데, 소련 연방으로부터 독립이후 위대한 조상으로 바꾸어 영웅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박물관에도 대부분 티무르와 관련된 그름들을 전시해 놓았고 특별히 아미르 티무르의 생애라는 전시실을 만들어 그림을 전시해 놓고 있다.  

 

 

 

1층에는 대리석의 주춧대 위에 거대한 코란이 놓여있다. 이 코란은 7세기 칼리프 오스만 자이트의 개인 비서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고 한다. 커다란 노란색 종이 위의 아랍글자는 보는이로 하여금 엄숙함을 느끼게 한다. 코란중에서 가장 큰 코란이라고 했는데 정확한지는 이 또한 알수가 없다.

 
우즈벡에서 입장료를 내는 곳에는 대부분 입장료에다 사진 촬영하는 값을 따로 치루어야 한다. 사진기 값을 낸 카메라만 들고 들어가고 나머지는 입장권 검사하는 곳에 보관해야 한다. 상당히 귀찮을 뿐만 아니라 의미없는 일로 보인다. 문화재를 보호하려면 아예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던가 아니면 입장료를 받지 말던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싶다.    

 

 

 

 


박물관은 아미르 티무르 탄생 660주년을 맞이하여 유네스코의 후원으로 1996년 개관했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서서 아름다운 샹들리에가 있는 천장을 올려다보면 그 화려함과 아름다운 문양에 눈을 땔 수가 없을 지경이다. 이 역시 사진으로는 직접 본 느낌을 표현할 수가 없다. 그리고 대리석 기둥, 대리석 계단 등으로 내부 역시 매우 화려하다. 10미터의 벽에는 ‘탄생’, ‘성장’, ‘영광(업적)’등의 테마로 나뉘어져 있는 이슬람 양식의 그림이 있었다.     

 

 

 

 

2층에는 은과 구리로 만든 13-14세기의 동전, 15세기 히바의 화려하게 조각된 나무 기둥, 19세기 부하라 통치자가 입었던 금으로 수놓은 관복, 갑옷, 티무르의 손자인 울루그벡 천문대의 모형, 비비하님 모스크의 모형,  등 찬란했던 티무르 제국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은 전통양식으로 예쁘게 꾸며져 있었고 박물관 내부의 분위기 역시 밝고 화려했지만 규모는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사마르칸트의 레기스탄광장. 울르그백천문대, 구르에미르 등 미니어쳐나 티무르와 관련된 그림을 대부분 전시해 놓았다. 박물관으로서의 컨텐츠는 다소 부족했다는 느낌이었다. 박물관 이름이 과거에 문화예술 역사박물관이었다고 한다.  

 

 

 

티무르 박물관 입구에서 요즘 우즈벡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동전이 구할 수 있었다. 입구의 조금만 항아리에 사람들이 동전이 던져 놓았는데 동전 몇개를 챙기고 챙긴 동전보다 훨씬 더 많은 지폐를 놓아두고 나왔다. 마치 동전을 훔치는 것 같은 찜찜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시장에서는 구할 수가 없어 차선책이라고 생각했다.  

 

 

 

 

관람을 모두 마치고 박물관을 배경으로....  

 

 

 

타쉬켄트 공항에서 출국심사를 기다리며... 국제공항임에도 공항내에는 면세점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조그마한 상점이 하나 있을 뿐이다. 달러를 쓰지 말라는 것인지?  들어오면서부터 느꼈던 불편함이 출국할 때까지도 이어졌다. 공항은 외국인들로 하여금 그 나라를 최초 이미지를 만들게 하는 최접점인데 이곳의 공무원들은 그야말로 철가방이다. 많이 느끼고 깨쳐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귀국은 불필요한 일정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중국 북경을 경유해서 들어오는 경로를 택했다. 아직 우즈베키스탄에는 1주일에 3회정도의 직항로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경 공항에서...  

 

 

 
4박 5일간의 짧은 출장으로 우즈베키스탄을 제대로 알수는 없겠지만 나름대로 출발하기에 앞서 지역에 대한 사전지식을 가지고 갔기에 눈에 보이는 것이 많았다. 하지만 한 나라를 제대로 알기에는 턱없이 짧은 일정이였고, 현지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직접적인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그 기회가 많이 부족해서 아쉬움이 남는 여행이였다.

 

하지만 짧은 기간동안에도 우즈벡사람들의 친절함과 선한 눈동자를 수없이 많이 보았고, 과거 실크로드의 중간 기착점으로서의 그들의 문화유산을 볼 수 있었다. 이제 막강한 자원을 바탕으로 성장의 날개를 펴고 있는 우즈벡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완전한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기에 어딘가 모르게 부족한 2%가 있었다. 선한 국민들과는 반대로 아직 경찰력에 의존하고 있는 국가경영과 사회주의 시스템에 장기간 젖어있어 서비스 정신이 없는 공무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왔다.

