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러시아 (`12.6)

러시아여행 17-16 (상트 페테르부르크- 이삭성당 ) (2012.6)

남녘하늘 2014. 4. 10. 22:31

 

 자그마한 어촌에 불과했던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화려한 유럽식 근대 도시로 일약 변모하게 된 것은 표트르 대제의 정치적 야욕의 소산이다. 18세기 초 스웨덴과의 북방전쟁을 치르면서 대제는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를 건설하고 나서 유럽을 향한 전초기지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그 기지로서 네바강 하류와 발트해가 만나는 늪지 위에 인공도시를 세우기로 결심하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모델로 삼은 도시 건설에 착수한다. 급기야 1712년 러시아의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기면서, 유럽식 근대화 도시로 급성장한다. 이후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이름도 몇 차례 바뀌게 된다. 1918년 소비에트 정부가 수도를 모스크바로 옮기면서 이곳 이름은 ‘페트로그라드’로 바뀌고, 1924년 레닌 사망 후에는 그의 이름을 따서 ‘레닌그라드’가 된다. 레닌 그라드라는 이름을 70여년 동안 사용하다. 러시아 연방시대가 도래하자 원명이 복원된다. 그 과정에서 얻은 별칭만도 ‘유럽을 향한 창’ ‘북쪽의 베니스’ ‘운하의 도시’ ‘물의 도시’ ‘백야의 도시’ ‘혁명의 도시’ 등 다양하다.


 예카테리나 궁전를 둘러보고 나서 다시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내로 돌아왔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핀란드만으로 흘러나가는 네바강의 델타지대에 형성된 섬들과 운하에 엄청나게 많아서 도시의 어느곳에 가더라도 운하를 볼 수가 있었다. 우리가 식사를 하기 위해서 왔던 한 지역에도 운하가 있었고, 유람선이 운행되고 있었다. 네바강의 분류, 지류, 운하까지 포함하면 65개의 강이 흐르고 있으며 섬의 수는 100개 이상이 된다고 한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어느 지역이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식당이었지만 한적하고 분위기가 괜찮았던 러시아 로칼식당이다.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면 한식당을 찾지 않고 로칼식당에서 현지식을 먹는 것을 선호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오늘로서 러시아에 온지 8일째라서 한식을 먹었으면 하는 분들이 생각보다는 많았다. 한달 정도는 김치찌게, 된장찌게  김치를 먹지 않아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접시위에 샐러드는 먹다 남은 음식사진을 찍은 것처럼 보이는데, 장식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 손대지 않은 음식이다. 사진을 찍고보니 먹는 도중에 찍은 사진처럼 보인다. 이곳에서의 식사도 참 좋았었다는 생각이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서 성이삭 성당(St. Isaac's Cathedral)을 방문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러시아정교 성당인 이삭 성당은 먼곳에서도  눈에 잘띄는 황금색 돔 지붕을 가진 화려한 건물로서 네바강을 끼고 있는 주변 풍광과 잘 어울린다. 황금색 돔은 100kg이 넘는 금을 녹여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종탑 건설에 참여한  기술자중 40명이 수은중독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성당 건물은 높이 101.5m로서 건물 30층 높이에 해당된다고 하는데 1818년부터 1858년에 이르기까지 연인원 50만명이 동원된 끝에  피터 1세가 태어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성이삭의 날인 5월 30일에 맞춰 준공되었다고 한다.    

 

 

 

 

 

 성당 전면에 있는 대형 아름드리 대리석 석주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떻게 이런 기둥을 세울 수 있었는지 궁금증을 일으킬만큼 거대하고 웅장했다. 이삭성당은 1만 4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 큰 규모(길이 111.2m, 폭 97.6m, 높이 101.5m)라고 한다. 원래 늪지대 였던 이곳에 대규모 성당을 짓기 위해서 총 2만4천여개의 말뚝을 성당 밑에 박고 그 위에 화강암, 석회암을 깔아 만들었다고 한다. 64개에 이르는 원통 대리석은 이탈리아에서 가져 온 것이며, 출입문은  9톤의 청동주물로 만들어져 있다. 입장하기 앞서서 간단한 설명만으로도 대단한 건축물을 접하게 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성당내부로 입장하니 밖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외부에서는 황금색 돔과 거대한 대리석 기둥, 청동 철문의 중후한 느낌이었다고 한다면, 내부는 화려하고 넓고 웅장했다. 러시아에 와서 본 관광지 중에 가장 백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쁜 일정으로 인해 바같에서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만 찍고 지나쳤다면 많이 억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다음에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곳을 보지 않더라고 이 성당은 꼭 한번 방문해서 구경하고 설명을 들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내부 장식은 22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하였다고 한다. 성서 내용을 묘사한 그림 150점, 모자이크 62점(예언자 에제키에리의 환상, 대홍수, 최후의 심판등)등 독특한 모자이크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데 내부의 화려함이 바티칸 성당과 비교 할만하다고 한다.  

