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러시아 (`12.6)

러시아여행 17-11 (상트 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쥬 박물관1 ) (2012.6)

남녘하늘 2014. 3. 31. 23:28


 여름궁전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식당으로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서 이동했다. 밖에서 보기에는 전혀 식당같아 보이지 않는 건물이었는데 식당이었다. 식당 이름도 우리가 갔다 왔던 여름궁전의 이름을 본떠서  여름궁전(ЛЕТНИЙ ДВОРЕЦ)이다. 외관도 여름 궁전의 색상처럼 흰색과 노란색이 잘 조화된 커다란 건물이어서 밖에서 보기에 식당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안쪽으로 들어서니 안쪽도 궁천처럼 잘 꾸며놓았는데, 높은 천정에 벽화와 호와스러운 샹드리에, 정갈한 식탁 등 꽤나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다시 한번 이곳에서 러시아 전통 음식심을 먹게 되었다. 좌석간 공간도 넓어 서빙을 받기도 편했고, 음식도 꽤 맛있었다. 러시아에 오면 이런 분위기에서 러시아 전통음식을 먹는 것이 여행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는데, 굳이 가격도 비싸고 우리나라에 돌아오면 늘 먹을 수 있는 한식당을 찾아 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우리가 들어 갈 때는 손님이 많지 않았는데 식사를 마치고 나올 무렵에는 다른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 와서 홀이 가득찼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 현지식을 맛있게 먹었다.    

 

 

 

 

 

 식당 지하에는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까지 마련되어 있었는데, 마뜨료쉬까 등 러시아 토속품을 비롯해서 호박으로 만든 악세사리를 판매하고 있었다. 식당만큼이나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는데 다른 관광지에서 보았던 것과 비교해서 그다지 싸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 기념품 매장만을 찾아서 일부러 오는 관광객은 없을 것인데, 결국 식당을 찾은 손님을 상대로 영업을 해야 한다면 이익을 최소화하고 많이 판매하는 서로 윈윈하는 방법이 낳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식사후 여름 궁전이 있던 페테르코프를 출발해서 다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다. 이미 언급했지만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대제가 300년 전에 늪 위에 만든 계획도시로 200년간 러시아의 수도였다. 도시는 바둑판 모양으로 잘 정비되어 있었고 200년이 넘어 보이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즐비하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몇 세기 전 거리를 돌아 다니는 듯한 느낌이다. 또한 상트 뻬테르부르크는 운하의 도시, 물의 도시이기 하다. 시내 곳곳을 운하가 둘러싸고 있으며, 오늘도 운하에는 관광객을 가득 태운 유람선들이 돌아 다니고 있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운하에서 유람선을 타는 것(네바강에서는 유람선을 타 보았음)과 넵스키 대로를 걸어보는 것을 해보고 싶었는데 이 두가지를 해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이번 러시아 여행중 가장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던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쥬 박물관을 둘러 보기 위해 겨울 궁전에 도착했다.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이자 러시아의 국립 박물관인 에르미타주 박물관에는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미술사의 거장들의 작품들이 대거 상설 전시되어 있다. 이 박물관은 총 300만점의 미술품과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 중 실내에 상설전시 되어 있는 것은 1%인 3만점이라고 한다.

 

 에르미타쥬는 러시아어가 아니라 불어의 Hermitage로 은둔지, 휴식처란 의미이며 약 200년에 걸쳐 제정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역대 짜르가 살았던 겨울 궁전을 개조한 미술관으로 옛 궁전의 화려함이 가득 배어 있다. 표트르 대제가 상트 페테르스부르크로 수도를 옮긴 후 러시아는 유럽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여 도시를 건설하였고 특히 겨울궁전은 이탈리아 건축가 바르톨로메오 라스트렐리를 불러 화려한 바로크 양식으로 건설했다. 겨울 궁전은 1711년에 네바강변에 처음 건립 되었으며, 이후 예카테리나 여제(1741~1762)시절 건물의 총 둘레가 2km에 이르는 장대하고 화려한 궁전을 10년이란 기간의 공사 끝에 완공하였다

 

 이 박물관에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이스, 로마의 고대 유물은 물론 시베리아의 스키타이 유산을 비롯하여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드 다빈치, 라파엘로, 고흐, 고갱, 르누아르 등의 작품들과 근현대 유럽의 램브란트, 피카소, 마티스 등의 작품 등 여러가지 작품과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에르미타쥬 박물관은 매일 10시 30분에 오픈해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해서 아침 일찍 오지 않으면 입장하는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했는데 우리 일행도 오전에 여름궁전을 다녀오느라 오후에 왔는데 역시 입장하는데 시간이 엄청 걸렸다. 우리 앞에 많은 사람들이 이미 줄이 서 있었는데 그래도 줄이 줄어 드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빨리 정리가 되었다. 한참을 기다려 우리가 입장할 차례가 되었을 때 우리보다 뒷쪽으로 줄을 서 있는 사람을 찍어 보았다. 줄의 끝이 보이질 않고, 강변에 세워 놓은 관광버스도 엄청나게 늘어서 있다.      