 

출국시 공항에서 입국할때 돌려주지도 않았던 출입국카드와 세관신고서 용지로 인해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받지도 않은 것을 제출하라고 하는데 어이가 없었다. 결국 실랑이 끝에 소지한 달러화를 가지고 나가지 못한다고 해서 하루 늦게 출발하는 일행에게 맡기고 나왔다.(남은 일행이 없었으면 모두 빼앗겼을지도 모른다.)  아직 자신의 일을 찾아서 하는 우리와는 달리 시킨 일만 해도 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생활습관이 자기가 한일이 아니면 책임감없이 무조건 모른다고 하며 쉽게 생각해 버리는 일부 공무원들. 짐편으로 보낸 달러가 조금 있었는데 체크되어 뺏길지 모른다는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찾아내지 못한듯 하다.

 

또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이 바같풍경을 찰영하는 것도 못하게 제지했다. 공항 시설물을 찍는 것도 아니고 비행기 내부의 모습을 찍는 것도 아닌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찍지 못하게 하는 것은 공산주의 시절부터 내려오던 못된 전통이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한심함의 극치였다. 하긴 우즈벡항공도 국영기업이니 공무원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도 국제선인데...

 

우즈베키스탄은 1991년 취임한 카리모프 대통령은 현재까지 장기 집권을 하고 있으며, 국정 전분야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95년 대선에서 압도적 지지(91.9%)로 재선되었고, 2002년 대통령 임기 7년 연장 국민투표 지지 등을 바탕으로 대통령 권한이 강화되어 있다. 현재 의회내 야당세력은 거의 전무한 상태로 현정부에 대한 견제세력이 미약한 상태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권위주의 통치방식과 비민주적 정책에 대한 국내외의 비난 무마에 주력하고 있으며 권력의 중앙 집중화는 더욱 강화하고 있기에 공무원의 권위가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정치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 듯하다.


현재 카리모프 대통령의 건강 문제가 거론됨에 따라 차기 권력 후계자로 카리모프 대통령의 장녀 굴노라와 아지모프 부총리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런 정치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즈벡 국민들이 선하고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

 

우즈벡 속담에 "손님은 아버지보다 윗쪽에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나라와 비슷한 감정이 아닐까싶다. 손님상에는 엄청나게 차려 놓고 상물림을 해서 아랫사람들과 나무어 먹는 습관이 있는 것도 과거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


향후 중앙아시아는 우즈베키스탄이 선두에 서게 될 것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천연가스는 세계 10위, 금 매장량은 세계 5위, 면화는 세계 5위 생산국이다. 최근 제조업 육성을 위해 생선설비의 현대화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특히 석유화학, 자동차, 건자재, IT 및 전자, 섬유, 농산물 가공 분야의 산업발전을 통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 추진중이다.

 

아직 기업의 민영화나 농업개혁 부진, 외환규제 등 금융시스템 낙후로 경제발전 속도는 주변경쟁국에 비해 더딘편이긴 하다. 그러나 개방적인 시장경제체제로 변경할 경우 중앙아시아의 관문으로서 해외로부터의 본격적인 투자 유입으로 빠른 경제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사람들이 그 가능성을 믿고 있는 것이다. 아직 일거리가 없어 할 일없이 놀고 있는 남자들을 많이 보았고 바자르라 불리는 노천시장에서 하루종일 시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런 우즈베키스탄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일찌감치 진출해서 코리아의 위상을 높여놓았던 것이다. 도로에 움직이는 차량은 대우자동차(우즈벡 대우)가 장악하고 있었다. 외국의 어떤 나라에 가더라도 일본차가 거리를 메우고 있는데 국산차가 외국 도시의 거리를 메이고 있으면 뿌뜻한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티고, 마티즈, 다마스, 라세티등 ...  택시는 마티즈가 많고 시내에 움직이는 차량 10대중 6-7대는 대우차였다. 타쉬켄트은 마티즈가 많았고, 사마르칸트등 지방에서는 다마스가 엄청나게 많았다.

 

특히 LG나 삼성 등이 홍보전략의 하나로 방송국 광고비 대신에 드라마 방영권을 우즈베키스탄에 제공해 우즈베키스탄 내에 한류 열풍 확산에 일조를 했다고 한다. 우즈베크 국영 TV는 한국의 발전상 및 문화관광지 등에 대해 수차례 방영해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이러한 여러가지 사항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청소년층의 코리언 드림 열기 지속되고 있다. 많은 우즈벡 청년들이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오는 것을 크게 기대해서 그 경쟁율도 엄청나게 높으며, 우즈베키스탄내 타쉬켄트 대학 등 주요 대학들이 한국어 학과를 개설했는데 높은 경쟁률을 보인다고 한다. 한국사람이라고 하면 우선 밝은 표정으로 대해주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가 보고 싶은 나라도 많고 다시 보고픈 나라도 많지만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은 시간이 지난뒤 다시 꼭 한번 더 오고 싶은 나라이다. 우리나라 사람처럼 시와 노래를 즐기는 민족으로서 이웃이 어려울때 서로 돕고, 손님에 대한 접대가 극진하며 노인과 부모공경의 동양예절 유지하는등 우리의 관습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도 부담이 없는 점이다. 주마간산격으로 너무 짧았던 여정이기에 시간을 가지고 찬찬히 둘러보는 여정을 다시 한번 꿈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