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홍콩,마카오,광저우('16.12)

홍콩, 마카오, 광저우 여행 15-12 (광저우 광효사, 진가사) (2016.12)

남녘하늘 2018. 5. 25. 00:38


 육용사에서 광샤오쓰(光孝寺:광효사)까지 이동하는 구간은 광저우의 지리를 미리 알고 있었다면 둘러 가지 않고 바로 찾아 갔을 터인데 지리를 잘 모르는 바람에 상당히 둘러 가게 되었다. 나중에 구글 지도를 보니 바로 가면 5분 정도만 걸어도 되는 거리였다. 다시 큰길로 나왔다가 광효사 가는 골목길로 들어왔는데 광효사로 가는 길에도 사찰과 관련된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많이 보인다. 이런 곳에 절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멀리 길이 끝나는 지점에 사찰 같은 건물이 보인다.   




 광효사는 육용사보다 역사가 더 깊다. 광효사는 광저우뿐만 아니라 광동성에서도 가장 오래된 사찰이라고 한다. 통일 왕조였던 진나라가 무너지고 광동지역에 들어선 남월국의 왕 조타의 손자 조호의 궁전이 있었던 자리였다고 한다. 당나라 시대의 선승이었던 혜능(惠能)이 이곳에서 선종(禪宗)을 창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여러 차례의 개명을 거쳐 남송(南宋, 1127~1279) 때인 1151년에 '광효선사(光孝禪寺)'라는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1650년 청(淸)나라 군대가 남하하면서 광주를 공격하여 불태우면서 광효사 역시 크게 파괴되었지만 이후 복원되었다.






 정문을 들어서면 이어서 천왕문(天王門)이 나온다. 우리나라 사찰에 있는 천왕문의 형태와는 달리 찬왕문 가운데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있고 양편에 사천왕(四天王)이 있다. 이 천왕전은 청나라 건륭(乾隆)년간(1735~1796)에 지어졌다고 한다. 불법의 수호신인 사천왕의 모습은 그리 험상궃여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찰에 있는 것과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천왕문을 통과하면 대웅보전이 있는 넓은 뜰이 나온다. 육용사와 달리 사찰의 규모도 제법 크다.  황금색 기와가 특이한데 금빛 기와는 아무 곳에나 사용할 수 없다고 하고, 이것을 보아도 공효사의 특별한 위치를 알 수 있다. 원래 401년에 창건되어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가 소실되었고, 지금의 건물은 2003년에 당송(唐宋)시대 양식으로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대웅보전과 향로 앞에서 신자들이 기도를 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도 역시 향을 엄청 사용한다. 그냥 향기만 풍길 정도로 사용했으면 좋겠는데, 중국사람들이 향 사용은 도가 지나치다.   






 우리나라 절과는 달리 대웅전 안쪽으로도 신발을 벗도 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신을 신은 채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대웅보전에 모셔져 있는 부처님의 모습은 한국의 부처님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중앙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있고 좌우로 가섭존자와 아난존자 및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함께 배치해 놓았다. 대웅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법당 뒤편으로 돌아가면 혜능선사가 삭발을 한 후 머리카락을 묻은 위에 세운 예발탑과 수계를 했던 장소인 보리수를 만날 수 있다. 머리카락을 묻은 탑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 탑은 육조발탑(六祖髮塔)이라고도 불리며, 7층 구조에 높이는 7.8m로 내부에는 사리함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혜능선사가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수계를 받은 곳이 바로 이곳 광효사였다는 것을 기념하여 서기 667년에 세웠는데 오늘날 광효사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탑이다.  




대웅보전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오른편에 있는 종루(鐘樓)의 모습이다. 이밖에도 광효사에는 967년에 주조된 철탑을 비롯하여 명대의 품격이 숨 쉬는 육조전(六組殿) 등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 절과는 달리 도시 한가운데 있지만 적당히 넓은 공간에 건물과 전각도 많이 있고, 볼거리도 상당히 많은 광효사였다. 향만 많이 피워져 있지 않았으면 나무 그늘 아래서 산책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도 괜찮은 장소였다. 광효사는 지하철 1호선 서문구(西門口)역에서 도보로 5분에 있어 광효사 관람을 마치고 진과사로 이동하기로 한다.   







