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마라톤 여행/뉴욕마라톤('14.11)

뉴욕마라톤 13-13 (위안부 기림비 방문) (2014.11)

남녘하늘 2017. 1. 24. 00:16

 

 뉴져지에 온 이후 한국 교민들과 4일동안 매일 만나서 아침 달리기를 하고, 저녁식사도 하는 바람에 많이 친해졌다. 로사 김님이 오늘 귀국하기에 앞서 점심을 함께 할 수 있겠느냐고 했는데 사실 점심 함께 하는 것보다 다른 것을 구경하고 싶었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어짜피 마라톤 달리기에 방점을 찍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좋은 시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에서 함께 점심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로사님이 점심을 사 주었고, 캐빈님도 오셨고, 조이님도 오셨다. 회정식을 사 주었는데 나는 아침에 이곳에 계신 분들에게 간단하게 브런치만 사고 말았는데 상당히 부담스러운 점심 대접을 받았다. 외국에서 한식당은 로칼 식당에 비해서 언제나 비싼 편이다. 1시간 30분이 넘는 점심시간을 가졌다. 이번에 처음 만나뵌 분들이 과분한 대접을 해 주어서 고맙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다음에 한국에 나오면 내가 보답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동내 실버센터 사무실에 들러서 미국 중간선거 하는 것을 한번 구경했다. 미국에서 투표소를 볼 기회가 많지 않을텐데 이번 여행중에는 선거가 있어서 한인타운에서 실시되는 투표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투표장에 가서 선거 관계자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어 보았더니 처음에는 안된다고 하더니 참관인단에게 물어보고서는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하고, 선거 안내문 정도는 찍어도 괜찮다고 한다. 영어와 스페인어, 한국어로 된 안내문이 있었고, 전자투표가 실시되고 있었다. 미국에서 전자투표가 이루어진다면 우리나라가 IT가 훨씬 더 발전했는데 전자투표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미국도 대도시는 민주당이, 농촌지역은 공화당이 강한데 오바마가 인기가 줄어서 이번 선거에서는 공화당이 우세할 것으로 보인다고 권이주 회장님께서 말해 준다. 민주당이 이민정책에 대해서 훨씬 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이민자에게는 더 인기가 있다고 한다. 투표장 방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미국에 와서 좋은 구경을 하나 더 하고 가는 셈이다. 한글 안내문이 있는 것을 보면 팰리세이즈 파크(Palisades Park)에 한인이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투표소 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간단히 정비를 취했다. 다시 회장님께 전화드려 한인타운 근처에 있는 일제시절 강집로 끌려 갔던 위안부 할머니를 기리는 위안부 기림비가 있는 곳으로 안내를 해 달라고 했다. 회장님이 흔쾌히 안내를 해 주시겠다고 한다. 사실 위안부 기림비도 보고 싶었지만 그와 함께 뉴저지에서 볼거리가 있다면 한 두곳이라도 방문했으면 했는데 회장님의 연세를 생각하지 않고 내 생각을 요구를 할 수가 없었다. 뉴욕과 뉴저지에는 위안부 기림비가 3곳에 있다고 한다.

 

 

 

 

 위안부 기림비라고 해서 조금 규모도 크고 번화가에 있을 줄 알았는데, 펠리세이즈 파크 공공도서관 건물 옆에 조금은 초라한 느낌의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위안부 기림비가 미국에 있다는 사실을, 더구나 뉴저지의 한 작은 타운인 펠리세이즈 파크 마을에 있다는 사실을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 기림비 건립을 둘러 싸고 공공장소에 세우는 것에 대해서 항의와 반발이 많아서 우여곡절 끝에 기림비가 세워졌다고 한다. 꽃다운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가 일제의 성노예로 끔찍한 삶을 살아야 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 많은 넋을 위로하는 묵념을 했다. 

 

 

 

 

 

 펠리세이즈 파크에 있는 1호 위안부 기림비를 방문하고 나서 타운보다 상위개념의 버켄 카운티(Bergen County )의 법원 앞에 세워진 제3호 위안부 기림비까지 방문하게 되었다.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미국에서 한국가에 대한 기림비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서로 이해가 상충하게 되면 반대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뉴저지 주 하원에서 2013년 3월 21일에 일본군 강제 위안부 결의안을 만장 일치로 채택했다고 한다. 결의 안에는 '위안부의 역사적 사실에 의한 일본 정부의 시인을 받아 내려고 싸우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지하며 일본 정부는 역사적 책임을 공식 인정하고 이러한 과거의 범죄를 미래 세대에 교육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한 버겐카운티 청사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버켄 카운티 청사 주변에는 여러 인물의 동상도 세워져 있었고, 각종 기림비와 참전 군인 기념비 등이 많이 설치 되어 있었다. 주변이 공원처럼 꾸며져 있고 담장이 없어서 전체적으로 틔어진 느낌이 드는 공간이었다. 누군가의 유명인의 동상이었는데 기록을 남기지 않고 오는 바람에 누구의 동상인지는 모르겠다.  