 

 

 

 

 

 성당 내부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주는데, 회중석의 벽은 열 네가지 색의 대리석과 마흔 세 종류의 희귀석으로 장식되어 있고 천장에는 성모의 이콘화를 비롯해서 여러 사도들의 대형 이콘화가 그려져 있었다. 천정과 벽, 바닥 모두에 그림과 장식물로 가득하다. 제단 앞의 이코노스타스는 황금빛으로 도금되었으며 중앙에 있는 황제의 문은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어 내부가 들여다 보이도록 되어 있었다. 
원래 러시아 정교 교회는 창문을 만들지 않는데 이삭성당의 예수상은 스테인드 그라스로 창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삭성당이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 4번의 걸쳐 변화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변화된 모습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작은 성당에서 시작해 지금의 웅장한 모습을 갖추기까지 모형물을 성당 한켠에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이삭성당이 지어진 곳은 늪지대여서 기초공사를 엄청나게 했다는데, 초기에 공사를 어떻게 했는지와 커다란 기둥들이 어떻게 세워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과 그 거대한 기초공사의 모습을 축소해서 전시해 놓았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삭성당은 목조사원이었는데 석조사원으로 개조하면서 공모를 했는데, 그 공모에 당첨되어 이삭성당을 건설한 사람이 프랑스의 건축가 몽페랑이다. 몽페랑은 1818년부터 1858년까지 무려 40년에 걸쳐서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성당인 이삭 성당을 만든다. 그의 설계 영향으로 지붕의 돔모양이 양파 머리를 닮은 러시아 정교회 형식이 아니고 서유럽풍의 모양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몽페랑은 성당이 완공된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죽게 되었는데, 죽기전에 그는 이삭성당에 묻히길 원했으나 러시아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유해는 프랑스 그의 고향으로 옮겨졌고, 현재 이상성당에는 몽페랑의 무덤 대신에 흉상 2개가 성당 내부에 있었다.   

 

 

 


 열쇠를 들고 있는 베드로의 이콘화.  이삭성당의 천장에는 12제자 그림이 있는데 그 중 몇개를 모조품을 만들어 실제 크기를 감상해 보라고 성당 아래쪽에 세워놓았다. 천장을 올려다보면 그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느낄 수 없었는데 똑같은 크기로 모조품을 만들어 아래쪽에 내려 놓으니 그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큰 그림이었다. 성당의 높이 101.5m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었다. 베드로의 이콘화 이외에도 너무 높이 있어 감상하기 어려운 작품 몇 점은 실제크기로 모조해서 성당 아랫쪽에 전시해 놓았다.    

 

 

 

 

 

 당대의 유명한 화가를 동원하여 성당을 장식하여, 성당의 벽뿐만 아니라 넓은 성당의 가운데 돔이 있는 천장에도 아름다운 성화를 볼 수 있었다. 성당의 내부에는 성서의 내용과 성인을 묘사한 150점이 넘는 러시아 화가들의 회화와 조각품,  프레스코화가 전시되어 있다. 정말로 웅장하고 화려한 러시아 건축의 아름다움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세계적인 건축물이다. 이곳에 있는 이콘화는 크기도 모두 대형이다.

 

 

 

 

 

 이삭 성당도 지금까지 두 번의 위기를 거쳤다고 한다. 2차대전때 독일군에게 900일간 포위되어 도시가 완전 고립되었었는데, 독일군도 이 도시의 예술적 가치를 잘 알아서 일부러 폭격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한번은 볼세비키 혁명때였는데, 이때도 역시 이념을 떠나 이삭성당만큼은 건드리지 않기로 협정 맺은 덕분에 원형 그대로 보존이 가능했다고 한다. 성당 한켠에 사진과 그림으로 전쟁당시의 주변모습과 이삭성당의 변천에 관한 자료를 전시해 놓고 있었다.   

 

 

 

 아래 있는 작품은 유화로 그려진 작품이 아니라 모자이크로 만든 작품이다. 그것도 그냥 일반적인 모자이크가 아니라 온갖 보석과 광석으로 색상에 맞게 끼워서 맞춘 것이다. 이콘화같이 유화작품이 아니기에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오히려 작품이 촌스럽다고 생각하고 넘어 같을 터인데, 보석과 광물 1만2천여개의 조각으로 만들어진 62개의 독특한 모자이크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하니 가치가 달라 보였다.  

 

 

 


 이삭 성당의 철문 모습이다. 이삭성당을 들어올 때 보았던 철문의 반대쪽 성당 안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출입문은  9톤의 청동주물로 만들어져 있는데, 문에 장식되어 있는 조각이 조금씩 만들어 붙인 것이 아니라 통째로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어마어마하게 큰 문에 로뎅의 지옥의 문처럼 성서 이야기가 조각되어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굉장히 많은 관람객이 이삭 성당을 구경하고 있었다. 내부에서는 사진 찍는 것에 대해서 통제를 하지 않고 있어서 사진을 많이 남길 수 있었다.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아주 제한적으로 몇 몇 장소를 제외하고는 사진 찍는 것에 대해 그다지 통제를 하지 않아서 좋았던 것 같다. 이제 러시아 여행도 서서히 종료되어 가고 있다. 눈이 너무 호강을 해서 당분간은 이곳에서의 추억을 되새겨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 함께 여행을 했던 몇 몇 분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다.   

 

 

 

 

 

 네바강에서 보았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에르미따쥬 박물관과 이삭성당이다. 웅장한 금빛 지붕을 지닌 이 성당은 단순히 화려하다고만 하기엔 상당한 중후함을 지니고 있었다. 오늘 우리 일행과 함께 했던  최진석교수도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여러번 와 보았지만 이삭성당은 처음 방문했다고 하는데, 오늘 성당을 보지 않고 갔다면 후회했을 것이라고 한다. 러시아에서 공부하고 러시아를 자주 방문해 본 교수님의 이야기니 믿어도 좋을 듯하다. 이삭 성당은 멀리서 보아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는 눈에 띄는 건축물이지만, 가까이에서 본 성당은 정말 컸다. 이삭성당의 높이는 100m가 넘으니, 30층 높이의 건물과 비슷한 셈이다. 박물관 내부를 관람하는 것과 이삭성당 전망대로 올라가는 두 가지 입장권이 있다고 하는데 다음에 또 방문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삭 성당 전망대에서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모습을 한 눈에 보고 싶다. 

 

 

 

 

 

(17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