 천자츠(陈家柌:진가사)는 120년 전 청나라 시대에 세워진 진씨 문중의 사당이다. 이곳에서 진씨들은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중국 각 지역에서 찾아온 진씨 집안의 사람들이 공부를 하기나 숙소로 사용했다고 한다. 광저우 지하철 1호선 진가사 역에서 나오면 진가사의 모습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가면 매표소와 출입구가 있다. 멀리서 보이는 진가사는 크고 화려한 검은색의 건물과 요새와 같은 높은 담이 인상적이다. 현재는 광저우 향토예술전람관으로 사용하고 있어 공예품들의 전시와 판매도 한다고 한다. 입장료는 10위안이다.    





 진가사가 유명한 것은 화려하고 예술성 높은 도자기 기와와 조각이다. 들어가는 입구와 함께 모든 건물의 지붕에 조각이 되어 있는데 화려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옛 고사와 많은 도교 사상의 스토리가 부조물을 구성하고 있다. 사람과 기술자가 많은 중국이니 가능했으리란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 건물이 만들어진 뒤 백년이 넘는 기간동안 이 조각들이 어떻게 무사히 보존되었는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는데, 입구에서부터 대단한 작품을 보는 듯하다.  






 진가사는 청나라 때인 1888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1894년에 완공되었고, 중국 남방식 건축양식을 표현했다고 한다. 1959년에 진씨 서원은 국무원으로 부터 전국 중점 문물 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관람을 온 사람들이 모두 바로 입장하지 않고 문 앞쪽으로 가서 정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안쪽에는 박물관을 방불케할 만큼 많은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고급 가구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당시 부유층의 생활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입구를 들어가면 이렇게 사천왕 같은 그림이 있는 거대한 대문이 나온다. 입구에는 진씨서원(陳氏書院)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광동성에서 가장 크고 또 고대 건축물들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총 19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진가사 뒷쪽은 진씨 조상들을 모셨던 진가사당이 있다. 그래서 진가사를 진가서원 혹은 진가사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안쪽에 있는 각종 건축물들도 모두 조형이 아름답고, 정문에서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색채가 화려한 공예품이 장식되어 있다.  





 진가사의 중심 건물인 취현당은 과거 진씨 일족이 선조의 제사를 지내고 회합을 여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지금은 진가사가 문화재로 국가의 관리를 받고 있어 진씨들이 제사를 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취현당 안쪽의 대청에는 조상의 위패를 안치되어 있었다. 넓고 긴 회랑과 고풍스런 가구들 그리고 열대의 식물들이 조화롭고 아름답다. 그 당시 진씨 세력의 위세를 느끼게 해준다.    







내부는 건물과 건물이 연결하는 회랑까지 예쁘게 장식해 놓았다. 넓지 않은 정원이지만 정원 역시 독특하게 꾸며 놓았다. 지붕, 벽, 문 등에 화려한 문양과 조각을 새겨 넣어서 볼거리가 많았고, 이렇게 꾸며 놓아서 관광 명소가 된 듯하다. 진씨 가문은 돈도 엄청 많았고, 예술에도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건물들은 일관되게 화려한데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정원은 조금씩 테마가 다른 듯하다.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게 느껴진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기념품 가게도 있고, 전시장도 있었다. 다양한 주제의 수준높은 공예품을 구경할 수 있으며, 기념품 이외에 예술품에도 가격이 적혀 있어서 구입도 가능했다. 수억원 짜리 예술품도 보인다. 청나라 부자들이라면 꼭 가지고 있었던 사치품인 상아 조각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많은 나라에서 상아 거래는 원천적으로 불법으로 알고 있는데, 화려하게 만들어 놓은 작품을 보니 한 점 가져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시대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기에 이런 작품을 만들게 했을 것이다. 











 천천히 돌아 보았는데 1시간 조금 넘게 보니 대략적으로 다 돌아 본 것 같다. 우리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의 서원을 잘 보았다. 박물관에 비교될 만큼 많은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고급 가구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당시 부유층의 생활상을 볼 수 있었다. 앞서 구경하러 다녔던 사찰이나 공원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광저우의 한 모습을 본 듯하다. 진과사 지붕의 정교함과 색채에 감동을 받고 간다.      







(13편에서 계속)