 

 

 

 

  세번째 위안부 기림비는 2013년 3월에 만들어 졌는데, 이 기림비가 더 의미가 있는 것은 미국 정부 예산으로 세워졌다는 점이다. 기림비가 있는 법원 앞 '명예의 고리(Ring of Honor)'에는 노예제도에 희생된 흑인, 나치에 학살된 유대인, 영국의 수탈로 고통받은 아일랜드인 등 전 세계의 인권 피해자들을 기리는 기념비와 함께 세워져 있다. 위안부 기림비 동판(銅板)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의해 성노예(sexual slavery)를 강요당한 한국과 중국, 대만, 필리핀,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출신의 수십만 여성과 소녀들을 추모하며'라는 글이 영문으로 새겨져 있었다.   

 

 

 

 

 

 

 위안부 기림비가 있는 하겐섹(Hackensack) 마을의 명예의 고리(Ring of Honor) 옆으로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를 비롯해서 제1차 세계대전, 2차세계대전 등 미군의 참전을 기리는 참전용사 기념비(Veterans Circle of Honor)가 국기계양대를 중심으로 세워져 있었다. 미국의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참전용사 기념비와 함께 그 지역 출신 전사자를 기억하기 위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것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이곳에 위안부 기림비를 비롯해서 각종 전쟁의 참전기념비들은 그들의 노고를 잊지 않기 위해서인데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임을 후대들에게 교육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항복문서에 조인한 공식패망일이자 버겐카운티 위안부기림의 날인 9월2일에 맞춰서 위안부기림 평화마라톤 행사를 권이주 회장님께서 작년에 진행했었다고 한다. 3호 위안부 기림비에서 팰팍에 있는 1호 기념비까지 8km를 달리는 대회였다고 한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지만 대단한 일을 하신 것이다. 이곳에 있는 기념비에도 자유는 공짜가 아니라(Freedom is net free)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버켄 카운티 청사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한국에서 뉴저지를 방문한 사람 중에서 나처럼 1호 위안부기림비와 3호 위안부 기림비를 보고 온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안부 기림비가 있다는 사실과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것이고, 또 다른 지역이나 관광해야 할 것이 많아서 이곳까지 올 생각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짧은 시간에 회장님 덕분에 한국인이라면 꼭 한번은 방문해야 했어야 할 장소를 모두 보고 오게 되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미국에 온 뒤로 폴님 집에서 숙박을 했는데 폴님이 자신의 일때문에 내게 식사 대접을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고, 떠나기 전 오늘 저녁은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었다. 그동안 나를 위해서 여러가지를 준비해 놓았는데 내가 집에서 먹지도 않고 부담스러워 했더니, 본인이 더 미안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오늘 밤에 뉴욕을 출발해야 하는데 집에서 간단한 파티를 하자고 했다. 폴님도 저녁 식사준비를 하기 위해 집에 빨리 왔고, 퀸스에 있는 강명구선생님도 뉴저지로 넘어왔다. 캐빈님도 오셨고, 어머님이 건강이 안좋아 수고하고 있는 제이님도 와서 회장님과 더불어 6명이서 함께 좋은시간을 보냈다. 너무나 많은 것을 준비해 놓아서 다 먹느라 고생을  했다.


 6시 조금 넘어서 시작된 저녁이 9시 넘어까지 진행되었다. 내가 늦어도 9시 30분경에는 폴님 집에서 출발해 공항으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그나마 빨리 끝난 것이지 출발시간이 늦었다면 만찬이 훨씬 더길게 갔을 것이다.     

 

 

 

 

 

 

 폴님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 권이주회장님께서 뉴욕에 도착했을 때와 마찬가지고 출발할때도 공항까지 데려다 주셨다. 나 혼자서 찾아오고 찾아 갔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고생을 했겠지만 회장님이 모두 신경써 주셔서 너무 편하게 공항으로 이동했다. 이번 마라톤 여행 중에 나를 위해서 시간을 배려해 주고, 많은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신 회장님께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로 감사한 마음이다. 회장님 나이가 벌써 70이 되셨기에 앞으로 우리가 몇 번을 더 만나게 될지 알수가 없으나, 항상 건강하게 지내시고 만날 때까지 건강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


 공항 입구에서 회장님과 헤어지고, 공항으로 들어와 바로 수속을 햇다. 올때와 마찬가지로 제일 뒷좌석을 달라고 했더니 옆좌석이 비어 있는 뒷자리가 없다고 해서 결국 비상구쪽 좌석을 배정 받았다. 공간이 넓어서 거의 비지니스 수준이 귀국길에 되었다. 뉴욕 JFK 공항 제1터미널의 모습도 그다지 특이한 모습은 없다.      

 

 

 

 

 

 

 

  이번 마라톤 여행은 집사람과 함께 하려고 모든 준비를 마쳐 놓았는데, 갑자가 일이 생겨서 함께 여행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려서 부득이하게 혼자 여행을 왔었다. 그 때문에 일정도 대폭 축소해 버리고, 여행이 아닌 마라톤 참가에만 의미를 둔 여행이 되었다. 뉴욕을 비롯한 다른 몇 몇 지역은 다녀본 곳이 많아서 다음에 집사람과 다시 올 때를 위해서 남겨 놓았다. 여건이 된다면 2017년 시카고 마라톤대회때 함께 미국을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짧은 기간동안 뉴저지의 폴님 집에서 숙소를 정하고, 권이주회장님의 안내를 받으며 좋은 주로와 좋은 분들을 소개 받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귀국하게 되었다. 있는 동안 많은 분들께 과분한 대접을 받고, 배려를 받아서 그 고마움을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인연을 잘 이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