 

 

 


에르미타쥬 박물관은 예카테리나 여제의 겨울철 거처로 사용되었던 궁전으로, 겨울궁전이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대단한 미술 애호가이자 수집광이었던 여제는 유럽의 미술품들을 직접 매입하여 자신만의 컬렉션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에르미타쥬 박물관을 만들어낸 시초였다.  이 박물관은 해외 침략으로 약탈한 유물이 단 한점도 없다고 하니, 영국의 대영이나 프랑스의 루브르와는 구별되는 핵심 가치라고 할 수 있다.    

 

 

 

1852년부터는 일반에 공개 되었으며 러시아 혁명 후 임시 정부의 청사로 사용되었다가, 볼셰비키의 10월혁명 후 모스크바로 수도를 옮기면서 짜르의 겨울궁전은 전체가 박물관이 된다. 애시당초 궁전이었던 건물답게 이 박물관은 입구부터 럭셔리 인테리어의 연속이다. 일단 2층 전시실로 올라가는 길에 대리석 계단과 레드카펫은 기본이다. 대리석 계단과 함께 청록색 공작석으로 기둥을 세웠으며, 천장은 정교한 그림과 순금으로 마감되어 있다. 미술 작품을 보기에 앞서 입구에서부터 화려함에 눈이 호강하게 된다.    

 

 

 


원래 궁전이었던 이 궁전같은 박물관의 조명은 역시 순금으로 만들어진 샹들리에이다. 앞에 이렇듯 화려한 1층 로비를 따라 2층 전시실로
들어가면, 그 안에는 더 화려한 궁전같은 전시실이 그 모습을 나타난다. 

 

 

 


에르미타쥬 박물관에서 유명한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예술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의 노력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이 9백여일 동안 이 도시를 봉쇄 포위하고 있을 때, 소장품을 보존하려던 사람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1941년 9월 직원들은 나치의 침공이 임박해 오자 그림과 유물, 러시아 보물들을 도자기 공장의 포장 전문가들과 함께 포장해 기차에 싣고 우랄산맥 근처의 스베틀로프스크에 이동 시켰고, 나머지 유물과 그림들은 지하실에 옮겨 놓았다고 한다.

 

박물관 직원분만 아니라 시민들도 겨울 궁전의 지하 방공호에 함께 모여 폭격으로 깨진 수천 장의 유리창과 샹들리에를 쓸어내고, 겨울이면 눈과 추위로 얼어붙은 궁전 내부의 전시실을 보수했다고 한다. 독일군의 포위공격을 이겨낸 공로로 영웅도시로 불리게 된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자부심은 바로 이 에르미타쥬 박물관을 지켜 낸 시민정신으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문화재를 아끼려는 정신 덕분에 전쟁이 끝난 뒤 소장품들은 거의 아무런 피해 없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으며, 오늘날 세계적인 박물관으로서 우뚝 서게 된 것이라고 한다.

 

러시아 군주중 가장 추앙 받는 인물인 표트르 대제의 초상화가 있고 그 위에 황실의 상징인 쌍두독수리가 있는 표트르관.   

 

 

 

황금기둥이 번쩍이는 이 곳은 문장관. 들어서는 순간 넓고도 화려함에 입애서 탄성이 나온다. 황금 기둥도 그렇지만 상감으로 수를 놓은듯 그 넓은 바닥을 똑같은 문형으로 깔아 놓여 있어, 제정 러시아의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기계도 없었던 시절 일일이 손으로 깎고 다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금으로 장식하기 위해서는 수은에 녹여서 칠하기때문에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고 한다. 문장관 이외에도 황실의 거실, 침실, 접견실, 식당의 사치스럽고 호화스러움에 우리가 볼거리는 많았지만. 그당시 국민의 희생 위에 황실의 사치가 존재하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초상화의 방'이라 불리는 이 방은 사실 방이라기보다는 전시실과 전시실 사이를 이어주는 통로에 가까운 큰 홀이다. 이 홀의 한 가운데에는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세운 표트르 대제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홀의 좌우에는 제정 러시아 당대의 황제들과 유명 장군, 유명 문인 등 당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이 홀은 배경색이 붉은색이었는데, 러시아 사람들이 붉은색을 선호하는 건 소련 시절의 전통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내려져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강하고도  화려한 느낌을 주는 곳이였다.        

 

 

 

 

에르미타쥬의 전시물이 너무 많아 짧은 시간에 모든 작품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작가와 미술사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배웠고 보았던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장소부터 순례를 시작했다. 피카소 작품을 비롯해 르느와르, 고호, 고갱, 세잔 등의 수많은 작품들이 있었는데 미술시간에 보았던 르느와르의 그림을 보니, 아는 작가의 작품을 보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박물관에서는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하나의  전시관에 모아서 작가의 업적과 약력을 명기해 놓았다. 르느와르는 봄빛같은 따스함을 캔버스에 담아난 화가여서 작품을 보는 사람의 마음이 밝아지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학창시절 그름을 잘 모르던 시절에 미술을 전공했던 사촌누나를 따라서 덕수궁의 르느와르의 작품을 구경하러 갔던 추억이 되살아 났다.   

 

 

 

 

 

램블란트의 1660년도 작품인 '돌아온 탕자'의 일부분을 찍은 사진이다.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모든 것을 잃은 뒤에야  정신을 차려 아버지께로 돌아 온다는 성경의 이야기가 공감이 되는 것인지, 이 작품 아래에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몰려 있어서 아무리 기다려도 전체 그림을 찍을 여건이 되지 않았다. 작품 설명을 들으면서 아들을 끌어 앉은 아버지의 손을 그릴 때 아버지의 손과 어머니의 손으로 함께 그렸다고 했서 전체 중에서 그 부분을 확대해서 찍어 보았다.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콩스탕 트루아용(Constant Troyon)의 작품 '시장가는 길'. 주로 이른 아침이나 해질 무렵 역광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서 유명하다고 한다. 시골의 아침 풍경을 역광으로 아름답게 묘사한 명작으로 그 이전의 그림은 풍경화나 인물화 위주의 그림이었다고 한다. 역광을 받고 있는 무리들을 그대로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을 시도한 최초의 작품이라고 한다.    

 

 


빈센트 반고흐는 위대한 화가, 저주받은 화가, 괴팍한 화가 등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많다. 독특한 형식의 그림을 그린 그가 살아 있는 동안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가난과 좌절로 일생을 보내다가 1890년 서른일곱 살의 나이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작품 활동을 한 기간은 8년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림이 약 900점, 스케치는 1,700점에 이른다고 한다. 생전에 단 한점의 그림밖에 팔리지 않았던 빈센트 반고흐의 작품이 이곳에는 하나의 방 가득 채워져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르에서의 산책(1888년)'이라는 작품이다.  

 

 

 


박물관의 미술작품이나 유물들도 대단했지만 에르미타쥬 박물관은 애초에 궁전이었기때문에 전시품과 함께 화려한 실내 인테리어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유물이자 볼거리다. 이 화려한 인테리어는 일부는 제 2차 세계대전에서의 레닌그라드 공방전 도중 나치 독일의 포격에 의해 파괴되어 소련 시절에 복원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제정 러시아 시절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작품을 보러 다니는 중간에 발코니에서 내려다 보이는 전시실의  화려함이 엄청나다.  

 

 

 


프랑스의 화가 앙리 마티스(1869-1954)는 '야수파' 운동의 지도자였는데, 야수파란 이름은 그림에 사용된 색채가 지나치게 강렬하여 짐승 같다고 표현한 사람들의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마티스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춤이라는 이 그림은 원래 러시아 그림 수집가인 슈킨의 모스크바에 있는 저택 계단을 장식하기 위해 주문된 작품으로 활기 있는 리듬과 생명감이 넘치는 대작이다. 하늘을 상징하는 푸른빛과 땅을 상징하는 녹색의 바탕에 붉은 색깔의 다섯 명의 무희가 서로의 손을 잡고 단순하고 원시적 형태의 원형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있다.

 

 

 

 

박물관의 전시실은 미로처럼 되어 있어서 처음 방문한 관람객이 가이드를 따르지 않을 경우 미아가 될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가이드는 어느 곳에 어떤 작품이 있으며, 또 어떤 작품을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지를 잘 알아서 꼬불꼬블 전시실을 찾아 나갔다. 잠시 방심하거나 혼자서 작품에 빠져 있으면 일행에서 떨어져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좋아하는 작품이 있어도 오래 보지 못하고 일행을 따라가느라 아쉬움이 많다. 다행이 이어폰을 끼고있어 가이드의 설명하는 소리가 멀어지면 빨리 따라 잡곤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관람을 이어 나갔다. 작품이 하도 많고 더구나 미술을 전공하지 않아서 어떤 작품이 누구의 것인지도 모른다. 그냥 유명 작품의 사진을 몇장 찍었을 뿐, 나중에 생각하니 내가 찍은 사진보다도 훨씬 더 좋은 작품 사진을 박물관 홈페이지나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데, 작품 감상이나 더 열심히 할 걸...  

 

 

 

 


전시실에는 초상화들과 함께 당시 제정 러시아 황실이 사용하던 여러 도자기들과 유물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에르미타쥬 박물관은 다른 여타 박물관과 달리 전시물이 유리 보호관 속에 넣어 둔 것이 아니라, 거의 전부를 밖으로 노출해 관람객들이 전시물들의 생김새는 물론 질감까지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아래 사진은 피카소가 도자기에 그린 그림인데 유리관 안에 들어 있는 작품을 찍다보니 상태가 좋지 않다. 에르미타쥬 박물관에서는 후레쉬를 사용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작품을 촬영하는 것에 대해서 자유롭다.     

 

 

 

 

 

 

(1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